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다운타운에 새 명물이 등장했다. 기존명물인 스페이스 니들과 I-5 옆 고층빌딩 위에 휘날리는 대형 깃발이다. 둘 다 푸른색 바탕에 흰 글씨로 ‘12’라는 숫자가 쓰여 있다. 벌써 몇 주일째 주말마다 나부끼고 있고 작년에도 여러 번 본 터여서 생소하지 않다.
대다수 시민이 그 깃발의 의미를 익히 알고 있지만 일부 한인들, 특히 스포츠에 무관심한 노인들과 여성들은 영문을 모른 채 12와 관련 있는 이것저것을 연상할는지 모른다.
우선, 한달전 한국대선에 출마했던 12명, 그중에서도 특히 이회창 후보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 법하다. 한 전통주 회사가 지어낸 “열둘보다 나은 둘이 있다”는 광고 문안이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자 이회창 선거본부가 발끈해서 “이 광고는 이회창(기호 12)보다 이명박(기호 2)이 낫다는 것을 암시하는 불법선거운동”이라며 공개적으로 항의해 화제가 됐었다.
중년 이상의 한인들은 거의 30년전 일인 12-12사태를 떠올릴 수도 있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게 암살된 후 두 달이 채 안된 12월12일 전두환과 노태우가 이끄는 신군부세력(‘하나회’)이 쿠데타를 일으켜 군부의 주도권을 장악한 날이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그 뒤 차례로 대통령이 됐고 한국의 민주화는 10년간 더 지체됐다.
동양역법에 익숙한 한인들은 새해에 나부끼는 ‘12 깃발’을 보고 ‘12간지’를 생각했을 수도 있다. 10간과 함께 60갑자의 기본을 이루는 12지는 자(쥐)·축(소)·인(호랑이)·묘(토끼)·진(용)·사(뱀)·오(말)·미(양)·신(원숭이)·유(닭)·술(개)·해(돼지)의 열두 동물을 지칭한다. 12지는 10간(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과 하나씩 짝을 이뤄 그해 연도를 결정한다. 올해는 10간의 다섯 번째 ‘무’와 12지의 첫 번째 ‘자’가 합친 ‘무자년’ 쥐해이다. 10간과 12지의 총 조합은 60이다. 즉, 60년 후에 올해와 똑같은 ‘무자년’이 다시 돌아온다(환갑)는 뜻이다.
12는 성경에서도 의미가 크다. 야곱의 열두 아들은 이스라엘 12부족의 시조가 됐고, 예수는 12명의 평범한 제자를 뽑아 기독교의 기초를 다졌다. 아기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크리스마스가 12월에 있고, 요한 계시록은 새 이스라엘을 12로 표현한다. 호사가들은 멸종된 마야민족의 점성술을 근거로 오는 2012년 12월21일 지구의 멸망이 온다며 호들갑이다.
그러나, 시애틀 하늘에 나부끼는 ‘12 깃발’의 의미는 매우 단순소박하다. 그 주말에 홈구장인 퀘스트필드(오늘은 적지)에서 경기를 펼치는 시애틀 시혹스를 온 시민이 성원하자는 뜻이다. 풋볼경기는 11명의 선수가 투입되는데, 팬들이 모두 ‘12번째 선수(12th Man)’가 돼 반드시 승리를 쟁취하자는 투혼과 염원을 시혹스의 푸른 색 깃발에 담고 있다.
시애틀 팬들의 ‘12-Man’ 정신은 드세기로 악명 높다. 타 지역 팀이 퀘스트필드에 찾아와 경기를 벌일 때는 살인적 텃세를 각오해야 한다. 스탠드를 꽉 메운 홈 팬은 상대팀이 공격할 때마다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지른다. 너무나 시끄러워 쿼터백의 작전 암호를 알아들을 수 없는 상대팀 선수들이 엉뚱한 방향으로 뛰기 일쑤여서 공격이 번번이 와해된다.
올해는 ‘12-Man’ 바람이 예년보다 더 극성스럽다. 엊그제는 크리스 그레고어 주지사까지 12번 유니폼을 입고 주청사 국기 게양대에 손수 ‘12 깃발’을 올렸다. 시내 거리에는 자동차 양쪽 유리창에 소형 ‘12 깃발’을 장착하고 질주하는 젊은이들이 쉽게 눈에 띈다.
시애틀의 한인들도 12-Man 정신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번 월드컵대회 때 ‘붉은 악마’ 유니폼을 입고 한데 모여 한국 팀을 열열이 응원했다. 누가 시킨다고 할 일이 아니다. 오늘 올림피아 주청사에서 열리는 제1회 ‘한인의 날’ 기념행사에도 많은 한인들이 12-Man 정신을 발휘해 자발적으로 참여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윤여춘(편집인)
‘12’
시애틀 다운타운에 새 명물이 등장했다. 기존명물인 스페이스 니들과 I-5 옆 고층빌딩 위에 휘날리는 대형 깃발이다. 둘 다 푸른색 바탕에 흰 글씨로 ‘12’라는 숫자가 쓰여 있다. 벌써 몇 주일째 주말마다 나부끼고 있고 작년에도 여러 번 본 터여서 생소하지 않다.
