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첫 TV 아나운서
1956년 탄생한 HLKZ-TV 공채1기, 뉴스부터 오락 프로까지 도맡아…1967년 연출 공부하러 미국에
▶ 첫 한인 TV 방송 개국 참여, 은퇴 후 서예 입문 왕성한 활동…후배들에 “격조 있는 언론인 되길…”
대한민국 아나운서 공채 1호로 미주지역에서도 최초로 한국어 TV방송을 시작한 김봉구 미주방송인협회 명예회장은 “말 한미디도 따뜻한 향기로 남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박상혁 기자>
“한국과 미국에서 최초로 TV방송국이 개국할 때 아나운서로 첫 방송을 시작할 수 있었다는 게 저에겐 아직도 벅찬 감격으로 다가옵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 HLKZ-TV 아나운서 공채 1호로 1956년 5월12일 첫 방송을 시작했던 김봉구 미주방송인협회 명예회장(88)은 1967년 TV 연출공부를 위해 도미한 후 1972년 4월 LA에서도 최초로 한국어 TV방송을 시작한 뉴스캐스터이다. 평생을 방송인과 언론인으로 역사의 현장을 넘나들었던 김봉구 회장은 한국 TV뿐만 아니라 미주동포 TV방송의 산 증인이자 역사이기도 하다. 김 회장은 한국일보가 1954년 창간되었을 때부터 구독을 시작해 LA에서도 1969년 창간호부터 미주한국일보를 구독하고 있는 한국일보 애독자이기도 하다.
평생 방송인의 길을 걸었던 김봉구 회장은 한국일보의 사훈 ‘춘추필법의 정신’‘정정당당한 보도’ ‘불편부당의 정신’에 기초한 언론인의 자세가 한인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정치 지망생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TV아나운서로
그의 꿈은 원래 정치인이었다. 그래서 경복중학교(6년제)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정치학과에 입학했다. 평소 방송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1956년 한국에 처음 탄생한 HLKZ-TV 방송의 공채에서 100대 1이 넘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대한민국 최초의 아나운서로 선발되었다. 당시 일반가정이 보유하고 있는 수상기는 약 400여대에 불과하던 시절이다.
“당시 우리 방송은 세계 15번째, 아시아 4번째 TV방송으로 기록됐죠. 쌀 한 가마니 1만8,000환이고 17인치 TV 34만환(당시 700달러)이던 시대였어요. TV를 요술상자처럼 신기하게 여겼던 시절이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개국 초기 열악한 방송환경에서도 뉴스는 물론 예능 프로그램의 사회뿐만 아니라 시사교양 등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으며 유명 정치인과 각 부처장관과의 좌담도 주도했다.
1957년 HLKZ-TV 방송이 한국일보에 인수되면서 대한방송주식회사(DBC)로 개편되고 한국일보와 제휴하면서 투철한 기자정신을 가지고 보다 신속하고 정확한 뉴스를 전달하기위해 불철주야 노력했던 시절이다.
그러나 1959년 2월 화재로 방송 기자재가 전소되면서 DBC 시대는 막을 내리고 AFKN-TV의 지원을 받아 30분의 저녁뉴스로 방송을 이어갔고 1961년 10월 방송사가 폐쇄될 때까지 초창기의 한국 TV를 지켰다. 1961년 12월31일 KBS 개국과 더불어 프리랜서 활동을 시작한 그는 ‘TV 그랜드 쇼’ ‘가요 퍼레이드’ ‘홈런퀴즈’ 등의 인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최초의 한국 TV 진행자로도 명성을 떨쳤다.
■TV연출 공부차 미국행
그는 11년간 한국에서의 잘 나가던 아나운서 생활을 접고 TV연출 공부를 위해 1967년 청운의 꿈을 안고 도미했다. 그가 처음 LA에 왔을 때 LA에 3천명 정도의 한인이 있었으며 크렌셔와 제퍼슨 코너에 고려식당이 있었다. 일단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자리를 잡은 곳이 플라스틱 뚜껑 제조공장인데 보통 오후 4시부터 자정까지 일을 했으며 시간 당 임금이 1달러 80센트였다. 한 번은 1967년 12월의 어느 겨울날, 근무를 끝내고 나오니 버스편이 끊겨 한인타운 인근 아파트까지 밤새도록 걸었다. 그는 “이민 초년병으로 누구나 다 하는 고생이라곤 하지만 그날 밤 너무 춥고 서러워서 펑펑 눈물을 흘렸다”고 회고했다.
