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킹스맨’ 포스터에 나오는 스파이 구두(위). 영화 007에서 선보인 만능 차(아래 왼쪽). 비밀 수신기.
•주소: 800 F. St. NW Washington DC 20004
•개장시간: 9시에 문을 열지만 문 닫는 시간은 오후 6시부터 9시 사이로 일정하지 않다.
•티켓 구입: (202)393-7798로 전화를 하거나 인터넷에서 spy museum을 찾아 예매하여야 한다.
•주차: 20불이 넘는 사설 주차장들이 있으며 인근 도로에 스트릿 파킹을 할 수 있다.
본드걸의 추억 떠올리며 들어간 곳,
나오는 길에 모자 쓴 신사를 보며
누구랑 접선하려고 서성이나 생각하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본드걸의 추억
나의 집 TV의 한 채널에서 한 달에 걸쳐 007 제임스 본드 영화를 특별기획으로 방영하고 있다. 그래서 요즈음 가끔 이 007 영화들을 본다, 이 프로그램을 보자니 옛날 생각이 나기도 한다. 1964년 내가 해군 소위로 근무하던 중 대구에 출장을 갔었다. 그런데 길가 포스터를 보니 ‘007 위기일발’이라는 것이 눈에 띄었다. 서울에서 하도 야단이라 좀 잠잠하면 보리라 했다가 대구니까 표를 쉽게 사려니 하고 극장에 갔다. 표를 샀다. 그런데 이것은 내가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마구 표를 팔아서 복도까지 사람들이 곽 찼고 그래서 꼬박 2시간을 꼼짝달싹도 못하고 서서 보았다.
그러나 두 시간 서서 보았다는 불평을 할 처지가 아니었다. 이 영화에 매료되었다기보다 충격을 넘어 쇼킹한 것이었다. 세계를 관광시키는 무대, 뇌살시키는 소위 본드걸의 등장,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 그리고 기상천외한 무기, 자동차 등으로 1964년에 살고 있었던 나에게는 ‘이러한 영화도 있을 수 있구나’ 하는 쇼킹이었다는 말이다. 이제 TV로 20편 넘게 상영하고 있는데 이제는 그때의 충격은 아니지만 그래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브라함 링컨도 스파이를 활용했다니
입장료에도 ‘음모’가
그래서 스미소니언박물관의 하나는 아니지만 워싱턴에 있는 ‘스파이 박물관(Spy Museum)’ 을 가기로 했다. 인터넷 웹 사이트에 들어가니 티켓은 미리 사라고 한다. 그러면서 혼잡하니 10시 입장을 권한다. 입장료가 일반 21.95달러. 시니어와 군인은 15.95달러, 7-11세의 어린이는 14.95달러이다.
이렇게 전날 표를 사고 부지런히 10시에 도착했다. 한정 판매를 해서 한 그룹 인원들을 큐레이터나, 가이드가 인솔하고 다니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냥 입장시키어서 마음대로 구경하라는 것이었다. 스파이 박물관 사람들은 음모가 몸에 배어서 표 파는 것까지 음모가 아닌가 하면서 미소를 지어 보았다.
입장료를 세 부류로 다르게 받았다는 것이 어쩌면 이곳을 찾는 방문객의 3개의 색다른 취향을 말한다고 해도 좋을 듯 했다. 7-11세의 어린이들이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여러 컴퓨터들이 많이 있는가 하면, 액션, 스릴을 즐기는 젊은 또는 성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여러 스파이들의 물품들도 진열되어 있었다. 아마도 007 영화도 이러한 것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역사적 사실 등 여러 자료도 꽤나 되었다.
위장의 심리학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면 1층은 007 영화 2012년 최신작인 ‘스카이 훨스’에 등장하는 자동차(Jaguar XKR), 침몰한 잠수함을 뚫고 들어가던 수중 함정(Floating dragon) 등과 악당 ‘라울실바’가 입었던 옷이 진열되어 있다. 그리고 홀 안내원이 3층에서 시작하니 올라가라고 한다. 그러면서 ‘니가 누구라고 위장하고 싶은 사람을 골라 외어 두라’는 안내문이 흥미를 돋운다. 그런데 내 모습에서 예를 들어 ‘이란에서 태어나 1970년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을 나와서 무슨 회사에서 근무했다’ 라고 외어 봤자 아무리 변장을 해도 속일 수 있겠는가?
