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선생이 쓴 문화와 문명에 대한 비판서를 읽다보면 이 분이 과연 한국적인 정서를 제대로 가지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가령 한 가지 예를 들면 우리 조상은 얼마나 못 살았으면 먹는 것에 한이 맺혀 인사말에도 ‘밥 먹었느냐’는 것이다.
일견 언듯 듣기엔 기막히게 그럴싸한 탁견인 듯 하나 완전히 웃기는 소리임을 알아야 한다.
원시인에서 농경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한 씨족 국가의 형성 이후에도 밥을 굶는 종족은 이 지구상에서 부지기수였다. 2천년 3천년 전부터 유럽의 각종 인간들은 배불리 먹고 태평성대를 누렸던가. 러시아와 남미 등지는 어떠했을까. 과문이긴 하지만 필자는 아직 우리 민족의 조상이 다른 민족의 조상에 비해서 엄청 굶고 살았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또 우리 민족의 조상이 다른 민족의 조상에 비해서 형편없이 야만족이라는 말도 듣지 못했다. 다만 중국의 중화민족이 변두리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동쪽 오랑케(동이)라고 부르긴 했지만 말이다.
밥 먹었느냐는 인사말은 먹는 것에 한 맺힌 사람들이 하는 인사가 아니다. 남의 뱃속을 걱정해 주는 우리 민족의 따뜻한 마음 탓인 것이다. 정작 많이 굶은 놈들은 이런 따뜻한 인사를 할 여가가 없는 것이다.
인정이 넘치고 따뜻한 심성을 가진 것이 우리사람들의 기본 정서인 것이다. 어찌 상투적으로 ‘Good Morning’이나 내 뱉고 자기 할 일이나 하는 야만민족(?)의 인사법과 같을 수가 있으리요.
자고로 가난함에도 난동을 부리지 않는 심성을 가진 백성은 백의민족뿐이다. 가렴주구나 탐관오리 같은 사회 제도적 문제는 일단 차치하고서 우리의 기본 심성이 그렇다는 것이다. 쌀독에서 인심 난다고 먹고 살만하니까 Donation을 하고 그 이름을 게시판에다 써 붙이는 그런 식의 기본 심리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정서인 것이다.
근자에 와서 이어령 선생식의 우리 전통 비판이 창궐하면서 이런 따뜻한 인사말을 우리는 부끄럽게 생각하고 사용하지 않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자리를 차지하는 말은 죄다 서양의 번역된 언어들이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승리하는 하루가 되세요’등등이다. 무슨 국적 불명의 메마르고 살벌한 인사말인지 모르겠다.
’밤새 안녕하십니까’, ‘잘 주무셨습니까’하는 등의 古來의 인사말도 예외 없이 호된 비판을 받고는 우리의 일상적인 인사말에서 슬그머니 사라져 갔다. 얼마나 외적의 침략이 많았으면 그런 인사를 아침에 할 정도로 내일을 기약 할 수 없는 불안한 삶을 살은 조상이었냐는 것이다. 물론 웃기는 비판인 것이다.
나고 죽고 병들고 늙어 가는 생물적 연민의식(정서)에서 생겨난 자연스러운 인사말이란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 민족과 같이 비교적 한 장소에서 또 비교적 단일성을 유지하면서 반만년 문화 전통을 가진 민족은 땅이나 산이나 냇물의 이름 하나 하나에도 사연이 있고 동질적인 정서를 내포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값지고 훌륭하고 근사하다는 것이다. 그런 천박한 유물론적인 사고 방식으로 매도하고 집어 내 던질 것이 아니란 말이다.
단오나 칠석 같은 옛 풍속의 자리에는 발렌타인 데이나 할로윈 등이 판을 치게 되었다. 칠월칠석을 사랑의 날로 하면 얼마나 Romantic 했겠는가. 노랑머리 빨강머리에 정신을 홀랑 팔아 넘기고도 반미 데모에 열을 올리는 것은 참으로 웃기는 일이다.
우리 민족의 문화적 자존심이란 것은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을 만큼 특별한 바가 있다. 저 上古로부터 거의 절대적인 영향하에 있었던 중국의 문화도 우리의 의·식·주 生活에 손톱만큼도 영향을 주지 못했다. 입는 것, 먹는 것, 가옥 구조가 그렇게 다를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밥 먹었냐’는 인사말을 좋아한다. 이런 인사말을 주고받는 사이는 나쁜 사이가 될 수가 없다.
밥(음식)은 하늘님보다도 상 위에 위치함으로 반드시 물어야 하는 인사말인 것이다. 음식의 위신력은 너무도 대단하여 제사상에는 음식을 배열하는 것이다. 음식이 부르면 죽은 조상도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냥 맨 입으로 초청한다면 죽어서 뿔뿔이 흩어진 그들이 찾아오겠는가.
생명을 가진 것에 있어 밥(먹이)이 얼마나 절대 절명한 위치를 차지하는가는 실험이 필요치 않는 自明한 진리인 것이다. 우리는 그래서 인사말로 ‘밥 먹었느냐’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인사를 하고 남의 생명을 걱정해 보는 따뜻함을 키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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