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을 방문했을 때, 서울 잠실에 사는 친구(최항교)가 뉴욕에서 온 나와 캐나다 밴쿠버에서 온 친구(유성)를 차에 태우고 경기도 양평 별장으로 데려갔다. 양평에는 서울 사람들의 별장도 많고, 은퇴후 이곳으로 이주해 새 보금자리를 꾸민 이들도 많았다. 전통집들이 양옥집들보다 훨씬 적다.
양평은 학창시절에 학교 연습림이 있어 왔던 곳이다. 그때는 지금처럼 집이 많지 않았다. 학교 버스로 왔었는데 맑은 개천이 있었고 한참을 걸어 가서 연습림에 이르렀다. 그때 지도하셨던 선생님은 삼림에 대해 말씀하셨다. 민박을 하였고 학교 운동장에서 학우들과 축구를 즐겁게 한 기억은 강산이 몇번이나 바뀔 세월이 지났건만 아직도 생생하다.
친구의 별장은 양옥으로 아담하게 지어졌고 정원에는 장미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꽃들이 미소를 띄우고 있다. 바닥과 벽이 황토로 된 방이 있어, 들어가니 시원했다. 점심식사를 하고 나서 양평 용문산 관광단지 큰 주차장에서 내렸다. 용문사 가는 길에 약간 오른쪽으로 올라가니 용문지구 전투 전적비가 있다. 전적비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한국전쟁의 승패를 가름하는 건건일척의 대회전이 벌어지던 날, 결사의 머리띠를 두른 청성장병들이 이곳 용문산 북록에서 사주방어진을 펴고 중공 오랭캐의 인해전술을 분쇄하여 몸으로 나라를 지키니 삼가 그 큰 뜻을 받들어 여기에 공적비를 세운다.” 나는 이 전투에 참여했던 선배 장병들께 잠시 묵념을 드렸다. 청성장병은 6사단 장병을 의미한다.
나는 6사단 2연대 인사과에서 3년 동안 군복무를 하던 당시 전화를 받을 때는 항상 먼저 “용문!”이라는 구호를 외치곤 했다. 이는 우리 2연대가 1951년 5월 용문산 전투에서 중공군의 춘계 대공세를 격퇴하고 대승을 거둔 ‘용문산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부여받은 자랑스러운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용문산 전투는 5월 16일부터 21일까지 7일간 치열하게 벌어졌다.
장도영 6사단장은 19연대와 7연대를 좌익과 우익에서 엄호하고 2연대를 중앙에 배치하는 방어진을 전개했다.
거침없이 진격해오던 중공군 63군 소속 3개 사단이 2연대 북쪽에 진을 쳤다. 중공군 총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는 중동부 전선에 병력을 집중배치하고 5월 총공격을 감행했다. 국군 2연대는10배나 되는 중공군을 용문산 북사면에서 맞이하여 결사항전의 혈투를 벌여 크게 승리했다.
육군 2연대의 결연한 사수 의지, 유엔군 포병의 화력지원과 미 공군의 제공권 장악 등이 승리의 요인이었다. 중공군은 수천명의 사상자를 내고 퇴각했다.
이 전투의 승리로 국군이 청평댐을 수복하고 소양강과 화천저수지(파로호)로 진격하여 전선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조금 더 걸어가니 용문사의 은행나무에 이른다. 나이가 약 1,010살 가까이 되는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 38.8m, 뿌리부분 둘레 15.2m 라고 한다. 이 은행나무는 통일신라 경순왕의 아들인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울분을 가슴에 안고 금강산으로 가다가 심었다는 전설이 있다.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조선 세종 때 정3품인 당상관이란 품계를 받을 만큼 특별한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온 나무로서 천연기념물로 보호되고 있다. 용문사는 신라 신덕왕2년인913년에 승려대경(大境)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러 차례 중창했으나,대한제국 순종이 왕위에 오른1907년에대한제국 군대해산으로 의병 운동이 일어나면서 의병의 근거지가 되자일본군이 불태워버렸다. 1909년부터 부분적으로 중건했으나 한국전 때 다시 파괴되었다.
오늘날의 대부분의 건물은 1982년부터 중건된 것들이다. 청소년 시절의 정다운 친구들과 유서 깊은 양평에서 황혼의 길목에서 조국 역사의 굴곡을 둘러보니 감회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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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관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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