그러던 차에 68년초 전 AFKN 엔지니어 이순재(존 리)씨에게서 방송을 함께 해보자면서 전화가 왔다고 한다. 그래서 KBS 성우출신인 서정자씨와 함께 KBBI, KBOA 한국어 라디오 방송의 뉴스캐스터로 일하게 됐다.
■LA에서도 최초의 TV방송국 아나운서
그는 1971년 LA에서 열린 패티 김의 동포위문공연 사회를 보면서 우연히 편성 PD로 일했던 배함덕씨를 만나 ‘미주한국어 TV방송(Ch22)’ 개국의 실무역할을 맡았다. 1972년 한국어 TV 방송국이 처음으로 LA에서 문을 열면서 개국 방송을 했던 그는 “먼저 애국가를 내보내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하는 멘트를 하는 데 감개가 무량해서 목이 메이고 절로 눈물이 나왔다”고 회상했다. 그 당시만 해도 뉴스 자료를 찾기가 힘들어 LA타임스기사를 번역하고 여행자들이 가져오는 한국신문으로 뉴스를 진행하면서 아나운서, 기자, 앵커 등 1인 다역을 맡던 시절이다.
1976년 KBC 방송 초대방송국장, 1983년 KBLA 한인방송 뉴스 캐스터, 1984년 KITN-TV 교육방송 뉴스 캐스터 등을 지낸 김봉구 아나운서는 “한국에서 한국 전쟁후 격변기를 견디며 방송을 했고 한국어 방송을 한다는 것 자체가 힘들었던 미국에서도 TV 방송의 개척자로 방송발전에 기여한 점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고 밝혔다.
미국에 오기 전 한국일보 행사와 사업을 진행한 그는 “1960년부터 5년동안 한국의 미스코리아 대회 단독 사회를 맡았는데 꾸짖기만 하던 당시 장기영 사장에게서 1962년엔가 처음으로 칭찬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런 인연으로 인해 1972년 미국에서 처음 열렸던 남가주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심사부위원장과 사회를 맡아 산파역을 담당하기도 했다.
■서예가로 꽃피운 제2의 인생
그는 1977년 1월16일 회원 16명과 미주방송인협회를 창립하고 초대 회장을 맡아 방송인의 질적 향상을 위해 세미나를 진행하는 일을 하면서 2002년에는 방송인의 대변지 ‘미주방송’을 창간했다. 평소에 글씨를 잘 쓴다는 이야기를 들어 서예를 배우고 싶었지만 좀처럼 기회를 갖지 못하다가 70세가 넘어서야 은퇴하고 74세에 처음으로 한국교육원에서 서예에 입문하게 되었다. 그는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 등 5가지 서체를 모두 섭렵하고 급기야 2008년과 2010년의 한국 민족서예대전에서 예서체와 초서체 작품으로 두 차례 특선에 뽑혔다.
특히 2010년 초서체로 입상한 이율곡의 ‘구퇴유감(求退有感)’에는 임금에게 세 번 상소하고 물러나기를 허락 받고서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쓴 율곡의 마음이 그에게도 배어있으며 그가 늘 지키려했던 따스한 마음가짐이 서예를 통해 전해져온다.
■말 한미디도 따뜻한 향기로 남고 싶어
새해에 미수(米壽·88세)를 맞게되는 김봉구 미주방송인협회 명예회장은 “기자나 방송인의 말 한 마디에서 듣는 사람들은 말하는 사람의 음성, 억양, 지성적인 분위기를 통해 말의 향기를 느낀다”며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공감하고 감동하는 말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언론인은 “모름지기 격조높은 지성과 따뜻한 인간미를 겸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고 “한국일보가 창간 50주년을 맞아 새해에도 독자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는 정상의 신문으로 계속 발전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세대간에 소통이 잘 되고 화합하고 단결하는 한인사회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밝히고 “죽을 때까지 보행이 자유로운 몸으로 건강하게 사는 것이 꿈”이라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김봉구 회장 약력
·1956년 동국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1956년 한국 최초 TV 방송 HLKZ-TV 아나운서
·1962년 KBS TV 개국 초기 인기프로그램 진행
·1968년 KBBI, KBOA 한국어방송 뉴스캐스터
·1972년 미주한국어 TV방송(CH22) 방송위원
·1977년 미주방송인협회 초대 회장, 명예회장(현)
·1983년 한미문화협회 창립이사, 상임고문(현)
·2008년 2010년 한국민족서예대전 특선
<
박흥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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