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기자
베토벤의 곡(교향곡 포함)들은 다소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표현의 주제가 너무 거창하기 때문이다. ‘운명’, ‘열정’, 합창… 등으로 이어지는 곡들에선 사상적, 예지적인 감동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순음악적 측면에선 다소 요란벅적함도 없지 않다.
모차르트의 경우는 음악이 너무 음악적인 것이 결함이다. 음악이 지나치게 즉흥성(才氣)에만 의존되고 있어 사상적 깊이를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반면 거창함이 없기에 듣기엔 편하다.
베토벤이 우월한가? 모차르트가 우월한가? 역사상 최고의 음악가는 누구인가? 양적인 면의 모차르트인가, 질적인 면의 베토벤인가? 한마디로 베토벤의 음악은 중천의 태양, 모차르트의 음악은 석양으로 비견되고 있다.
그만큼 베토벤의 음악에서는 정열, 모차르트의 음악에선 아름다움을 꼽는다. 그러면 당신은 어느 편이십니까?… 묻는 다면, 당연히 모차르트를 먼저 꼽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모차르트야 말로 동전의 앞면이기 때문이다. 즉 모차르트가 먼저 있고 베토벤이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모차르트(선율)의 아름다움만을 이야기하지만 그가 베토벤에게 미친 예지적인 측면은 별로 논하지 않는다. 모차르트의 불꽃 튀기는 예술은 베토벤의 그늘에 가려 별로 빛을 보지 못했으나 사실 베토벤에게 예지를 전수한 것은 바로 모차르트였다.
차이코프스키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고, 음악가 될 것을 결심했다고 한다. 모차르트의 짧은 생애, 오로지 음악에만 헌신된 음악의 화신으로서의 모차르트의 생애는 차이코프스키가 음악가가 된 배경이 될만큼 모차르트의 음악은 아름다움 뿐아니라 예지적인 마력이 있었다.
신사적인 말쑥함, 고상한 감상, 거침없이 쏟아지는 불꽃의 예지는 그 자체로 이미 베토벤이라는 또 다른 천재를 잉태하고 있었다.
베토벤은 모차르트를 닮기 위해 가장 많이 노력한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어릴 때는 모차르트를 닮기 위해 혹독한 훈련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됐으며 성장해서는 베토벤의 칠흙 같은 역경을 광명으로 이끌어준 -예지의- 등불이었다. 베토벤은 일찍이 자신만큼 모차르트에 감탄한 자는 없었다고 고백할 만큼 모차르트를 평생의 경쟁자이자, 우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베토벤은 결코 모차르트와 같은 작품은 쓸 수 없었다. 보다 내성적이고, 이미 낭만주의인 사조에 휩싸여 있던 베토벤은 순음악보다는 사회적인 음악, 즉 만인의 영혼을 뒤흔들고, 메세지를 전달할 수 있는 음악을 원했다. ‘영웅’, ‘운명’등을 들으며 2차대전 참패의 독일인들이 눈물을 흘리며 재기의 결속을 다졌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베토벤은 음악가였다기보다는 어쩌면 자기초극, 영웅주의를 추구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베토벤의 위대한 예술은 동시대는 물론이거니와 후대 낭만주의와 현대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베토벤 역시 음악가는 음악가, 그도 역시 결국은 석양의 모차르트로 돌아가려는 성향은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베토벤 최후의 교향곡은 모차르트를 닮은 ‘교향곡 8번’이었다.
물론 베토벤의 최후의 교향곡은 9번 ‘합창’이었지만 ‘합창’은 베토벤이 30년동안 완성해놓은 베토벤의 결정판이었지 엄밀한 의미의 최후를 장식하는 교향곡은 아니었다.
베토벤의 8번 교향곡은 ‘운명’, ‘전원’, ‘7번교향곡’과 같은 대곡을 생산해 내고 절정기를 넘어선 작곡가의 작품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신선한 열기로 가득 차 있다. 아마도 모차르트의 음악을 닮았기 때문일까, ‘주피터’에 이어 모차르트의 교향곡 ‘42번’이라고해도 믿겨질만큼 악상의 우아함이 모차르트를 닮아있다.
7번에 이어 연속해 발표한 8번(42세때 작곡)은 베토벤 자신도 후기작품으로는 최고로 칠만큼 베토벤을 만족시킨 작품이었다고 한다.
1악장부터 4악장까지 단 한 부분도 음악적이지 않은 부분은 찾아볼 수 없다. 말쑥하면서도 격앙된 의지, 감정의 고고함등은 투쟁보다는 여유와 자신감이 느껴지고 있다. 유모어, 휴매니티, 신선함, 박력… 음악이 추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은 마지막(4악장)에서의 몰아치는 열정마저 자제하고 있어 마치 모차르트(음악)를 듣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이다.
베토벤이 진정으로 모차르트로 돌아가고 싶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아무튼 그의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교향곡의 주제(선율)에서 가장 모차르트적인 것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은 무척 아이러니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역사상 가장 위대한 두 천재 음악가가 거의 동시대에 활약했었다는 것도 우연의 일치지만 이 두 음악가의 흔적을 동시에 찾아 볼 수 있는 곡, 베토벤의 교향곡 8번(연주시간 약 25분)이야말로 만인을 만족시킬 명곡의 확신이 드는 곡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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