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리어 앤드 새클러 갤러리: 스미소니언 아시안 아트 미술관 (1) The Arthur M. Sackler and Freer Gallery of Art
파라오의 두상(왼쪽). Spouted vessel with gazelle protome(오른쪽 위). 프리어 갤러리의 아치와 실내 정원.
“정갈한 지상 정원, 하지만 진짜는 지하에 있어”
지하에 진짜 모습이
워싱턴 D.C.의 인디펜던트 거리, 랑팡 플라자의 거대한 정부 건물 맞은편에 위치한 아담하다 못해 자그마한 프리어 앤드 새클러 갤러리로 들어서면, 보라 빛의 팬지들이 관람객을 먼저 맞이한다. 박물관을 들어서는 느낌보다는 아담하게 정리된 정원에 들어서는 느낌이 강하다.
스미소니언박물관인데 건물이 왜 이리 작지? 하는 의아심으로 시작되는 이 박물관은 지상에 드러난 건물보다는 지하에서 그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다. 지하에 구축된 박물관을 보면, 하늘을 찌를 듯 서있는 거목들의 위용이 지하에 뿌리를 박고 오랜 세월 토양을 통해 많은 잔뿌리들과 큰 뿌리들이 사방으로 뻗으며 지상의 나무를 지탱하고 성장시키듯, 문화 또한 우리의 삶에서 보이진 않아도 “우리 삶을 지탱하는 에너지의 근원이 되고 있다”라고 하는 무언의 메시지처럼 들린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프리어 앤드 새클러 갤러리에서 만나는 아시안 문화는 미국의 비 아시안 인종들에겐 뭔가 색다른 느낌을 줄 것이다. 비록 관람객들이 프리어 앤드 새클러 갤러리에서 만나게 되는 아시아 문명 혹은 문화의 단편이 충분하지 않겠지만 마치 빙산의 일각을 보며 해양에 잠긴 거대한 빙산을 연상하듯, 오랜 시간을 통해 이루어온 아시아 문화에 대한 새로운 견해를 갖게 될 것이다.
아시아의 시대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인 중국, 인도,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이집트가 모두 아시아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심장한 역사이다. 이집트가 아프리카에 걸쳐 있기는 하나 나머지 문명들은 고대로부터 세련되고 고도의 예술을 발전시켜 왔을 뿐 아니라, 서구문화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쳐왔다.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라고도 말했는데, 스미소니언 그룹 중에서 아시아 미술관이 있는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 예전에는 연인들이 데이트할 때 식견과 재력을 뽐내기 위해, 프랑스 레스토랑으로 데이트 장소를 잡았다면, 지금은 일본 스시집을 가서 젓가락을 사용하며 능숙하게 스시를 시킨다고 할 만큼, 아시아를 잘 아는 것은 문화 엘리트들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다른 나라와 문명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 순수한 학문적인 열정일 수도 있으나, 아시아 문화재를 수집 소장하는 것이, 원래 미술관의 소명이 그랬듯이, 미국의 신제국주의적 정치적 태도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그러한 취지를 역으로 잘 활용하여서, 미술관에 거금을 기증하며 미국의 비위를 맞추는 정치인도 있지만 말이다.
도자기 몇점만 덜렁...아쉬운 한국관
한국 영화제
1919년에 완공된 이 미술관은 스미소니언의 첫 번째 세워진 미술관이다. 프리어 새클러 갤러리 이름에서 벌써 알 수 있듯이 스미소니언 아시아 미술관은 두개의 갤러리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지하를 통해서 연결된 두 건물은 사실은 많은 개별적인 기능들로 분담되어 있다. 전시 외에도 미술관의 기능과 목적이 교육, 연구, 출판, 커뮤니티 프로그램 개발 등으로 볼 때, 이 미술관만큼 충실히 그 사명을 다하는 미술관도 드물다.
바로 얼마 전 5월초에 한국 영화제와 더불어 ‘한국의 날’을 제정하여, 트렁크 아트 쇼, 한국 음식 소개, 전통 무용 공연, 연이나 제기 만들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한 바 있다.
사실은 아시아 미술 외에도, 이 미술관의 소장품은 미국 현대미술의 거장인 제임스 휘슬러 (1834-1903)의 컬렉션을 대거 소장하고 있다. 그야말로, 유럽의 모던 아트를 미국으로 연결시킨 주인공일 뿐 아니라, 동양 미술과 서양 미술을 만나게 해준 공을 세운 작가이다. 그가 만든 “공작의 방(The Peacock Room)”은 이 미술관의 별미인데, 이번에는 현대 작가 대런 워터슨에 의해 새롭게 이 작품을 재해석한 설치 미술을 특별전으로 하고 있다.
