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 포경수술에 대한 효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미 소아과학회는 지난달 “건강효과가 있다”는 공식 입장과 함께 이를 메디케이드 보험 적용대상에 포함시킬 것을 촉구했다.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소아과 전문의 그룹이 유아의 포경수술을 권장한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13년만의 일이다. 1999년 이래 이 문제에 중립적 입장을 견지해온 미 소아과학회는 지난달 27일 발표한 정책보고서를 통해“신생아 포경수술의 건강효과는 수술에 따르는 약간의 위험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는다”고 결론지었다. 미 소아과학회는 이어“신생아 포경수술에 보험혜택을 제공해야 한다”며 관계당국과 보험업계를 압박했다. 그러나“유아 포경수술의 최종선택은 부모에게 달려 있다”는 꼬리표를 달아둠으로써‘전면적 의무화’ 추천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10년 간 연구결과 HIV·HPV 등 감염방지 입증
수술 안했을 경우 평생 의료경비 더 들어가
선택은 부모에 달렸지만 보험혜택 제공 마땅”
정책 보고서를 공동작성한 앤드류 프리드먼 박사는 “이번 결정은 ‘하늘’에서 내린 평결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포경수술이 건강효과를 갖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의무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절차가 아니라는 뜻이다.
‘하늘’을 입에 올린 그의 발언은 포경수술이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종교적 의식인 할례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하다.
남성 생식기 귀두의 포피를 잘라내는 포경수술이 종교적 의식의 형태로 행해지는 것이 할례다. 포경수술이 순순한 의학용어인 반면 할례는 종교적 개념어인 셈이다.
구약성경 창세기 17장10절에 따르면 여호와는 유대인과 이슬람 모두가 민족의 공동시조로 떠받드는 아브라함에게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아라”고 명하고 이를 “나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언약”으로 세운다. 또한 11절과 14절에 걸쳐 “태어난 지 팔일 만에 포피를 베어 영원한 언약의 표징으로 삼되 할례를 받지 않은 남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고 선포한다.
그러나 바로 이 때문에 귀두의 포피제거는 건강효과에 초점을 맞춘 의학적 조치가 아니라 유대인들의 선민의식을 상징하는 종교의식일 뿐이라는 주장이 끊이지 않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논란이 확대됐다.
질병통제예방센터에 따르면 1970년대와 1980년대만 하더라도 미국의 유아 포경수술률은 무려 80%에 달했다. 그러나 2010년에는 이 비율이 55% 아래로 뚝 떨어졌다. 주된 이유는 실질적 효과를 둘러싼 논란과 이에 따른 보험 적용 문제 때문이다.
2008~2009년 금융위기로 심각한 재정난에 빠진 주 정부들은 소득층 보험인 메디케이드 플랜에서 포경수술을 제외시켰다. 1980년대 이후 건강효과가 있느니 없느니 뜨거운 논쟁에 휘말린 유아 포경수술을 보험 대상에서 빼기가 가장 만만했을 터였다.
현재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18개 주는 포경수술을 메디케이드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많은 의사들은 포경수술을 ‘성형’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정책보고서에 앞서 발표된 존스 홉킨스대 논문의 공동저자인 아론 토비안 박사는 지난 10년간의 연구결과는 음경의 포피 제거가 건강효과를 지닌다는 사실을 일관성 있게 보여 준다고 말한다.
아프리카에서 행해진 3건의 실험 결과를 통해 유아 포경수술이 HIV와 인유두종바이러스(HPV), 단순포진 등의 전염을 막아준다는 사실이 입증됐다는 주장이다.
그는 어렸을 적에 일찌감치 포경수술을 받은 남성의 섹스 파트너는 HPV와 세균성 질염, 트리코모나스 감염 위험이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포경수술이 이런 효과를 내는 것은 병원균이 번식하는 최상의 조건인 습도가 높은 환경을 제거함으로써 성병(STDs) 감염을 원천봉쇄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귀두 포피 안쪽은 에이즈 바이러스의 표적인 랑게르한스 세포가 특히 많은 곳이다. 한마디로 에이즈 바이러스 ‘취약지역’이다.