대다수 시민이 그 깃발의 의미를 익히 알고 있지만 일부 한인들, 특히 스포츠에 무관심한 노인들과 여성들은 영문을 모른 채 12와 관련 있는 이것저것을 연상할는지 모른다.
우선, 한달전 한국대선에 출마했던 12명, 그중에서도 특히 이회창 후보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 법하다. 한 전통주 회사가 지어낸 “열둘보다 나은 둘이 있다”는 광고 문안이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자 이회창 선거본부가 발끈해서 “이 광고는 이회창(기호 12)보다 이명박(기호 2)이 낫다는 것을 암시하는 불법선거운동”이라며 공개적으로 항의해 화제가 됐었다.
중년 이상의 한인들은 거의 30년전 일인 12-12사태를 떠올릴 수도 있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게 암살된 후 두 달이 채 안된 12월12일 전두환과 노태우가 이끄는 신군부세력(‘하나회’)이 쿠데타를 일으켜 군부의 주도권을 장악한 날이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그 뒤 차례로 대통령이 됐고 한국의 민주화는 10년간 더 지체됐다.
동양역법에 익숙한 한인들은 새해에 나부끼는 ‘12 깃발’을 보고 ‘12간지’를 생각했을 수도 있다. 10간과 함께 60갑자의 기본을 이루는 12지는 자(쥐)·축(소)·인(호랑이)·묘(토끼)·진(용)·사(뱀)·오(말)·미(양)·신(원숭이)·유(닭)·술(개)·해(돼지)의 열두 동물을 지칭한다. 12지는 10간(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과 하나씩 짝을 이뤄 그해 연도를 결정한다. 올해는 10간의 다섯 번째 ‘무’와 12지의 첫 번째 ‘자’가 합친 ‘무자년’ 쥐해이다. 10간과 12지의 총 조합은 60이다. 즉, 60년 후에 올해와 똑같은 ‘무자년’이 다시 돌아온다(환갑)는 뜻이다.
12는 성경에서도 의미가 크다. 야곱의 열두 아들은 이스라엘 12부족의 시조가 됐고, 예수는 12명의 평범한 제자를 뽑아 기독교의 기초를 다졌다. 아기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크리스마스가 12월에 있고, 요한 계시록은 새 이스라엘을 12로 표현한다. 호사가들은 멸종된 마야민족의 점성술을 근거로 오는 2012년 12월21일 지구의 멸망이 온다며 호들갑이다.
그러나, 시애틀 하늘에 나부끼는 ‘12 깃발’의 의미는 매우 단순소박하다. 그 주말에 홈구장인 퀘스트필드(오늘은 적지)에서 경기를 펼치는 시애틀 시혹스를 온 시민이 성원하자는 뜻이다. 풋볼경기는 11명의 선수가 투입되는데, 팬들이 모두 ‘12번째 선수(12th Man)’가 돼 반드시 승리를 쟁취하자는 투혼과 염원을 시혹스의 푸른 색 깃발에 담고 있다.
시애틀 팬들의 ‘12-Man’ 정신은 드세기로 악명 높다. 타 지역 팀이 퀘스트필드에 찾아와 경기를 벌일 때는 살인적 텃세를 각오해야 한다. 스탠드를 꽉 메운 홈 팬은 상대팀이 공격할 때마다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지른다. 너무나 시끄러워 쿼터백의 작전 암호를 알아들을 수 없는 상대팀 선수들이 엉뚱한 방향으로 뛰기 일쑤여서 공격이 번번이 와해된다.
올해는 ‘12-Man’ 바람이 예년보다 더 극성스럽다. 엊그제는 크리스 그레고어 주지사까지 12번 유니폼을 입고 주청사 국기 게양대에 손수 ‘12 깃발’을 올렸다. 시내 거리에는 자동차 양쪽 유리창에 소형 ‘12 깃발’을 장착하고 질주하는 젊은이들이 쉽게 눈에 띈다.
시애틀의 한인들도 12-Man 정신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번 월드컵대회 때 ‘붉은 악마’ 유니폼을 입고 한데 모여 한국 팀을 열열이 응원했다. 누가 시킨다고 할 일이 아니다. 오늘 올림피아 주청사에서 열리는 제1회 ‘한인의 날’ 기념행사에도 많은 한인들이 12-Man 정신을 발휘해 자발적으로 참여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윤여춘(편집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