건축가 플랫이 디자인
두 개의 연결된 미술관 중 먼저 생긴 프리어 갤러리의 제퍼슨 드라이브 입구로 입장할 것을 권한다. 챨스 랭 프리어는 1880년대부터 미국 미술을 모으기 시작한 디트로이트 비즈니스맨이자 컬렉터이다. 특히 휘슬러의 그림, 드로잉, 프린트 컬렉션은 양으로나 가치로 볼 때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그의 미술은 중국이나 일본의 텍스타일, 세라믹, 병풍 등에서 영향을 받았다. 휘슬러의 조언으로 프리어 씨는 아시아 미술을 전 세계로부터 사들이기 시작했다. 1904년에 나라에 그의 작품을 기증할 때, 스미소니언의 이사들은 과학에만 치중하고자 기증을 주저했다고 한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적극적 개입이 없었더라면, 오늘날의 프리어 갤러리는 없었을 것이다. 프리어 씨는 갤러리가 오픈되는 1923년인 1919년에 이미 고인이 되었으므로 자신의 컬렉션이 어떻게 대중에게 다가설지 보지를 못하였다.
건축가인 찰스 아담스 플랫이 디자인한 프리어 갤러리는, 집 중앙에 4면이 막힌 정원이 있는 전형적 이탈리아 귀족의 자택을 연상케 하는 디자인이다. 정문에서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한 방향으로 가면 원점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중국 일본 등 2만여점 소장
프리어의 컬렉션은 6,000년 정도의 간격을 둔 다양한 시대와 장소의 작품들이다. 19세기 말의 영국의 주요 미학이었던 “예술을 위한 예술”에 치중한 그는, 또한 신석기 시대 중국 미술이나 19세기 미국 미술이나 아름답기로는 마찬가지의 정도와 기준이 있다고 믿는 그의 신념이 배어있다. 그의 사망 후에도 7,500점의 미술품을 기증받거나 구입을 계속하면서 22,369점으로 늘어났다.
컬렉션은 중국, 일본, 한국, 인도, 파키스탄, 터키, 이란, 이라크, 시리아, 중앙아시아, 그리고 중요한 초기 기독교 미술과 이집트 컬렉션이 있다. 그리 크지 않은 제한된 전시 공간 때문에 “공작의 방”에 설치된 “푸른색과 금색의 조화” 전시 외에는 끊임없이 영구 소장품들을 바꾸어서 전시하고 있다.
이 방은 원래 영국 부호의 다이닝 룸이었던 것을 프리어 씨가 그대로 사들여 미국으로 가져온 것이다. 250개 정도의 세라믹이 수집되어 있고, 휘슬러의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는 이 방은 프리어 갤러리의 보물이기도 하다. 바로 옆의 전시실에는 휘슬러가 어떻게 현대 미술의 감각을 터득하게 되었는지를 자연스레 알 수 있게 전시되어 있다. 어떤 특정 인물이나 대상을 그린다기 보다는 선과 색의 조화만으로 마치 음악과도 같이 추상적인 세계를 창출해 내는 것이다.
빈약한 한국관
아시아 미술은 불교 미술을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는 지역과 시대에 따라 다양한 교리와 양식으로 변모되어 갔고, 그 여정을 훑을 수 있는 것이 프리어 갤러리의 묘미이다. 인도의 양식과 중국의 불교 양식, 그리고 파키스탄 등이 모두 다른 것이다. 6세기 말경의 머리가 없지만, ‘우주적 부다’인 바이로샤나로 불리는 부처상의 겉옷 표면에는 우주의 에너지를 생성하는 요소와 장면들로 표현되어 있는 수작 중의 하나이다.
일본은 18세기 말부터 자국의 예술품을 홍보용으로 다량 생산 유포하였으므로, 서구 수집가들에게 수집이 용이했고 지금도 많은 비전문 서구인들은 일본 미술을 아시아 미술의 대표로 이해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 미술관에 자그마한 방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한국 도자기를 전시하고 있는 방이다. 수많은 한국의 회화, 조각, 공예품 등의 고미술품 대신에 몇몇 세라믹만이 우리 한국의 미술을 대표한다는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다음에 계속>
글 이정실 WUV 교수
미술 평론가, 독립 큐레이터
GWU, UMD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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