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면서 국술을 잇는 아들과 함께한 서인혁 총재. 왼쪽부터 서성진 샌프란시스코 국술원 관장, 서인혁 총재, 서총재의 부인이며 유능한 행정가인 신숙희씨, 둘째 서성우 휴스턴 본관 관장
한국의 국기 태권도가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 되면서 세계인의 스포츠 종목으로 사랑을 받고있다면 우리의 전통무술이며 호국무술인 국술은 세계 150만명의 회원을 거느리면서 세계인의 武道(무도)로 정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이끌고 있는 지도자가 바로 세계국술원 총재 서인혁 국사이다. 국술대회를 한번쯤 관람한 사람이라면 국술이야말로 세계인의 존경을 받는 무도임을 쉽게 알수있다. 즉 세계가 단일화 된 이 국술은 순전히 한국말 구령에 의해 진행된다. 국기에 대하여 경례이후 ‘국사님께 대하여 경례’는 국술로 모인 어느곳에서나 흔히 볼 수있는 구령이다. 아주 엄숙하고 정중하게 이뤄지는 이 경례는 이후 관장, 사범 순으로 차레로 이루어져 국술수련생의 엄격한 규율을 읽을 수 있다. 누가 이토록 이들을 한국말 구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고 엄숙하게 예의를 다하도록 만들었는가. 그의 수제자 베리 하먼은 서 총재를 아버지 처럼 존경하고 따른다. 왜 이처럼 국술에 몸담으면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가족처럼 끈끈한 정을 맺게 되는 가? 그 답을 서인혁 국사로 부터 찾아본다. <정광원 텍사스 편집인>
세계 700여 곳의 국술원 도장을 열고 누적회원 150만 명을 이끌어 가는 세계적인 무술지도자, 서인혁, 그는 분명 성공한 무술인으로서 이 시대의 자랑스런 한국인이다.
정신적인 지도자로서 세계국술가족들의 무한한 존경과 추앙을 받고 있는 그는 국사(國師=국가의 스승)이기도 하지만 국술의 스승이다.
그가 정신적인 리더로서 성공하기까지 그는 누구보다도 가혹한 시련과 역경을 이겨 나오지 않으면 안됐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존경받는 한 인간으로서 우뚝설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그는 분명 정신적인 지도자의 한 사람이다.
서인혁 국사에게 3월은 특별한 달이다. 그가 태어난 달이 3월이요 50년전 약관 20세에 국술원을 설립한 달도 3월이다.
76년전 1932년 3월5일 경북 군위군 의홍면 읍내리 482번지에서 태어났던 그는 1958년 3월9일 부산 중앙동에 국술원 간판을 걸고 부산역앞 노동회관의 유도관 한구석에서 검은색 도복으로 첫 출발을 했다. 그후 군산, 목표, 광주를 거쳐 1972년 서울본부를 설치, 장충체육관에서 무술시범을 보이기까지 그의 불굴의 의지는 무술의 논리를 체계화하고 국술이라는 이름으로 집대성하는 웅비의 날개를 펴게했다. 일본 유술과 합기도 및 중국 18기의 장점을 수합, 이를 창조적으로 접목하면서 제 자리를 찾지못하고 난맥상을 보이고 있던 한국 무술계의 실천적인 노력을 기울였던 그는 전통적인 사도무술, 불교무술, 궁중무술을 바탕으로 하여 유도, 합기도, 18기, 쿵푸 등 외래 무술을 장점으로 취택하고 태권, 씨름 등 고유무술을 계승 발전시켜 독특한 무술체계인 국술로 집대성했다.
그러나 그의 국술의 세계화의 꿈은 우연치 않게 미국인 제자 켄 던컨의 초청으로 부터 이루어졌다.
1973년 단돈 50달러를 들고 LA도착했던 그는 불모지인 미국에서 국술도장을 열어 뿌리를 내렸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그는 1975년 샌프란시스코 국술원 도장을 개관하기에 이른다.
