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처럼 평생을 가난하게 살며 주님께 복종하며 살았던 대천덕 신부님의 삶이 지금 더 절실합니다.”
한국교회 성령운동의 거목인
대천덕 신부(본명 루벤 아처 토레이)가
84세로 소천한 지 4년이 지났다.
“돈을 사랑하면 남을 사랑할 수 없다”며
평생을 청빈과 나눔으로 일관한 ‘살아있는 성자’였던 대 신부를 추모하기 위해 그의 기일인 6일
남가주 성공회 신자들이 모인다.
대 신부가 1965년 ‘기도의 실험장’을 목표로 강원도 태백에 세웠던 예수원에서 원목을 지낸 안애단 신부(가든그로브 부활교회)가 주축이 됐다. 살아 생전 부활교회를 찾아 복음을 전파하기도 했던 대 신부를 추모하는 예배를 남가주에서 드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안 신부는 “소수 인종으로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는 물질만능주의에 영적 자신을 잃고 산다”며 “자기를 치유해 회복하는 것을 추구한 예수원의 정신이 지금 더 필요하기 때문에 대 신부님의 추모 예배를 준비하게 됐다”고 말했다.
안 신부는 대 신부가 23년만에 한국을 다시 찾은 58년에 인연을 맺어 평생 대 신부를 멘토로 삼았다. 두 사람은 함께 성령쇄신운동을 벌여 성령 안에서 교회가 거듭 나자고 부르짖었다. 안 신부는 대 신부를 모시고 69년부터 2년간 예수원에서 수련을 했고, 95년부터 2000년까지는 예수원 원목을 맡았다.
예수원은 공동체 운동이었다. 함께 노동을 해 먹고 사는 걸 해결했다. 함께 나누어 썼고, 부족한 것은 하나님께 간구했다. 한번도 예산을 짜지 않았지만 공동체 사람들은 한번도 굶지 않았다. 기도를 위해 예수원을 방문하면 숙식도 무료였다. “가난하게 사시며 어려운 자를 도우셨던 예수님을 본받고, 주님께 전적으로 순종하는 걸 실천하겠다”는 대 신부의 믿음 때문이었다.
예수원은 성공회, 천주교, 개신교 모두가 모이는 곳이기도 했다. 초교파적인 믿음의 일치를 추구했던 대 신부는 예수원을 통해 하느님 안에서 사랑을 쌓는 것을 강조했다.
안 신부는 “대 신부님은 예수원을 중보기도의 집으로 만들고 싶어했다”며 “그 분은 큰 키를 다 눕힐 변변한 침대도 없이 평생을 사셨지만, 신자의 사진과 기도 제목들로 가득 찬 파일을 들고 매일 중보기도를 하며 헌신의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
대 신부와 그의 할아버지로 무디 신학교 학장을 지내며 미국의 교회부흥운동을 주도했던 아레이 토레이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완벽한 복종’은 바이올라 대학에서 교재로 활용되고 있다.
안 신부는 “복음 공동체를 강조하셨던 대 신부님을 함께 기리면서 새 삶에 대한 도전을 받는 자리로 추모 예배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추모 예배는 6일 오후 5시 13091 Galway St., Garden Grove, 92844에서 거행된다.
<김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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