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건목사(뉴저지 베데스다교회)
신약을 처음 읽는 분들은 복음서가 네 가지나 되는 사실을 질문하게 된다. 왜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네 가지로 기록하고 있는가? 더 나아가서 서신서의 이름으로 여러 책들이 기록되어 있는 사실을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다. 복음서, 또는 서신서의 이름으로 다양한 책들이 기록된 것은, 복음서나 서신서가 기록된 그 대상, 또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마태복음은 유대 크리스챤을 대상으로, 마가복음은 로마적 배경 속에 있는 신자들을, 누가복음은 희랍적 배경의 신자들을 위해 기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신서 역시 그 편지를 받는 교회의 문제나 상황이 다른 데서 여러 이름의 책들이 기록되고 남아 있게 된 것이다. 교리를 밝혀 주는 서신(로마서·갈라디아서 처럼), 교회가 갖는 문제들에 대해 올바른 가르침을 전달하는 서신(고린도후서) 등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민 교회는 한국의 교회와 다른 독특한 자리, 독특한 메시지가 강조될 수 있다고 본다. 필자 역시 한국에서 목회 생활을 하다 이곳에서 목회를 하는 사람으로, 목회의 내용과 위상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가를 체험하는 바이다. 목회자는 목회자대로, 성도는 성도대로 그 ‘삶의 자리(Sitz im Leben)’가 다른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삶의 자리가 다르다는 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의 강조점이 다를 수 있음을 의미하고, 이민 신앙생활의 독특한 영성이 요구됨을 의미한다.
미국의 이민생활은, 아시아(또는 한국) 인으로 그 ‘삶의 주변성(marginality)’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의식하던 못하던, 우리는 백인 중심의 사회에서 변두리를 차지하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굳이 고국을 떠나 이곳에 살게 된 배경을 거슬러 올라가도, 한국에서 남아 있을
수 없었던 안타까운 이유가 있기에 이곳에 온 이민들이 많다는 사실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에서 교수 생활을 하는 어떤 분께서, 미국생활 30여년이 지났어도 그 눈앞에는 고향의 감나무가 항상 보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필자의 눈에 비치는 이민 생활은 많은 분들에게 있어, 여전히 나그네 생활이요, 고향을 떠난 향수 속의 생활로 보인다. 언어와 피부가 다른 데서 느끼는 소외감을 느끼며 사는 것이 이곳의 이민 생활이다. 이런 상황에서 강조되는 성서 속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이 변두리의 삶 속에서 우리는 어떤 특징을 갖고 살아가는 것일까?
우선적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이민생활은 성경을 이해할 수 있는 유리한 삶의 자리를 제고해 준다. 사실, 성경 속의 하나님의 백성들은 항상 그 삶의 자리가 주변적인 것이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타 민족이 지배하는 곳의 한 곳을 차지하며 살았다. 그는 주변의 이민족 앞에서 항상 신변의 위협을 느껴야 했을 것이다. 출애굽 전후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 또한 항상 위기 속의 삶이었다. 애굽에서의 노예로서의 삶, 광야에서는 스스로 살 수 있는 자원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의 소망은 오직 구원의 하나님뿐이었다.
구약의 바벨론 포로 이후의 삶이나, 신약의 유대인의 삶의 자리는 강대국 속에서 약소민으로 살아야 했다. 교회의 상황도 그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적대적인 로마제국의 위협 속에서 그들의 삶이란 항상 ‘꺼져가는 등불’로서 위태로운 삶이 아닐 수 없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의 자리는 구약이나 신약이나 대부분 ‘적은 자’ ‘작은 자’로서의 삶이었다. 거기서 요청되는 삶의 원리는 자기 신뢰가 아닌 믿음이었고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 위협적 상황 속에 있는 자기 백성을 붙들고 번성시킴으로서 하나님의 능력을 세계 속에 드러내신다.
이민 생활은 긍정적인 면에서 성경과 하나님을 더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삶의 자리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발견은 이민 생활이라는 독특한 체험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본다. 이곳의 목회자는 더 겸손과 섬김을 통해서만 목회할 수 있고, 성도는 그 자신이 처한 주변적인 상황에서 더 간절한 마음으로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함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더 깊이 체험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은 고국에 있을 때 생각하지 못했던 이민 신앙생활의 열매라고 믿는다.
더 나아가서, 이민 교회는 자칫 물량주의와 권위주의의 유혹아래 있는 고국의 교회에도 성경의 올바른 메시지와 삶을 증거 할 위치에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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