심신수련의 기(氣)운동으로서이를 스포츠이자 도(道)에 이르는 길로 발전시켜 세계인의 존경을 받게한 국술원 총재 서인혁 국사는 “100만 번 절을 해 보라. 그러면 너의 몸이 저절로 다듬어 질것이다. 상대방을 존경하라 그러면 너 자신이 누구인지 쉽게 알 것이다”고 그의 평전에서 밝히고 있다.
즉 자신의 삶을 성공적으로 변화시키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삶을 건강하게 만들어 주고 나아가서 겨레의 삶과 국가 부강의 원동력이 되는 인류의 건강 증진과 평화건설에도 이바지하고자 하는 실천적인 삶을 반세기를 이어온 그는 지난해 해외한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만해대상 특별상을 받았다.
만해 한용운(1879-1944)은 독립운동가이며 불교의 승려로 또 시인으로 민족의 얼을 후세에 전한 나라사랑 겨레사랑을 펼친 평화를 사랑하는 애국자였다.
1980년부터 국술원이 세계각국으로 전파됨으로써 미국만이 아닌 세계화의 기틀을 마련한 국술원은 1981년 세계대회를 부산 구덕체육관에서 개최, 미국, 영국, 멕시코 등 세계 7개국에서 140명이 참가, 국술의 세계화의 기틀을 마련했다.
서 총재가 무술잡지 BlackBelt 메거진에 게제되고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네델란드, 독일, 캐나다, 스페인으로 확장된 것도 이때이다.
이를 계기로 탁월한 사업가로서의 경영을 시도한 서 총재는 국술원 상표를 특허 취득하고 도복과 장비, 국술과 관련된 모든 것을 각국법과 미국내 주법에 의거 상표를 모두 국술원이 소재하는 지역에 등록했다. 여기에서 서 총재의 최고경영자 다운 지혜를 볼 수 있다. 상표를 특허 등록함으로써 아무도 국술이라는 이름으로는 이를 흉내낼 수 없게 쇄기를 박은 선경견지명이었다. 서 총재는 경영자로서 대기업의 회장도 따를수 없는 국술원 순회를 해오고 있었다. 이는 매년 자동차로 3만 마일, 비행기로 1만마일이라는 대장정이었다. 조그만 밴을 거실처럼 차려놓고 이곳에서 대부분의 휴식과 국술발전의 구상을 했다.
괴히 초인적인 정신력이었다.
그의 초인정신은 1998년까지 미국에 300개 도장 운영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하는 원동력이 됐다.
세계 700여곳의 150만명의 회원을 관리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또 공급되는 장비 또한 상당한 수요이다. 그러나 이를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있었던 것은 서총재의 부인 신숙희 씨의 도움없이는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50년의 거의 한평생을 바쳤지만 그의 꿈은 끝나지 않았다. 21세기 초 세계국술협회 야외 수련장을 휴스턴에 세워 웅비의 나래를 편 서 총재는 금년 50주년을 맞는 세계대회를 오는 10월10일 휴스턴에서 개최하는 것을 계기로 세계국술원 본부가 있는 톰볼에 국술사관학교를 세우고 텍사스 내 200개 국술원 도장을 더 세우는 계획을 이미 마무리했다.
하와이 이민 75주년 기념에서 국술을 시범, 국술의 세계화의 불을 지폈던 서 총재는 이로 인해 하와이대에서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 육사에서도 국술이 체육종목으로 채택되고 미국내 10여개 대학에서 역시 정식 체육종목으로 채택됐다. 이로인해 미 육군사관학교와 미 공군사관학교에서 최고의 영예인 지휘검을 서 총재에게 수여했다.
국술을 해외에 보급하고 우리 전통문화를 선양한 공로로 지난 1998년에는 한국정부로 부터 국민훈장 석류장도 받았다. 서인혁 총재 한 개인의 꿈과 의지가 국술을 세계의 무술로 뿌리 내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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