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미술관 National Gallery of Art - 두번째
르노와르의‘A Girl with the Watering Can’, 1876, Courtesy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왼쪽). 지오토의‘Madonna and Child’, 1320/1330. by David Hwang
미술관으로 들어간 정치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벚꽃을 보려는 관광객으로 워싱턴이 들썩거린다. 복잡함을 알면서도 다시 워싱턴 D.C.를 나가는 이유는 거부할 수 없는 이 도시의 아름다움 때문이다. 워싱턴이 가진 미를 깊이 음미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흐드러지게 피는 꽃잎과 향기, 즐비한 고전적 건물들, 그리고 군중들의 물결은 이 도시를 숨 가쁜 희열로 몰고 간다. 미국과의 외교를 위해서 일본 국화인 벚꽃을 미국에 선물한 일본 동경 시장은, 백년 후 미국과 일본이 어렵게 다시 동맹관계를 회복하려 할 때, 이 벚꽃 외교가 어떻게 쓰일지 예견했을까?
일본은 19세기부터 문화의 위력을 알고 유럽의 국제 박람회에 또 유통 시장에 자신들의 예술을 적극적으로 홍보해 온 나라이다. 문화 공간인 미술관이 정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상아탑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적극 투자를 해온 것이다.
사실 미술관의 발생 자체는 가장 정치적인 것이었다. 최초의 대중을 위한 뮤지엄인 영국의 대영 박물관이나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은, 국가주의(Nationalism)가 제국주의로 번지면서 식민지 늘리기에 경쟁을 하는 가운데, 열강들이 정복한 식민지의 예술품이나 문화재들을 전시하며 국력을 자랑하기 위함이었다. 큰 박물관들에 있는 이집트 섹션이나 그리스 그리고 동양 섹션 등은 모두 그렇게 해서 모아진 것들이고, 현재 노략당한 예술품들을 돌려달라는 과거 식민국가들의 반환 청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식민주의의 각축전에 끼기에 너무 늦게 시작한 미국의 박물관들에 전 세계 문명을 두루 두루 갖춘 컬렉션이 드문 것도 그런 이유이다. 19세기 프랑스 파리의 인간 박물관에서는 심지어 피그미 족이나 아프리카 원주민을 우리에 가두어 놓고 구경을 시키기까지 하면서, 이러한 전시를 통해 국력의 우위를 자랑했을 뿐 아니라, 국가가 지향하는 가치관, 도덕성, 문화의 척도를 제도화하고 정당화해 왔다.
미술만 놓고 본다면, 가장 바람직하게 국가가 인정하고 지지하는 미술 성향을 수집해 놓았다고나 할까? 박물관의 가장 큰 기능 중 하나가 교육이라면, 관객은 국가가 유도하는 패러다임을 박물관 소장품들을 통해서 자연스레 흡수하여 내면화 하게 되는 문화 교육을 무의식적으로 받게 된다.
이러한 박물관의 교육적 기능을 잘 인지한 미국은 스미소니언 미술관과 박물관들에 엄청난 국고를 쏟아 붓고 있는 것이다. 세계 정가의 중심지 워싱턴 국립 미술관에서는 무슨 패러다임을 우리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일까?
워싱턴과 신고전주의 이념
짧은 미국의 역사만큼 미국 미술도 미천한 역사일 수밖에 없다. 초기 정착민들은 생활이 너무 힘들어 예술은 생각도 못했을 지경이다. 아니면 겨우 유럽 예술을 모방 각색하는 것이 전부였다. 제대로 된 미국 미술은 미국이 독립을 한 이후 새로운 국가를 설립하는 그 시점과 맞물리고, 그 당시는 유럽의 신고전주의가 막 유입되는 때였다. 이성적이고 지성을 강조하며, 도덕성과 국가를 위한 헌신으로 무장된 공화국의 이념을 표방했던 유럽의 신고전주의는 미국의 공화주의 건국이념을 그대로 대변했다.
신고전주의는 말 그대로 새로운 고전, 즉 그리스 로마의 인본주의의 부활이다. 이 철학이 스며있는 것이 내셔날 몰의 건축물들이고,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국립미술관과 국회 의사당이다. 서관의 입구는,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을 연상시키는 삼각형 모양의 현판(페디먼트)와 아이오닉 기둥으로 되어있다. 이는, 로마제국이 답습했고, 르네상스가 부활한, 그리스 고전의 건축 양식으로서 19세기에 신고전주의로 다시 부활되었고, 그 근저에 흐르는 인본주의는 미국 민주주의를 이끌어가는 중심사상을 상징한다.
미국의 이상을 구현하는 공화주의와 신고전주의 이념의 산실. 그것이 국립 미술관인 것이다. 그 이상은 평등과 자유를 추구하며, 이성적이고 균형 잡힌 진리를 탐구하는 인본주의를 나라의 근간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국립 미술관에 유럽 명품 컬렉션이?
