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참전용사로 시애틀 상공회의소 회장직을 30년 가까이 역임하며 워싱턴 업계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조지 더프(사진)가 새해 첫날 그의 머서 아일랜드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91세.
디트로이트 출신인 더프는 1968년부터 1995년까지 시애틀 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재임하며 워싱턴주 컨벤션센터(현 시애틀 컨벤션센터) 창설, 시택국제공항의 제3 활주로 확장, 매리너스 구단의 시애틀 잔류 등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업에 조력자 역할을 했다.
시애틀 상공회의소의 레이첼 스미스 현 회장 겸 CEO는 더프가 국내 및 지구촌으로 향하는 시애틀의 연결고리를 확장시킨 최초의 지도자 중 한명이었다며 그는 기업가들에게 세계에 눈을 돌려 영감을 얻고 관계를 증진시켜 시애틀을 발전시키도록 항상 격려했다고 회고했다.
더프의 가장 두드러진 업적으로 매리너스 잔류가 꼽힌다. 그는 매리너스의 전 구단주가 팀을 플로리다로 옮기려하자 이를 시애틀에 잔류시키기 위해 다른 협상요원들과 함께 레드몬드의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를 설득, 1992년 구단을 1억2,500만달러에 인수토록 했다. 닌텐도는 2016년 매리너스 구단을 퍼스트 애비뉴 엔터테인먼트사에 6억6,100만달러에 매각했지만 팀은 여전히 시애틀에 남아 있다.
그는 육군에 징집돼 1952년부터 1954년까지 한국전에 파병됐다. 제대 후 디트로이트 상공회의소 부회장이 된 더프는 악명 높은 디트로이트 폭동(1967년)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업계의 뒷수습을 이끌었다. 경찰의 무면허 술집 급습으로 시작된 이 폭동은 사망자 43명, 방화 1,700여건, 체포자 7,000여명을 냈다. 더프는 이듬해인 1968년 시애틀 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영입됐다.
더프는 은퇴 후 가족과 함께 ‘공동 상속자 사역회’라는 기독교 자선재단을 창설, 개발도상국가의 장애인들에게 휠체어를 제공하는 ‘무료 휠체어 봉사회’ 등 비영리단체들을 지원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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