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 대사관도 예루살렘으로 이전 명령, 팔레스타인 하마스 “지옥문 열었다”경고
▶ 아랍권·유럽 우방국들도 일제히 반대
팔레스타인 지지자들이 6일 가자시티 광장에서 타이어에 불을 붙여 태우고 팔레스타인 깃발을 흔들며 강력히 반대 데모를 펼치고 있다. [AP]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결국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국제사회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중동의 화약고에 스스로 불을 붙인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6일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수도”라고 공식 선언하고, 후속조치로 텔아비브에 있는 주 이스라엘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하라는 명령도 내렸다.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의 독특한 성격을 무시하고 ‘이스라엘 땅’이라고 선언하자,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권은 물론 유엔, 유럽 등 국제사회는 일제히 반대에 나섰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70년 가까이 이어진 미국의 외교 정책에서 탈피한 것이어서 후유증이 간단치 않을 전망이다.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 상실을 자초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스라엘만 찬성하는 고립무원의 선택인 셈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로 한반도 정세가 어느 때보다 엄중한 상황에서 전선을 확대한 것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처럼 휘발성 높은 선택지를 굳이 이 시점에 꺼내 든 배경을 두고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친이스라엘’ 행보, 그러나
이-팔 분쟁 해결사 자처?
트럼프 대통령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가운데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의 손을 들어줬다.
또 예루살렘의 의미에 대해서도 “단지 3개 종교의 심장부가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민주주의의 심장부”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기독·이슬람·유대교의 성지라는 성격보다는 이스라엘의 수도라는 사실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선언이 수십 년째 미해결 상태로 지지부진한 중동 분쟁에 평화의 물꼬가 틔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익명의 정부 고위 관계자는 ABC방송에 “미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이 더욱 광범위한 평화협정 달성에 더 이로울 수 있다는 게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즉, ‘협상의 대가’를 자처하는 그가 특유의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일단 팔레스타인을 거세게 궁지로 몰아붙인 뒤 거래를 시작해 팔레스타인의 양보를 얻어내는 방식으로 평화협정에 돌파구를 찾겠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국내적으로는 지지층 결집 효과도 노린 것일 수 있다. 특히 ‘러시아 스캔들’ 수사 확대로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는 가운데 공약 실천은 핵심 지지층을 다잡아 국정 운영 동력을 회복하는 호재가 될 수 있다.
그의 이율배반적인 행보는 자칫 무모한 승부수가 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당장 유럽의 우방국들부터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중동 지역은 이미 뇌관이 타들어 가는 분위기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는 “지옥의 문을 연 결정”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대사관 이전을 지시하면서도, 당장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길 수 없는 만큼 역대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6개월 유예’ 결정을 했다.
즉, 예루살렘 수도 선언, 미 대사관 이전 지시로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 과실을 챙기더라도 실제로 당장 겉으로 드러나는 변화는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2국가 해법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쪽 모두 수용할 수 있는 평화협정 촉진에 도움이 되도록 깊이 헌신할 것이며, 이러한 협정을 견인하기 위해 권한 내에서 모든 일을 할 것”이라고 약속하면서 “양쪽 모두 동의한다면 미국은 ‘2국가 해법’도 지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국가 해법’은 1967년 정해진 경계선을 기준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 타인 국가를 각각 건설해 영구히 분쟁을 없애자는 평화공존 구상이다.
이-팔 간 평화적 공존을 모색한 ‘2국가 해법’ 구상은 1993년 오슬로평화협정 이후 중동 평화 과정의 중심 의제였다. 비록 ‘2국가 해법’ 구상에 대한 구체적 방안을 놓고 줄다리기가 계속됐지만 국제무대에서 다른 대안은 사실상 논의되지 않았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퇴임 2주일을 앞두고 한 연설에선 “주권을 갖는, 자립적인 팔레스타인 국가”가 아니면 분쟁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그는 2국가 해법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최초의 대통령이다.
후임인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이 구상을 미국의 공식 정책으로 채택한 첫 대통령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2국가 해법을 미국 중동 외교정책의 골간으로 받아들였다.
■ 예루살렘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핵심 의제인 예루살렘 지위 문제는 영국의 위임통치 시절(1917~1948년)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해 이스라엘이 1967년 중동전쟁 후 강제 점령하면서 본격 쟁점화됐다.
예루살렘 올드시티(구시가지)에는 이슬람·유대교의 공동 성지 ‘템플마운트’(아랍명 하람 알샤리프)가 있어 이-팔 모두 수도로 삼고 싶어한다.
템플마운트는 이슬람 3대 성지 가운데 하나인 알아크사 모스크(이슬람 사원)가 위치한 곳이자 유대교도에는 솔로몬왕의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졌던 곳으로 여겨진다.
유엔은 영국의 신탁 통치령 지역인 팔레스타인을 유대국가와 아랍국가로 분할하도록 한 1947년 총회 결의안을 통해 예루살렘을 어느 쪽 소유도 아닌 국제도시로 삼기로 했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의 서쪽을, 요르단은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 모두의 성지인 성벽으로 둘러싸인 구시가지가 포함된 동쪽을 관리했다.
이스라엘은 이후 주변국인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이 관련된 4차례 중동전쟁을 벌였다. 이스라엘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또는 6일 전쟁)에서 승리해 요르단강 서안 지역과 함께 동예루살렘도 점령했다.
예루살렘에는 현재 이스라엘 총리 공관을 포함해 주요 정부 기관이 들어서 있다. 그러나 외국 대사관들은 모두 예루살렘이 아닌 지중해와 맞닿은 경제 도시 텔아비브에 주재해 있다. 예루살렘의 전체 인구는 약 88만명으로 이 가운데 60% 정도는 유대인, 30~40%는 아랍인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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