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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마당
친구들의 배신으로 달라진 한국역사
Ugly Korean  (ID : uglykorean)
흔히들 말하길 김재규의 가장 어이없는 실수는 자신이 영향력을 발휘할수 있는 중앙정보부로 가지 않고 자신이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할수 없는 육군본부로 간것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김재규의 가장 큰 실수는 친구들인 김계원 비서실장과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을 너무 믿은데 있었다. 김재규의 원래 계획은 박정희가 죽으면 곧바로 계엄을 선포하고 정승화가 계엄사령관이 되어 모든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승화는 계엄사령관이 되었어도 김재규를 돌봐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김재규가 그토록 믿었던 김계원 비서실장이 국방부 장관 노재현에게 사실을 폭로하였기 때문이다. 노재현 장관은 정승화와 전두환에게 김재규를 체포하라고 지시하였다.

훗날 재판정에서 김재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날더러 이야기하라고 하면 이번의 실패는 김계원 실장 때문에 있는겁니다. 김계원 실장이 24시간만 입만 막아줬더라도 모릅니다. 상황이 어떻게 됐을지."

박정희가 죽은 후에 김계원 비서실장은 청와대에 가서 국무위원 비상소집을 하였다. 1979년 10월 26일 오후 8시25분부터 8:40분 사이에 최공수, 고건, 유혁인 등이 나왔고, 수석비서관들이 나왔다. 8시 40분, 최규하 국무총리가 나오자 김계원은 다른 사람들을 부속실로 내보낸 후, 총리에게만 이렇게 말했다. "오늘 만찬장에서 김재규와 차지철이 싸우다가 김재규가 잘못 쏜 총에 각하가 맞아 서거하셨습니다. 계엄을 선포해야 합니다."

오후 9시5분, 구자춘 내부, 김치열 법무가 비서실 직원으로부터 '각하가 변을 당했다'는 말을 듣고 뛰어와 김계원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다그쳐 물었지만 김계원은 "간신배를 제거한다는 것이 각하가 다치셨다"라고만 말했다. 법무장관이 "차지철이 그 새끼 무엇을 했어"하고 흥분하자 김계원은 "죽었는지 모른다"라고 답했다.

오후 9시를 조금 넘은 시각, 국무총리가 청와대에 도착한지 10-20분 정도가 경과한 다음 김계원은 육군총장으로부터 온 전화를 받았다. 받고 보니 김재규였다. "지금 육군본부 방카에 참모총장이 있고, 곧 국방장관(노재현)도 올 것이니 총리 모시고 바로 B-1 방카로 오십시오."

김계원이 총리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자 총리는 아무 말이 없었다. 이어서 김계원이 총리에게 말했다. "김재규가 청와대 경호실이 무서워 못오는 것 같습니다. 빨리 계엄부터 선포하여 치안을 유지해야 하니 그리로 가시지요." 총리와 장관들이 따라 나섰다.

9:40분, 국방장관실에는 총리, 국방, 내무, 외무, 법무, 문공, 서종철특보, 유혁인정무, 김재규, 김계원, 정승화, 신현학부총리가 있었다.

김계원이 총리에게: "비상계엄을 선포하려면 국무회의를 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총리: "물론이지요. 계엄 사유를 무엇으로 할까요, 유고로 할까요 서거로 할까요."

김계원: "대통령각하 유고로 인하여 27일 00:00부로 계엄을 선포한다고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최규하 총리: "유고만 가지고 납득하겠습니까? 무언가 납득할 만한 이유를 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국무위원들도 내용을 알아야 의견을 교환할 수 있지요."

김재규: "유고는 안됩니다. 국내치안이 좋지 않아서 계엄령을 선포하는 것으로 해야 합니다."

최규하: "국내에 데모가 난것도 아니고, 계엄이 선포된 부산도 조용한데 그건 이유가 안 됩니다. 대통령 유고를 어떻게 국민에 안 알리겠습니까? 계속 보안을 유지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며 우선은 국무위원들도 납득하지 못할 것입니다."

김재규: "왜 안 됩니까? 소련은 1주일 이상이나 브레즈네프의 행적을 발표하지 않고 있었는데 2-3일 동안 왜 보안유지가 안 됩니까?"

최규하: "그러면 김부장이 국무회의에서 사유를 설명해 줄 수 있습니까?"

김재규: "예, 하지요."

26일 오후 11:30분, 국방부에서 국무회의가 열렸다. 신현학 부총리를 포함한 국무위원들이 반발을 했다. "대통령 사망여부부터 확인해야겠다. 대통령이 서거하셨다면 그 사실을 숨길 이유가 없다. 계엄을 선포하기 전에 병원부터 가봐야겠다."

국무위원들이 이렇게 반발하자 대통령 시해 사실을 숨긴채, 비상계엄을 선포하려던 김재규의 의도가 좌절됐다. 사태추이에 민감한 김계원은 이런 사실을 즉시 간파하고 마음을 바꾸었다.

26일 오후 11시40분, 김계원이 정승화가 있는 자리에서 노재현 국방장관을 불러 김재규가 시해범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렸다. 박대통령 시해현장을 지켜본지 4시간만의 일이었다. 노재현은 정승화와 전두환에게 김재규를 즉각 체포하라고 지시했다.

27일 새벽 4시,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정승화가 계엄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이때 까지만 김계원이 사실을 폭로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었다면 한국의 역사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김계원의 배신으로 인해 독재자 전두환, 노태우의 80-92년 역사가 새로 생겨났다.
2012-04-28 04:36:44
► 이 글에 대한 독자들의 의견
1   bu b ja [ 2012-04-28 09:59:55 ] 
쥐새끼들은 항상 있지요.

박정희를 쏜 김재규가

믿을노은 하나도 없다는

자기본보기 이건만

어리석은 인간

박정희 반만 닮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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