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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영 <서울경제 뉴욕특파원>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갈수록 명분을 잃고 있다.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늙은 유럽’이라고 지칭한 프랑스와 독일이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명확한 증거를 찾을때까지 전쟁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미국에 맞서고 있다. 또 지난 15일에는 전세계에서 수백만명의 반전 연대 시위가 벌어졌다. 베트남전 이후 최대의 시위다. 게다가 미국이 이라크 북부 공격 루트를 확보하기 위해 터키에 260억 달러의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제의한 것은 돈을 주고 전쟁터를 사는 것이나 다름없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곳곳에서 강한 저항에 부딪치고 있다. 지난 14일 한스 블릭스 유엔무기사찰위원장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보고에서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의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힌 이후 사태가 급변하고 있다. 유럽연합(EU) 정상회담에서도 무력 사용은 최후의 수단이라는데 합의했다. 미국의 강력한 동맹국이었던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마저도 이
라크 전쟁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한발 물러서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고립에 빠졌다.
부시 행정부가 아직 유엔 외교를 중시, 이라크 공격을 골자로 하는 2차 결의안 상정을 추진하고 있다. 유엔의 합의를 얻지 못할 경우 전쟁 명분이 약해져 아랍권의 강한 반발을 사며, 막대한 전비와 희생을 치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2차 유엔 결의안에 동의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러시아Α薩뭇 이에 가세하고, 아랍 연맹도 전쟁 반대를 결의했다.
터키에 대한 자금 지원 협상은 미국의 전쟁 명분을 이해할 수 없게 만든다. 터키는 지난해 10월 총선을 앞두고 정쟁이 격화하면서 금융위기에 빠졌고,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160억 달러의 구제금융 지원을 약속받았다. 하지만 터키는 자구노력을 통해 흑자 재정을 꾸릴 생각을 하지 않고 전쟁을 서두르는 미국의 발목을 잡고 돈을 얻어내려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터키에 260억 달러를 지원하겠다는 협상안을 제시했으나, 터키는 320억 달러를 달라고 주장,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97년 한국이 외환위기를 당했을 때 IMF로부터 195억 달러를 지원받은 것에 비하면 터키 경제규모로 볼 때 엄청난 금액이다.
이것도 모자라 터키는 이라크 북부의 키르쿠크 유전에 대한 사용권을 달라고 미국에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이른바 전쟁 장사를 하자는 속셈이다.
미국은 터키 국경에 4만명의 지상군을 주둔시켜 전쟁 발발과 동시에 이라크 북쪽에서 공격하고, 남쪽에서는 쿠웨이트에서 지상군을 투입한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이에 터키에 주둔키로 예정됐던 미 육군 4사단 병력과 전차등 차량 9,000대를 실은 선박이 터키의 지중해 해역에 기다리며 협상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협상이 실패하면 이들 장비와 병력은 쿠웨이트로 향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터키 국경에서의 공격을 포기할 경우 전쟁의 리스크가 높아지게 될 것으로 군사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은 그동안 음력으로 이달 그믐(27일) 야간을 공격의 D-데이로 잡고 있었던 것으로 미국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전쟁이 3월말로 연기되면 사막의 뜨거운 열기로 전차와 대포를 움직이기 어려워진다는 것이 군사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콘돌리사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주말 NBC 방송에 출연, 외교적 해결의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며 유엔 합의가 없을 경우 단독전 불사를 강조한 것은 전쟁을 더 이상 연기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시사한 것이다.
이제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를 예정대로 공격할 것인지, 유엔 결의를 기다리며 전쟁을 연기할 것인지를 결정해야할 기로에 서 있다.전쟁은 힘만으로 이길 수 없다. 미국은 연간 국방비가 미국 이외의 전세계 국방비 총액에
맞먹고, 지구상에 도전할 나라가 없는 유일한 슈퍼파워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미국은 전쟁에 앞서 국민을 설득하고, 우방을 끌어들일 충분한 명분을 제시해야 한다. 미국이 힘만으로 전쟁을 밀어부쳤다가는 엄청난 후유증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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