중세 말기의 비잔틴 양식의 그림들이 이 미술관에서는 가장 오래된 컬렉션이다. 기독교 미술에 관심이 많은 필자는 이 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즐겁다. 이 방은, 마치 주요 컬렉션인 르네상스로 이동하기 위한 서곡처럼 펼쳐져 있는데, 특히 이 중세 컬렉션 중에서도 지오토의 그림은 백미이다.
아직 엄격한 성모 마리아의 모습이지만, 실제 피가 흐르는 살을 가진 여인으로 표현되었기 때문에 ‘인간 중심주의’인 르네상스를 시작한 아버지로 높이 평가 받는다.
이태리 르네상스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활약한 피렌체 외에도 벨리니의 축제 장면이 펼쳐지는 감각적인 도시 베니스에서도 꽃을 피웠다. 며칠 내로 이태리 여행을 떠나는 필자는 특히 낭만적인 베니스를 다시 만날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 그만큼 이곳에서 이루어진 르네상스 미술은 피렌체의 그것과는 다른 시적인 운치와 정서가 있다.
르네상스가 시작된 또 다른 지역인 북유럽에서는 유화를 처음 시작한 얀반 아이크의 ‘수태고지’가 이 미술관의 명품중 하나이다. 유화 덕에 매끄럽고 다양한 색채 표현을 했을 뿐 아니라, 이 작품에는 기독교 상징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북구 르네상스 작품들은 이처럼 상징주의를 자연스레 일상 사물 속으로 숨겨 두었다. 예를 들면 백합은 마리아의 순결을, 마리아 뒤의 세 개의 창문은 삼위일체를 의미한다. 이같이 감춰진 비밀을 알지 못하면 작품의 의미를 알지 못하게 되는데, 그림의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보는 것을 미술사의 한부분인 도상학이라고 한다.
유럽의 모던아트와 미국의 실용 미술
국제적인 규모로 널리 퍼진 바로크 미술과 특히 렘브란트의 방을 거쳐, 로코코 그리고 신고전주의를 거쳐 지하 전시장에는 조각과 가구, 그리고 현대 미술이 전시되어 있다.
조각 작품은 로댕의 청동 조각 ‘생각하는 사람’과 드가의 ‘댄서’가 유명하다. 특히 이 두 조각은 다른 19세기의 조각가들보다 독특하고 표현적인데, 로댕은 표현성이 그렇고 드가는 재료 때문에 더 그렇다.
드가는 ‘댄서’라는 작품에서, 전통적으로 흔히 보는 대리석이나 청동 대신에, 왁스로 몸통을 캐스팅 하였고, 실제의 발레리나 스커트, 슈즈, 머리카락 등을 사용하여 최초의 믹스드 미디아를 탄생시켰다. 드가가 매달렸던 발레리나들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은 슬픈 사연을 가진 소녀들이다. 집안이 어려워서 어릴 때 발레 학교에 들어가서 훈련하며 많은 경우 후원자를 만나면 그들의 숨겨진 애인이 된다.
반면에 19세기 섹션으로 들어서서 만나는 여인들, 특히 르노와르의 소녀는 행복하고 천진무구한 모습이다. 가족 중심주의였던 르노와르는 모네와 더불어 인상파를 시작했지만, 모네처럼 추상화에 가까울 만큼 즉흥적인 붓 터치에 매달리는 극단으로 치닫지는 않았다. 오히려 중간에 선회하여 다시 윤곽선과 사물의 구조를 되살리는 그림을 그렸다. 그에게는 전통적 관념 특히 가족의 행복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가치였다. 그의 그림은 삶의 기쁨, 가족에 대한 사랑이 언제나 넘쳐나고 있다.
수준급 식당과 뮤지엄 스토어
서관 관람이 끝나면 휴식을 취할 장소가 두 군데가 있다. 서관 지하의 Cascade Cafe는 다소 고급스런 이태리 레스토랑이고, 동관과 서관을 연결하는 곳에 위치한 방대한 Garden Cafe는 골라서 먹는 재미가 있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카페테리아 양편으로 그리고 1층 연결관에도 뮤지엄 스토아가 있는데, 미술사 서적들 뿐 아니라 프린트, 엽서, 가방, 보석, 스카프, 장식품 등 다양한 기프트를 살 수 있고,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국립 미술관 소장품이 프린트 된 상품들을 구입할 수 있다.
동서 관을 연결하는 곳에 설치된 Leo Villareal의 컴퓨터로 프로그램 된 빛의 설치 작품을 예술로 인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만큼 삶과 예술은 가까워져 있다. 미술 감상 외에도 강의, 음악회, 영화 상영, 학생 프로그램, 그리고 투어를 선택할 수 있다.
특별전시는 세계적인 수준이므로 웹 사이트를 점검하거나 뉴스레터를 등록하여 정보를 받아보며 놓치지 않고 자주 방문한다면, 인문과학적 지식과 문화적 소양에 많은 발전이 있을 뿐 아니라, 더욱 풍부하게 누리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마지막 순간까지 배우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 중의 한분이시라면….
(월-토: 오전 10시-오후 5시. 일: 오전 11-오후 6시 개관)
이정실 WUV 교수
미술 평론가, 독립 큐레이터
GWU, UMD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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