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처음으로 정당의 모습이 등장한 것은 1787년이다. 존 아담스와 알렉산드 헤밀턴이 이끈 연방당(Federalists Party)과 토마스 제퍼슨이 주도한 반연방당 (Anti-Federalists)이 그것이다. 연방당은 비교적 보수적인 성향인 반면 반연방당은 진보적인 성향이었다. 그러나 1788년 첫 번째 대통령으로 선출된 조지 워싱턴은 정당인이 아니었다. 그는 정당정치가 나라를 둘로 갈라놓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의 우려와는 상관없이 2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존 아담스로부터 모든 대통령은 정당적 배경을 가지고 등장했다. 1826년에 이르러 연방당은 공화당(Republicans)으로 이름이 바뀌고 반연방당은 민주당(Democrats)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다. 양 당의 틈 사이에 가끔씩 제 삼 당이 등장했다가는 사라지고 하는 과정들이 있었지만 그 이후 지금까지 미국 정치는 진보적인 민주당과 보수를 표방하는 공화당의 양 당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말하자면 정당은 미국인의 성향에 있어서 얼마만큼 보수적이어야 하며 다른 한 편 얼마만큼 진보적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축의 역할을 해 주는 것이다. 그 양 축 사이에서 미 국민들은 때로는 보수의 손을 들어주고 때로는 진보 쪽으로 스윙하면서 견제와 균형과 조화의 선택을 해 왔다. 두 축이 견실히 서 있음으로써 나라의 진로가 극단으로 치닫는 것을 방지하고 계속해서 건강한 민주주의의 발전을 추구할 수 있었다. 이것이 미국의 힘이자 민주주의 힘이라고 나는 믿는다.
정당은 당연히 정권을 장악하는 것을 그 목표로 하지만 정권보다는 장구해야 한다. 정권은 매 시기마다 바뀔 수 있지만 정당은 그래서는 안 된다. 변하지 않고 있으면서 국민들에게 심판과 선택의 기준과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그래야 균형 잡히고 안정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선거 때마다 정당이 불쑥 생겨났다가 선거 후에는 갑자기 없어지거나 정치인들의 정략적인 이해를 따라 ‘헤쳐 모여’를 거듭하면 국민들은 무엇을 근거로 심판할 것이며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할 것인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역사에서 ‘3김 정치’의 공과는 좀 더 훗날 자세히 평가될 일이지만 지금도 분명히 드러나는 병폐 중 하나는 인치(人治)의 해악이다. 정치가 정당의 정책과 제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한 사람의 야망과 영향력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이다. ‘3김’ 이 후를 표방하는 사람들조차도 정당정치가 아닌 인치(人治)의 습성에 깊이 물들어 있는 것이 한국 정치의 답답한 한계다.
지난 번 대선 때에 하나의 ‘넌 센스’가 발생했었다. 한나라 당의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는 전당대회에서 이 인제씨가 낙선하자 경선에 불복하고 급히 다른 당을 하나 만들어서 결국 대통령후보로 출마를 했다. 민주주의는 대의정치이고 대의정치는 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결정과 약속을 존중하는 정치이다. 그런데 그 민주주의의 근간인 약속과 결정을 아무렇지 않게 깨트리고 오직 정권에 대한 욕심만으로 정책과는 전혀 관계없는 정당이 하나 생겨난 것이다. 그 정당은 선거 후에는 당연히 없어졌다. 선거 때마다 너무나 쉽게 당을 만들고 깨트리고 모으고 헤치던 ‘3김’씨의 솜씨를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대선 과정에서는 그것보다 훨씬 더 어처구니없는 또 하나의 ‘넌 센스’가 진행 중에 있다.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노 무현 후보가 본선에서 경쟁력이 없다고 민주당을 해산하고 신당을 만들어서 새 후보를 내 세우자는 것이다. 한 마디로 민주당은 정당으로써 자기 결정과 자기 정체성을 스스로 부인하고 있다. 무엇 때문에 결성되었으며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 지에 대해서 창피할 정도로 철학도 없고 자기 인식도 결여된 오합지졸들이다. 정당으로써 후보를 내었으면 끝까지 힘을 모아서 캠페인을 벌리고 그래도 선거에서 지면 다음 선거 때까지 현 정권의 정책을 견제하면서 건설적인 대안을 내고 그 때 또 다른 후보를 내어서 국민들의 평가를 받으면 되는 것이다. 그래야 국민들이 심판하고 선택할 근거가 생기게 된다. 보수와 진보간에 건설적인 대안이 제시될 수 있고 견제와 균형의 조화로운 발전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인치(人治)가 아닌 정책과 제도에 의한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다. 1860년, 아브라함 링컨이래 24년간 공화당이 지속적으로 정권을 잡는다. 그 사이 민주당은 매 선거 때마다 후보를 내 보냈지만 정권탈환에는 번번이 실패하다가 1884년에 가서야 마침내 선거에서 이기고 클리브랜드(Grover Cleveland)를 대통령에 당선시킨다. 주자는 계속 바뀌었지만 당은 바뀌지 않았다. 지금까지 서로 정권을 주고 받으면서 민주당과 공화당은 진보와 보수의 양 축으로 우뚝 서서 미국의 민주주의를 지켜나가고 있다. 대한민국도 이제는 인치(人治)의 구습을 벗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정당부터 어떤 개인의 야망과 영향력에 휘둘리지 않고 뚝심 있게 서야 할 것이다. rolcf@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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