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제2도약 이끈다
▶ 커미셜부문 다져놓은뒤 일반인 론 늘릴것, 타인종 대상 영업확대 ‘파이 키우기’ 주력
대담 행장실 = 박경만 편집국장
자 택 = 김선엽 김은향 기자
지난해말 김상배 행장의 사임으로 ‘수장’인 행장 없이 2009년 새해를 맞이했던 제일은행이 행장공석 한달만인 지난 2월1일자로 파격인사를 단행해 애틀랜타 지역 은행계에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한인은행 행장들의 평균 연령대가 50대가 넘는 점을 감안할 때 제일은행이 무려 10년 아래인 40대 중반일뿐 아니라 행장경험이 없는 김동욱 전 LA한미은행 부행장을 새 행장으로 임명하는 특단조치를 내놨기 때문이다. 역대 최연소 행장인 김동욱 행장의 취임은 시작부터 관심의 대상이 됐다. 김 행장의 어깨에는 기대와 관심이라는 내외부의 큰 부담이 짓누르고 있을 만 한데도 정작 본인에게서는 그런 부담감을 찾을 수 없다. 김 행장은 특유의 ‘부드러운 리더십’을 보이며 직원들의 인기를 한 몸에 얻고 있다. 지역은행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제일은행을 이끌고 있는 김 행장을 만났다.
- 은행인들의 선망의 대상인 은행장 자리에 올라 꿈을 이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발판을 놓고 올라가 보는 것과 내려와 보는 것은 시야자체부터 다르다. 가령 공부를 해서 한 단계를 디디고 오르면 세상이 달라 보이곤 한다. 단계를 밟으며 안전하게 올라가 좀 더 넓고 다른 세계를 보기를 추구한다. 그것이 하나의 나의 인생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은행장이 된 것도 단지 한 단계 올라선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 하지만 실력과 조건을 갖춰도 때를 못 맞추면 되기 어려운 게 행장이라고 들었다. 최연소 행장으로서 은행 측에서 기대하는 점도 있을 거고, 본인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 현재 금융위기는 은행의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문제가 발생한 경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전통적인 은행 업무에 집중할 생각이다. 기본적인 은행업무 기반을 다지고 그 후 다음 단계에 눈을 돌려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일단 커머셜 뱅크 부문을 다져 자금을 확보하고 일반인 대상 론을 늘릴 예정이다. 지금껏 제일은행이 자본비율 문제로. 대출 조건이 까다롭기로 한인들 사이에 ‘악명’이 높았던 게 사실이고 그러한 인식이 아주 거짓은 아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 때문에 은행 자체가 건실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한다. 대형 은행들도 하나씩 쓰러져가는 요즘 같은 시기에 이렇게 버텨낼 수 있는 이유도 거기 있었다고 본다.
- 식상하지만 빠질 수 없는 질문 하나 하겠다. 왜 미국에 오게 됐는지 그리고 미국에 와서 어떻게 지내 왔는지, 청년시절 이야기가 궁금하다.
= 미국에는 88년 10월에 왔다. 고등학생 때부터 미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도 이민수속을 먼저 시작했던 것도 나였지만, 결국 심사에서 떨어지고 대학 졸업 후에야 올 수 있었다. 그렇게 대학에 입학하고 공부를 하다 부모님이 2년 먼저 미국으로 오시고 뒤따라 오게 됐다. 학생시절에는 나름 착실한 학구파의 학생이었다.(웃음) 일주일에 한번 책 읽고 토론하는 토론클럽에 가입해서 아주 열심히 활동했다. 80년대 당시 한국은 이런저런 단체활동에 제재가 많았다. 그런 제재를 피해 선배 지하방에서 토론하던 기억이 난다. 내용은 소설 읽고 느낀 점을 토론하는 게 거의 대부분이었다. 그때 함께했던 친구들이 지금까지 쭉 이어오는 친구들이다. 미국에 와서는 가구점에서 1년 정도 일했다. 회계 쪽을 주로 담당하기는 했지만 실제로 정해진 담당 파트 없이 총괄적으로 일했다. 가끔은 딜리버리도 했다. 그때는 일하는 게 즐겁고 재미 있었다.
