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비빔밥이란 말은 많이 쓰고 들어보지만 골동반이란 단어는 생소하다.우리의 문헌에 비빔밥에 대한 기록은 없고 1800년대 말엽에 비로소 [시의전서(是議全書)]에 골동반(汨董飯:부뷤밥)이라는 이름으로 비빔밥이 소개가 된다.
밥을 정히 짓고 고기는 재워 볶고 간납은 부쳐 썬다. 각색 남새를 볶아 놓고 좋은 다시마로 튀각을 튀겨서 부숴 놓는다. 밥에 모든 재료를 다 섞고 깨소금, 기름을 많이 넣어 비벼서 그릇에 담는다. 위에는 잡탕거리처럼 계란을 부쳐서 골패짝 만큼 썰어 얹는다. 완자는 고기를 곱게 다져 잘 재워 구슬만큼씩 빚은 다음 밀가루를 약간 묻혀 계란을 씌워 부쳐 얹는다. 비빔밥 상에 장국은 잡탕국으로 해서 쓴다라고 기록 되었다. 우리의 비빔밥과 다를 바 없는 조리법이 틀림없다.
그러나 옛 중국 문헌인 [자학집요(字學集要)]에는 골동반이 나오는데, 이 문헌에는 골동반 짓는 법이 어육 등 여러가지 것을 미리 쌀 속에 넣어서 찐다고 했다. 골동반이라는 요리명은 같지만 [시의전서]와는 전혀 다른 조리법이다. [시의전서] 보다 앞서 출간된 홍석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1849년)에 보면 강남(양자강) 사람들은 반유반(盤遊飯)이란 음식을 잘 만든다. 젓, 포, 회, 구운 고기 등을 밥에 넣은 것으로 이것이 곧 밥의 골동(骨董)이다. 예부터 있던 음식이다라고 되어있다.
즉 골동반은 중국의 유래를 들고 있다. 중국의 골동반이 [시의전서]를 통해 우리의 비빔밥과 조리법이 유사해 졌다고 본다. 골동반은 중국의 식생활문화에 영향을 많이 받은 궁중을 통해 들어 왔고, 궁중은 곱돌솥에 부
뷤밥 형태의 골동반이었다. 오늘날 돌솥밥이 바로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궁중의 골동반에서 유래 되었고, 비빔밥은 골동반이 중국에서 궁중에 들어오기 이전부터 전국 각처에 특산물과 서민들의 식생활문화에 영향
을 받아 다양하게 만들어 졌다. 즉 비빔밥은 돌솥밥처럼 모든 재료를 쌀과 함께 한 솥에 넣고 조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단일 찬으로 조리한 후 밥 위에 그 찬들을 넣고 비비는 것이다.
이러한 비빔밥의 유래를 크게 나눠보면 농어문화에서 태생된 비빔밥, 군사문화에서 태생된 비빔밥, 노동문화에서 태생된 비빔밥, 의례문화에서 태생된 비빔밥, 사찰문화에서 태생된 비빔밥과 함께 이규태씨의 논거(論據)처럼 세시민속에서 태생된 오신채비빔밥인 입춘 비빔밥 등 여섯가지 유래를 들 수 있다. 일부 주장처럼 임금의 몽진설이나 묵은 음식 처리설은 여기서 지면 관계상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논거가 지극히 약하며 우리의 식생활문화와 역사를 잘 못 이해한데서 비롯된 주장일 뿐이다.
조선후기까지 전국의 소문난 5대 비빔밥은 평양비빔밥, 해주비빔밥, 전주비빔밥, 진주비빔밥, 통영비빔밥을 들 수 있다. 이중 3대 비빔밥으로 압축한다면 해주교반(交飯:비빔밥), 전주부뷤밥, 진주화반(花飯비빔밥)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의 비빔밥은 나름대로 지역의 전통적인 특색이 없는 것이 아쉽다. 1925년 최 영년(崔 永年)이 쓴 [해동죽지(海東竹枝)]에 보면 해주 교반(交飯)이 나온다. 해주교반의 조리법을 보면 고기는 양념에 재웠다가 기름에 볶으며 미나리, 시금치, 콩나물, 도라지는 간을 약간 맞추어 볶아내며 달걀은 얇게 지져 실오리처럼 설며 다시마는 튀겨 낸다.
흰쌀밥은 그릇에 담고 나물을 색 맞추어 올려놓은 다음 가운데에 고기볶음을 놓고 후추가루를 약간 뿌려 실고추, 실 달걀로 고명하여 맨 위에 다시마 튀기를 얹는다 그리고 해주교반과 함께 뜨거운 장국물, 나박김치, 고추장이 곁들여 나온다고 한다.