씁쓰레한 생각이 들다가 오래전 윌리암 홀덴이 주연한 영화 ‘17 포로수용소’ 의 라스트 씬이 생각났다. 포로수용소에 나치 스파이가 미군 포로로 위장하여 잠입한다. 마지막에 윌리암 홀덴이 이 스파이의 정체를 밝히려고 속사포 같은 속도로 질문을 한다. 2차 대전 발발일에 뉴욕에서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는 그 스파이가 사실 독일에서 즐기고 있었고, 파티 시간이 뉴욕과의 시간차를 깜박하는 바람에 들통이 나는 씬이었다. 누구로 위장한다는 것(cover identity) 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스파이의 창시자 손자
3층에 들어서니 7-11세 아이들의 천국인 듯 싶었다. 주로 어머니들이 주위에서 마음껏 공상의 날개, 그리고 컴퓨터에 몰입하고 있는 아이들을 미소지으며 돌보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런가 하면 어른들은 도청기구, 몰래 카메라, 위장술, 전자 통신 등 여러 기구들을 보고 즐기고 있었다.
물론 나도 이것들을 호기심을 갖고 보기도 했지만 관심을 끈 것들을 이야기하자면, 미국의 전설적인 스파이 버지니아 홀, 예술가로 위장한 소련 스파이 에밀 골드훠스(Emil Goldfus)가 1957년 들통이 나서 복역 중 1962년 U-2기 조종사 게리 파워(Gary Power)와 맞교환 했던 사실, 러시아 초등학생들이 미 대사관에 우정의 표시로 보냈던 목각에 도청장치가 붙어 있었는 목각, 그리고 미국과 러시아가 도청장치를 서로 경계해서 재료를 본국에서 찾아와서 25년을 걸쳐 대사관을 지었다면서 도청 단면도를 보여주는 것들이었다.
스파이의 역사관에 들어서면 가운데에 진열된 것이 있다. 손자병법 책과 관련 글이다. 이 책을 영어로 ‘art of war’라고 소개하고 있고, 손자를 ‘Sun Tzu’라고 써 놓고, 스파이의 창조자로 소개하고 있다. 사실 손자병법 하면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곧 스파이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지 않는가.
꽤나 흥미로운 것은 서양역사에서 최초의 스파이는 모세가 여리고 성을 정탐하려고 보낸 여호수아가 첫 번째라고 소개하고 있다. 또 카르타고 한니발, 줄리어스 시저 역시 스파이를 잘 이용한 장군이라 소개하고 있는가 하면 트로이 목마 조각품도 진열되어 있다. 그리고 조지 워싱턴 또한 스파이 활용을 아주 잘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복도에 아브라함 링컨의 사진이 보이는데 밑에 남북 전쟁시 맥도웰 장군과 함께 스파이한테 보고를 받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마타하리의 사진
영국 황실에서 관리하던 스파이 진열방을 나서면 1차 세계대전 당시 세계사에서 가장 믿기 어려운 그래서 가장 훌륭하다는 매혹의 댄서 마타하리 사진부터 미국의 인종주의가 싫다며 프랑스로 건너가 프랑스 레지스탕스를 도운 배우 조세핀 베이커 사진, 그리고 다리 각선미가 최고라고 지금까지 알려진 독일 배우 마리네 디트리히가 2차 대전 말기에 미국을 도왔다며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2층으로 내려가는 복도를 시작으로 007 영화의 포스터부터 여러 소재 설명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고혹스런 본드걸들의 사진을 뒤로 하고 이곳을 떠나 주차장으로 갔다. 내 차가 보인다. 뒤 켠에 내 모자가 보인다. 스파이들이 접속을 할 때에 차안에 책, 담배값, 또는 표시 등을 한나고 한다. 내가 누구와 접선하려고 글자가 있는 모자를 놓았나. 차를 몰고 주차장에서 나왔다. 할일 없이 서성거리는 신사가 보인다. 저 친구 누구와 접선하려고 기다리는 것인가….
아이구, 이 무슨 엉뚱한 생각인가 내가 생각하니 스파이 박물관에서 그만 내 머리가 돈 것 같다. 웃음이 나온다.
글/이영묵
미주 서울대 총동창회장 역임
워싱턴 문인회 회장 역임
한국 소설가협회 회원
사진/황휘섭
한국 사진작가협회
워싱턴지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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