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우반숙’이끌어온 변완수 선생 29일 마지막 강좌
▶ “10년 세월 풍우한설 이겨낸 학인들에게 감사할 뿐”

변완수 선생이 삼우반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29일 마지막 ‘공개강좌’가 열린다.
“10년을 마치는 날, 내 혼자 마음속으로 울 것 같아요. 뭔가를 했다는 뿌듯함도 있지만 풍우한설을 무릅쓰고 삼우반숙을 찾아온 학인(學人)들이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마지막 수업을 앞둔 서숙(書塾)의 노(老) 선생의 목소리는 늦가을의 감빛처럼 그리움으로 물들어 있었다.
동양고전 강독을 위한 한문고전 서숙인 삼우반숙(三隅反塾)을 이끌어온 한학자 변완수 선생. 오는 29일(토) 그는 공개강좌를 끝으로 강단에서 내려온다. 2006년 삼우반숙이 문을 연 이래 십년만의 하단(下壇)이다.
“내 나이 올 겨울이면 여든 둘입니다. 나이도 있고 이제 물러나 그동안 미뤘던 일도 해야지요.”
그동안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동양의 진리들이 그의 칠판에는 빽빽했다. 매주 목요일 저녁 2시간씩 논어, 맹자, 노자, 중용, 대학을 비롯해 장자, 채근담, 예기, 사기, 연암 박지원의 소설, 조선 야사, 소학, 정도전 삼봉전, 율곡 선비 행장 등 숱한 고전이 강독됐다. 한국에서도 드문 원전 중심의 강의였다.
학인들에 따르면 풍우도 비켜난 10년 세월이었다. 강의를 위해서 버지니아 프런트 로열의 자택에서 매주 1시간40분씩 손수 운전하는 것도 마다 않았다. 피곤하면 모텔에 방을 얻어 숙박하면서 강단에 섰다. 폭설이 와도, 허리케인이 불어도 멈추지 않은 그의 가르침의 길은 부인상을 당했을 때 딱 한번 끊겼을 뿐이다.
“한문에 소양 없는 시대라 내가 감히 강의할 수 있었어요. 학위도 없는 사람이 독학한 공부로 기독교에서 복음을 전하듯 덕음(德音)을 전하려고 시작한 거지요.”
변완수 선생의 한학자로서의 삶은 그의 의지로 예정된 게 아니었다. 경북 문경에서 글 좀 아는 선비들이 인정하던 그의 집안의 가풍과 학풍은 어린 그를 자연스레 한문과 고전의 세계로 이끌었다. 문명의 전환을 예감한 아버지는 “한문 시대는 끝났다”고 말해 주었지만 이성이 역사를 지배한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으셨다. 6세에 동몽선습을 읽고 중학교 1학년 때에는 구양수의 필첩을 공부하며 한문의 소양을 쌓았다. 초등학교 6학년 무렵에는 청록집과 한하운의 ‘문둥이 시집’을 멋모르고 좋아하기도 했다 한다.
서울과 향촌을 오가는 학창시절을 거쳐 대학을 건성으로 다닌 그에게 처음 접한 일본 책들은 깊이 있는 정신의 세계로 본격 안내했다 한다.
“당시만 해도 한국의 철학이나 문학의 수준은 볼 게 별로 없었어요. 고전 소개서도 제대로 없었고요. 일본의 서적들을 접하면서 한시 작법도 배우고 고전의 깊이에 빠진 겁니다. 내 학문의 일생에서 중요한 계기가 된 겁니다.”
1967년 그는 유학차 도미했다. D.C.의 아메리칸대에서 국제대학원을 다니다 그만 두고 연방 정부에서 한국어를 지도하기도 했다. 택시 운전, 부동산 에이전트, 햄버거 가게… 생업은 모질었지만 그 와중에도 2001년 사해(四海)를 창간해 2005년 종간 때까지 6호를 냈다. 한자가 병기된 문예 인문 종합지였다.
“햄버거 만들면서 발행한 건데 한국 학계의 원로들도 놀랐어요. 사해로 인해 김태길 교수나 허세욱 교수 등 당대의 학자들과 허교(許交)할 수 있었습니다.”
변 선생은 오는 29일 오후 6시 애난데일의 코리아모니터에서 마지막 강단에 선다. 남들 앞에 나서는 걸 싫어해 평생 처음 하는 공개강좌다. 강의 제목은 ‘공자교와 유교’.
“잘못 되면 모든 걸 공자와 유교 탓을 하는 요즘 세태에 공자를 위한 변명(Apologize)의 시간이 될 겁니다. 좀 딱딱하게 느껴질까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은퇴 후 그는 무관의 한사(寒士) 같은 야인의 길을 걸을 계획이다. 한문 공부도 더 하고 조상과 관련된 아버지의 책도 번역할 작정이다. ‘논어 산책’이란 시도 다시 쓸 궁리다. 등단하지 않은 시인이지만 일생을 관통한 삶과 자연의 참뜻을 마지막 글쓰기에 담아보려는 것이다.
“평생을 제 자신인지, 기성인지에 반항만 하고 살았어요. 이제 여유로운 노년의 경지를 마음껏 즐겨볼 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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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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