물은 두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다. 모든 것을 씻어 내리는 것이 하나요, 모든 것에 생명을 주는 것이 둘이다. 이 두 기능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질 수도 있다.
　시카고 대학에 조기지원을 하고 불합격 통지서를 받은 학생, UW으로부터 주위 친구들은 이미 합격통지서를 받았으나 그들보다 성적이 더 높은 자신은 정작 소식이 없어 발을 구르는 학생, 갑작스런 컴퓨터 고장으로 우선지원 마감일을 놓쳐 가슴을 치는 학생, 이 모든 지원자들이 찾아와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에 가서 뛰어 내리고 싶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씻어 내리는 물을 이용해 자신의 존재마저 잊어보겠다는 도전이다.
　경치는 뒤떨어지지만 금문교 다음으로 미국에서 두 번째로 투신자가 많은 시애틀의 오로라 다리도 도전에 적합한 장소다라고 권유하자 아 맞다. 조명을 갖춘 8피트 높이의 철책을 내년에 설치하기 전에 시도해야겠다고 웃으며 받아친다.
　이렇게 물은 모든 것을 잊게 해준다는 것이 잠재의식 중에 있는 것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망각의 강’ 덕분이 아닐까.
　한 여인이 강가에 내려오자, 그녀를 이승에서 저승으로 데리고 가는 임무를 띤 사자 차론이 나룻배에 태우며 말했다. “만일 그대가 이 강물을 마시면 살면서 겪은 모든 고통을 다 잊을 수 있다.” 그 말에 여인은 귀가 솔깃하여, “정말인가. 이 물을 마시면 슬프고 고통스러웠던 기억들이 다 사라지나?”라고 확인하며 물을 마시려 하자 차론이 다시 말했다. 하지만, 힘들었던 모든 기억들과 함께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들도 다같이 사라지게 되는 것을 명심해야 된다. 그 말을 들은 여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조용히 주저앉았다. 그리고 차론은 서서히 노를 저어 나갔다. 그 여인의 고통 받고 상처 받고 힘들었고 그리고 행복했고 사랑 받았던 모든 기억들을 배에 함께 태운 채로.
　이후로, 그곳은 ‘망각의 강 레테(Lethe)’라고 불렸고, 누구든지 그 물을 마시면 삶의 괴로움을 잊게 하는 신기한 기능을 경험했다.
　사실, 금문교나 레테까지 가지 않고도 물의 두 번째 기능을 이용하여 모든 것을 잊게하는 방법이 있다. 스코트랜드의 하이랜드 지방에 위치한 1786년에 설립된 오반 이라는 위스키 증류공장에 견학했을 때 그곳 안내원은 위스키의 뜻을 이렇게 설명했다. 위스키의 어원은 켈트어의 위스게 비다 (uisge-beatha)에서 온 것으로 라틴어의 아쿠아 비태 (Aqua Vitae)와 같이 ‘생명의 물’이란 뜻이다. 마시는 사람들에게 삶의 활력과 새로운 기쁨을 가져다 주기에 그렇게 명명 되었다.
　뼈 속까지 스며드는 한기가 있는 겨울날 금문교에서 뛰어내릴 용기가 있으면 차라리 ‘생명의 물’로 괴로움을 씻고, 독일 시인 쉴러의 노래, 위안의 술, 쭉 들이켜고/ 큰 고통은 잊으시게/ 생명의 선물은 훌륭하나니/ 찢어진 가슴에 향유로다를 따르는 것이 방법이다.
　건망증과 치매를 제외하고는, 무엇인가 잊을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 가진 특권이요 행복이다. 니체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망각은인간을 행복하게 해준다고 했다. 이래서 연말이 되면 과거와 단절하고 과거의 모든 것을 잊어보겠다고 망년회를 열어 발버둥치지 않나. 올 망년회에서는 새해의 새로운 생명을 위해 물의 두 번째 기능을 마음껏 테스트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