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홧병’
요즘 한국에서는 아파트 이름을 타워팰리스, 미켈란쉐르빌, 아카데미 스위트, 하이페리온, 에클라트, 아크로빌, 레이크폴리스등 영어로 짓는 것이 유행이다. 그 이유는 시어머니가 못 찾아 오게 하려는 의도라고 한다.
반면, 미국에서는 한국 고유명사를 그대로 영어로 표기하는 것이 늘고 있다. 김치(kimchi), 학원(hagwon), 한류(hallyu), 그리고 홧병(火病, hwa-byung)이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홧병을 미국 의학계에 처음으로 알린 사람은 현재 UCLA 메디칼 센터의 정신생물학 연구소장인 중국계 린계밍 교수다. 25년 전 시애틀 차이나타운 소재 그의 진료실에 상복부 통증으로 찾아온 한인 여성환자를 통해 홧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치료과정을 “정신의학지” 1983년 1월호에 소개했다.
그 후, 1995년 미국 정신의학협회는 홧병을 한국인 특유의 문화 증후군 정신질환으로 정식 인정했다.
어떤 사람만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오르고, 과거를 돌이켜 보면 속 끓는 눈물이 솟고, 앞날을 생각하면 답답해지는 증세를 가져오는 홧병은 빠져 나올 수 없는 외적 환경으로 인해 주로 발생한다.
배우자, 시댁 식구들과의 갈등, 사업실패, 타인과 금전관계에서 오는 재산손실, 자녀의 성적부진, 교통체증, 정치적 불만족, 경제적 불안감과 낭패감 같은 주변환경이 홧병을 불러온다.
내적인 요소, 한국인 의식 속에 뿌리 깊이 자리잡은 자아은폐와 억제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한국인 특유의 집단주의 사회구조에서 한 개인의 마음을 분출하는 것은 조화와 질서를 파괴하는 요인으로 간주돼 마음속으로만 삭히고 아무 말 하지 않는 게 오히려 미덕이었다.
오죽하면, 속을 털어놓는 것을 경계하는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 진다”는 속담까지 나왔을까.
기분 나쁜 소리에 직선적으로 대꾸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으며 돌아서서 후회하고, 상대방 눈치를 살피느라 만사를 정확하게 따지지 못해 결국 홧병으로 치달아 마땅히 받아야 할 자기 몫도 챙기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대학 지원서 제출 후 모두들 두터운 봉투를 기다리는 요즈음은 자칫하면 그런 홧병을 가져올 수 있는 시즌이다.
합격 통지서를 받는다 하더라도 등록금 마련 걱정은 모든 가정을 골치 아프게 한다. 복잡하기 짝이 없는 재정보조 신청서를 열심히 작성하여 제출한 후 대학으로부터 통보 받은 장학금 액수는 천정부지로 치솟은 등록금에 비하면 ‘새 발의 피’도 안 된다.
“나머지 등록금을 어디서 충당하나”라는 걱정에 가슴은 답답하기만 하다. 신용 위기로 수렁에 빠진 금융시장을 건지고 불황에 접어든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해 부시 행정부가 마련한 경기회복제 ‘1,500억 달러 짜리 바이아그라’에 많은 사람들이 좋은 약효를 기대하고 있다.
기부금 돈방석에 올라앉은 대학들은 연방의회의 압력으로 슬금슬금 장학금 선심을 쓴다지만 그것은 일부 대학에 한정된 이야기고 대부분 대학은 눈 하나 깜짝 않고 있다.
돈 많은 대학에서 제시한 재정보조가 부족하다고 홧병으로 누워있거나 잠잠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가정의 현재 재정사정을 상세히 말해주는 보충서류를 들고 지원 대학의 재정보조 담당자를 직접 만나서 담판을 지어야 한다.
직접 방문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되면 편지라도 써야 한다. 말 한마디 혹은 감동의 편지 한 장으로 등록금 7~8,000달러가 왔다갔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속 시원히 표현할 때 홧병은 달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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