평양과학백과종합출판사에서 펴낸 [조선의 민속전통]에 보면 해주의 별식으로 해주교반을 만들어 먹었는데, 반드시 수양산고사리와 황해도지방에서 나는 김을 구워서 부스러뜨려 섞는 것이 특징이라고 쓰여져 있다.
전주하면 비빔밥, 비빔밥하면 전주라 할 정도로 전주의 비빔밥은 널리 알려져 있다.
전통 전주비빔밥
그런데 전주의 향토사학자 고 김상조 선생은 전주의 비빔밥을 부뷤밥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원래 전주비빔밥은 가마솥에 밥을 할 때 한물 넘치면 콩나물을 넣고 뜸을 드려 이미 가마솥에서 콩나물과 함께 섞기 때문에 비빔밥이 아니라 부뷤밥이라고 주장 한다. 여기서 1968년 당시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에서 조사한 전주비빔밥 조리법을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쇠머리를 푹 끓여서 굳은 기름은 걷어 버리고 살을 넣고 밥을 고슬하게 짓는데, 밥이 한물 넘으면 콩나물을 넣고 뜸을 들인 후 더울 때 참기름으로 무친다.
숙주, 미나리는 각각 데쳐서 참기름과 묽은 장(청장)으로 무친다. 도라지는 소금에 절여 주물러서 다시 헹궈 짜서 볶고 고사리도 삶아서 기름장으로 무쳐 볶는다. 우둔고기는 채 썰어 양념장으로 육회를 무친다.
청포묵은 굵게 치고 계란은 황백으로 지단을 부쳐 란면(卵麵)으로 선다. 밥을 조반기에 담고 각색 재료를 색 맞추어 덮어 얹고 엿고추장은 종지에 따로 곁들인다. 전주비빔밥에는 반드시 콩나물국이 따라야 한다고 한다.
여기서 혹자들은 전주비빔밥이 궁중의 음식이나 섣달그믐날 먹는 음식, 제삿집 비빔밥으로 그 유래를 말하는 사람이 있으나 최승범(崔勝範)의 [란록기(蘭綠記)]에 전주비빔밥의 유래가 잘 묘사 되어 있다.
산과 들 바다가 고루 갖추어진 전라도의 음식은 세 곳에서 나는 것을 모은 것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 농번기에 농가의 아낙네는 들에 밥을 이고 갈 때 버들고리나 광주리 밥동구리를 모두 동원하여 찬 접시를 담고 나가려 하나 어찌 나를 수 있으랴, 그래서 생각한 것은 큰 옹배기 같은 그릇에 밥을 담고 찬을 그 위에 열열히 담고 고추장 한그릇 담고 숟가락 챙겨 이고 나갈때 논고랑 밭고랑을 쉽게 걸어가서 밭둑 논둑의 푸른 하늘아래 야외식탁이 펼쳐진 것이 비빔밥의 최첨단이고 보니 식단 합리화라 칭송한다. 바로 전주의 비빔밥은 농경문화에서 그 유래를 들 수 있는 대목이다.
진주 비빔밥
진주 비빔밥은 꽃밥 또는 일곱색깔 꽃밥인 칠보화반(七寶花飯) 이라고도 한다. 전주 비빔밥은 쇠머리를 고아서 그 국물에 밥을 하지만 진주화반은 양지머리를 고아서 그 국물로 밥을 한다. 동황색의 둥근 놋대접과 흰빛의 밥테, 다섯가지 나물이 어우러진 녹청색, 여기에 보탕국, 그 위에 묽은 엿고추장과 특히 쇠고기를 채로 썰어 깨소금, 마늘, 참기름 등으로 양념한 육회를 반드시 얹어 먹는데 시각적으로나 영양적으로 매우 우수한 음식이다.
진주 비빔밥의 또다른 특색은 비빔밥과 같이 나오는 국은 놋탕기에 담겨져 나온다. 국은 소의 양지머리, 허파, 양을 넣고 무르게 고아 만드는데, 이때 무를 통으로 넣고 토란대, 고사리 등도 같이 넣어 끓인 국이 나온다. 간혹 선지를 넣은 쇠고기 선지국이 나오는 경우도 있어 이 또한
타 지방과 다른 점이다. 진주 비빔밥은 밥과 함께 비벼져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밥위에 나물, 보탕국, 그위에 고추장, 육회 등이 순서대로 얹혀져 나오기 때문에 고객이 직접 비벼서 먹도록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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