- 서울의 명문대를 졸업했다고 들었다. 학벌이 꽤나 중요한 성공의 요건으로 작용하는 한국 사회에서 충분히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을 듯 한데 미국에 온 것에 대해 후회한 적은 없나?
= 한국에 있었다고 더 잘됐을 거라 생각 안 한다. 대학동창들 중에는 교수로 일하는 친구만 3명에 판사나 정치인이 된 친구도 있다. 하지만 지금도 그 친구들을 종종 만나면서 드는 생각은 성공은 돈의 많고 적음이 아닌 자신의 일에 만족하느냐 또는 지금 행복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처음 미국땅을 밟을 때는 공부하려는 목적이 컸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시작했던 가구점 일도 의외로 즐거웠다. 그렇게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지냈다. 아버지 햄버거 가게 일을 도우면서 회계사시험을 준비했던 적도 있다. 그때 출석하던 시티 대학 클래스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 밖으로 드러난 성품으로는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일 것 같다. 실제의 결혼, 가정 생활은 어떤가?
= 아내(에스더 김)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웬만하면 간섭하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인지 둘 다 독립심이 강한 편이다. 특히 큰딸 영빈이는 자립심이 아주 강하다. 이번 여름에는 사진기 살 돈을 벌겠다고 수영장에서 라이프 가드로 일하기도 했다. 피치트리 고등학교 11학년이고 학교 신문사에서 활동도 하고 있다. 큰애도 그렇고 둘째 아이인 영훈이도 자유스러운걸 좋아하는 미국식 생활이 더 익숙한 아이들이다. 나와 동갑내기인 아내도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미국에 왔기 때문에 미국식이 익숙할 거다. 영어도 나보다 더 잘한다. 하지만 정은 많다. 그래서 인지 종종 아내는 나에게 어려운 사람들에게 마음대로 퍼 줄 수 있을 만큼 돈 벌어오라고 말하기도 한다.(웃음) 베풀 상황이 되면 적극적으로. 부인이 더 잘할 것 같아 나는 그렇게 신경 쓰지 않는다. 우리 집에서 자유만큼 강조하는 것은 신앙이다. 장인 어른이 목사님이어서 많은 기도를 해주셨다. 집사람도 가족들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한다.
- 요즘은 일터에서 일하는 것만큼 잘 쉬는 것도 일과의 연장선상에서도 중요하다고 한다. 여가는 어떻게 즐기고 있나?
= 취미는 골프다. 2005년부터 치기 시작해 비즈니스용으로 여가용으로 쭉 이어오고 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아내와 골프를 즐긴다. 예전에는 나한테 한 두 번 이기기도 했지만 지금은 안 된다.(웃음) 이유는 나는 비즈니스용으로 꾸준히 쳐왔지만 아내는 나 없이는 안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일터에서와 쉴 때의 모습이 많이 다르게 비쳐질 수 있다. 일 외에 다른 것에는 너무 털털하다는 얘길 많이 듣는다. 심지어 아내는 내 넥타이는 넥타이가 아니라 턱받이라고 하니까 말이다.(웃음) 아무래도 은행 돈은 남의 돈이기 때문에 일에 관한 한은 철저해지는 것 같다. 어쨌든 주위 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내가 신경 쓰지 않는 것들에 대해 챙겨 줄 사람이 필요 하니까 말이다. 막내 영훈이는 아빠는 비서가 집과 회사 두 명이다라고 한다.
- 제일은행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이다. 점점 거세지고 있는 후발 은행들의 도전에 나름의 대책이나 전략이 필요할 것 같다.
