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후의 명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원작자 마가렛 미첼의 고향인 애틀랜타에서 1939년 개봉됐을 때 전야제가 열렸다. 당시 현지의 한 교회 성가대가 참가해 흑인영가를 불렀는데, 단원 가운데 똘방똘방한 10살짜리 흑인 소년이 있었다. 마틴 루터 킹 2세였다.
필자가 1979년 연수를 마치고 미국일주 길에 애틀랜타에 들렀을 때 맨 먼저 가본 곳이 도심에 자리잡은 ‘마가렛 미첼 기념가옥’이었다. 기자출신으로 단 한편의 소설을 써서 일약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첼에 관심이 컸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본 것들이 지금 머리에 별로 떠오르지 않는다. 거의 30년 전 일이기도 하지만 시설이나 전시물이 빈약했기 때문이다.
‘바람…’ 개봉 60주년이었던 1999년 말 영화박물관이 추가돼 불탄 세트에서 가져온 스칼렛 오하라의 ‘태라’(Tara, 영지라는 뜻) 장원 현관문과 함께 킹의 합창단 기록도 전시됐다는데, 노래를 잘 부른 킹이 당시 히트한 ‘태라’ 주제음악도 즐겨 불렀을 것임이 틀림없다.
미첼 기념가옥에 이어 찾아간 킹 목사 기념센터는 상대적으로 활기 있었다. 많은 방문객들이 킹의 생가와 도서관, 문서보관소 등을 둘러보며 마당에 있는 그의 묘소에 둘러서서 묵념도 했었다. 23에이커의 기념센터 영역은 필자가 방문한 이듬해인 1980년 연방정부에 의해 국립사적지로 지정된 후 해마다 전 세계에서 65만여 명이 찾아오는 관광명소가 됐다.
킹 목사는 많은 진기록을 갖고 있다. 9학년과 12학년을 월반해서 15세에 대학에 진학했고, 보스턴대의 신학박사 학위 외에 전 세계 20여 대학에서 각종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19세에 목사안수를 받았고, 24세에 주요 교회의 담임목사로 취임했다. 역대 최연소 노벨 평화상 수상자(1964년, 35세)이며, ‘내가 월남전을 반대하는 이유’라는 연설문 레코드로 그래미상을 받았다(1971년). 갤럽 여론조사에서 20세기 최고 존경인물 2위에 올랐고, 디스커버리 채널 여론조사에서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3명에 포함됐다. 시애틀을 비롯한 전국 730여 도시에 그의 이름을 딴 도로가 있다. 킹 카운티는 1986년 ‘King’의 의미가 왕이 아닌 킹 목사를 지칭하는 것으로 바꿨고 작년엔 카운티 로고도 왕관에서 그의 이미지로 바꿨다.
킹 목사의 인권운동은 1955년 몽고메리에서 발생한 소위 로자 팍스 사건으로 불이 붙었다. 흑인은 버스 안에서 무조건 백인에게 좌석을 양보하도록 규정한 ‘짐 크로 법’을 이행하지 않은 죄목으로 팍스 여인이 구금되자 킹 목사는 381일 동안 흑인주민들을 이끌고 버스탑승 보이콧 운동을 주도했고, 연방대법원은 끝내 악명 높은 ‘짐 크로 법’을 위헌 판결했다.
간디의 비폭력저항을 계승한 킹의 인권운동은 그가 남부기독교 지도자총회(SCLC)를 창설한 1960년부터 피살될 때까지 8년간 피크를 이뤘다. 특히 1963년 워싱턴DC의 링컨 기념관 앞 광장에 25만여명이 운집한 인권시위에서 킹 목사가 행한 ‘나는 꿈을 갖고 있다(I Have A Dream)’는 평등이념 연설은 링컨 대통령이 게티스버그에서 ‘국민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정부’를 천명한 민주주의 이념 연설과 함께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설로 꼽힌다.
한인들에겐 킹 목사가 큰 은인이다. 그가 목숨 걸고 벌인 인권운동 덕분에 1964년 민권법, 1965년엔 투표권법이 각각 제정돼 모든 소수민족이 인종, 성별, 피부색깔, 종교 등의 이유로 교육, 취업, 정치, 사업, 거주지 선정 등에서 차별대우를 받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킹 목사는 1968년 4월4일 흑인 청소부들의 처우개선 파업을 지원하러 테네시주 멤피스에 갔다가 그곳 로레인 모텔 2층 발코니에서 저격수의 흉탄에 쓰러졌다. 향년 39세였다. 닷새 후 30여만명이 운집한 그의 장례식에서 친구 가수 마할리아 잭슨이 조가를 불렀다. ‘태라’가 아니라 킹 목사가 생전에 가장 좋아한 찬송가 ‘내 손을 잡으소서, 귀한 주님’이었다.
킹 목사는 결코 바람과 함께 사라지지 않았다. 1월 셋째 월요일이 그를 기념하는 연방 공휴일로 제정돼 모든 미국인이 인권향상의 보너스로 매년 첫 번째 연휴를 즐기기 때문이다.
윤여춘(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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