토비안과 그의 동료들은 컴퓨터에 기반을 둔 시뮬레이션을 개발해 포경수술 하락률이 실제로 STD로 연결돼 의료비용이 올라가게 되는지를 계산했다.
그 결과 포경수술률이 지난 수년간에 비해 훨씬 낮아진 50%선에 머문다면 같은 해에 태어난 아이들의 평생 의료경비는 80%를 기준했을 때에 비해 2억1,100만달러가 증가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반면 포경수술률이 10% 수준으로 떨어진다면 같은 해에 태어난 유아들의 평생 의료비용은 5억500만달러가 증가한다. 수술을 하지 않는 한 건당 313달러의 추가 경비가 들어간다는 결론이다.
이 시나리오 하에서 추가될 것으로 전망된 비용의 80%는 남성의 HIV 감염 치료경비다. 이 컴퓨터 모델은 HPV 전염에 의한 음경암과 자궁경부암의 치료와 같은 직접 의료경비만을 포함한다. 의사를 만나러 가는데 필요한 교통비와 성병 감염으로 발생한 소득 손실 등 간접경비는 제외한 것이다.
토비안 박사에게 존스 홉킨스대의 연구결과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주 정부가 경비절감을 위해 메디케어 적용 대상에서 포경수술을 제외하는 것은 “푼돈 아끼려고 목돈 잃는 격”이라는 사실이다.
메디케이드는 연방 정부의 자금지원 하에 주 정부가 운용하는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보험이다. 따라서 연방 정부의 명시적인 지침이 없을 경우 주 정부가 보험적용 대상을 결정하게 된다.
그는 “연방 메디케이드 프로그램에서 포경수술을 ‘선택적 서비스’가 아닌 ‘필수 서비스’로 재분류할 것”을 촉구했다. 전국의 모든 주 정부가 이를 보험적용 대상에 의무적으로 포함시키도록 메디케이드 프로그램 규정을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UCLA 건강 이코노미스트 알린 레이보위츠는 연방 정부가 포경수술을 메디케이드 플랜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지 않음으로써 미국의 빈부 간 의료 격차를 더욱 강화시켰다고 비난했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건강개선 효과가 입증된 포경수술을 메디케이드 보험 대상에서 제외시켜야 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냐”고 반문하고 “빈민층 부모에게 포경수술 선택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이들의 미래 건강에 대한 분명한 차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다트머스 인스티튜트 연구원인 엘린 메아라 박사는 아프리카에서 실시한 HIV 실험결과를 미국의 메디케이드 인구에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있겠느냐며 다소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메아라 박사는 “존스 홉킨스대 연구팀의 꼼꼼한 자료 해석은 칭찬받아 마땅하고, 분석결과 역시 현재 이 분야에서 접근 가능한 최상의 정보임이 분명하지만 아프리카에서 실시한 실험결과를 그대로 미국에 적용하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따른다”는 입장이다.
USC의 건강 경제학자 조엘 헤이 박사 역시 미 소아과학회의 공동성명이 나오기 1주일 전에 공표된 존스 홉킨스대의 논문에 ‘딴지’를 걸었다.
그는 유아 포경수술이 미래의 성병 확산을 막아 의료경비를 낮추어줄 것이라는 주장은 잠재적 효과를 근거로 아무런 증상도 없는 개인에게 돌이킬 수 없는 외과적 절차를 강요하는 윤리적 모순을 내포한다며 반대 입장을 천명했다.
하지만 일부의 반론에도 불구하고 존스 홉킨스대의 논문은 미 소아과학회가 유아 포경수술에 대한 지난 13년간의 중립적 입장에서 공식적인 지지 쪽으로 방향을 잡는 계기를 제공했고, 이는 포경수술 비중 감소 추세에 어느 정도 제동을 걸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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