= 현재 후발 은행으로부터 역전 당했다는 이야기들이 많이 들려오는걸 안다. 하지만 그걸 역으로 생각하면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앞지를 수 있는 기회가 있어 좋다고 생각한다. 선의의 경쟁은 서로를 발전시키므로 좋다. 우리의 경쟁사로 지목되는 모 은행의 경우 이사장의 리더십 아래 전 직원이 일사 분란하게 움직였던 게 단 기간 내에 성장을 이룬 배경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내 스타일은 아닌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이끄는 타입은 못 된다. 함께 가는걸 추구하고 가끔은 끌어주고 가끔은 밀어주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싶다.
- 직원들로부터 인기가 많다고 들었다. 부드러움이 인기의 비결인 듯 하다. 하지만 대외적으로 제일은행이 은행 직원 양성소라는 반응들도 있다. 그만큼 직원들의 유출이 잦다는 증거이기도 하다고 본다.
= 사실 거기에 대해서는 우리 은행이 가장 오래됐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우선 말하고 싶다. LA에서는 내가 몸담았던 한미은행이 그랬다.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은행을 옮기면서 소위 몸값이 불어나는 상황들이 발생하기 때문에 그런 분위기가 이직을 조장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오래 일한 사람일수록 더 좋은 대우를 해주고 더 많은 혜택을 주는 방법이 해결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내부적으로 관리가 안됐던 부분도 분명 있었다. 앞으로 직원들이 아파하는 곳을 싸매주고 가려운데 긁어주면서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오래 남아 일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 하겠다.
- 오랫동안 금융계에 몸담아 왔으니 현 경기불황을 어떻게 전망하고 있는지 궁금하고, 또 거기에 대처해 어떤 방향으로 제일은행을 운영해나갈지에 대해 듣고 싶다.
= 가장 문제되는 게 문제 발생의 시점이다. 지금 레지덴셜의 문제점이 드러나고 그 다음이 커머셜 금융으로 옮겨간다. 레지덴셜쪽은 거품이 거의 빠졌지만 아직 커머셜 쪽은 빠져야 할 거품이 남았다는 게 개인적 견해다. 일단은 피해를 최소화하는 게 우선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손님을 도와주는 것을 최선의 방책으로 보고 있다. 지금 당장 차압 경매에 들어간다고 해도 당장 은행에서 처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재기할 수 있도록 3~6개월 정도 더 도와 주는 것이 은행 입장에서도 더 이로울 거라 생각한다. 그렇게 어려운 시기를 넘기면 2010년부터 좋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똑 같은 파이를 나눠먹는 방식은 누구든 힘들다. 파이를 키우는 것이 우선이다. 이것은 비단 우리 은행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쟁 은행에도 강조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파이를 놓고 싸우지 말고 마켓, 즉 파이를 키우자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인 중에서 한국은행 안 쓰는 사람들과 타인종 고객을 유치하는 방법을 통해 그 파이를 충분히 키울 수 있다. 가령 제일은행 잔스크릭 지점의 경우 한인이 오히려 소수 고객층에 속한다. 그 지점은 인도계와 중국계 고객이 반을 넘는다. 내가 취임하고 한달 반 동안 계좌 수가 10%가량 늘었다. 또한 구제금융으로 자본비율이 늘어 더 많은 대출을 할 수 있게 되어 예년에 비해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고 본다. 5.5.5 계좌 등 새로운 상품 개발을 통해 고객을 유인해 오려고 한다.
- 제일은행이 다른 은행과 견줬을 때 어떤 경쟁력이 있는지, 제일은행의 자랑을 해달라.
= 우리 은행의 가장 큰 자랑이자 장점은 우리 직원들이다. 현재 큰 반응을 얻고 있는 5.5.5 계좌도 한 직원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현재 예금액 1000만달러를 돌파했고 평균 계좌당 예금액이 3000~4000달러 정도 된다. 제일은행의 오랜 역사는 그만큼 경험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지역에서 우리 직원들만큼 풍부한 경험과 서비스 의식이 투철한 직원들은 단언컨대 없다고 생각한다. 직원들을 보면 우리는 할 수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곤 한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손님을 최선을 다해 응대하라는 주문을 하는 것처럼 나 스스로 직원들을 손님 대하듯 대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정리 = 김은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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