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는 종군위안부 문제를 다룬 1996년 제네바 유엔 인권위원회(UNHRC) 회의를 앞두고 일본 정부가 일본의 입장을 피력하며 협조를 요청해오자 “일본과 한국이 해결할 문제”라는 미국의 공식 입장을 처음으로 마련, 일본측에 전달하며 단호히 거절한 사실이 비밀해제된 미 국무부 외교문서에서 드러났다.
뉴욕한국일보가 입수한 문서들은 1996년 2월28일~3월2일 미 국무부 국제기구관계국(IO), 동아시아태평양관계국(EAP), 인권노동국(DRL), 주유엔미국대표부(USUN), 주제네바미국대표부 직원들이 주고받은 전자우편과 서신들로 3월~4월 제네바 유엔 인권위원회 회의에 한국이 종군위안부 결의안을 제출할 것을 깊이 우려한 오와다 주유엔일본대사가 뉴욕에서 올브라이트 주유엔미국대사와, 구니히코 사이토 주미일본대사가 워싱턴 D.C.에서 윈스톤 로드 국무부 차관보(동아시아태평양관계)와의 면담을 각각 요청해온 것과 관련,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미국의 공식 입장을 일본측에 구두로 전달 할 ‘토킹 포인트(Talking Point)’를 마련한 과정과 그 내용을 담고 있다.
문서들은 특히 주유엔미국대표부의 부탁을 받은 국무부 국제기구관계국의 샤론 코톡이 올브라이트 대사가 오와다 대사와의 만남에서 사용 할 ‘토킹 포인트’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세계여성회가 1995년 9월 채택한 ‘베이징선언 및 행동강령’에 종군위안부 문제가 어떻게 다뤄졌는지, 채택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어떠한 입장을 취했는지, 비록 강령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지는 않았으나 ‘종군위안부(comfort women)’라는 문구를 포함시키려고 한국정부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등을 국무부 인권노동국 메리 커틴, 동아시아퍼시픽국 한국데스크 그리스텐슨, 일본 데스크 무어 등과 논의, 정밀 검토한 뒤 “강령에 명시된 ‘성 노예(sexual slavery)’에 종군위안
부도 포함돼 있음을 가장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를 ‘토킹 포인트’에 인용한 점을 보아 미국 정부가 처음으로 종군위안부에 대해 일본 정부에 전달할 공식 입장을 마련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코톡이 1996년 2월28일 작성, 이메일로 커틴에게 보낸 ‘한국 종군위안부 토킹 포인트’는 오와다 대사가 한국의 UNHRC 종군위안부 결의안 제출에 대해 언급할 경우 올브라이트가 “우리는 한국이 UNHRC에 종군위안부 결의안을 제출할 계획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다”고 답변토록하고,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나는 베이징 행동강령이 무력분쟁 당시 ‘성노예’
를 여성의 인권 위반으로 명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이 용어는 종군위안부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암묵된(understood)’ 것이다. 우리는 이 문제의 역사적 발단과 ‘복잡성(complexity)’을 이해하고 있고 우리는 당신과 한국이 해결토록 남겨두겠다”고 답변토록 하고 있다.
실제로 사이토 대사와의 접촉을 대비해 로드 차관보가 타노프 차관에게 보낸 1996년 3월1일자 비망록은 올브라이트 대사가 2월29일 뉴욕에서 오와다 대사를 만났고 종군위안부 문제가 논의 된 사실을, 코톡이 3월2일 크레그 쿠헐에게 보낸 이메일은 올브라이트 대사가 오와다 대사와의 만남에서 사전 준비된 ‘한국 종군위안부 토킹 포인트’에 충실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어 당시 미국 정부가 종군위안부 문제에 있어 “일본과 한국이 해결할 문제”라는 입장을 일본정부에게 확실하게 전달했음을 밝히고 있다.
미국의 이 같은 입장은 2007년 3월2일 도쿄를 방문한 존 네그로폰테 미 국무부 부장관이 종군위위안부 문제가 미일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묻는 한 기자의 질문에 “(종군위안부 문제는) 일본과 ‘영향을 받은(affected)’ 국가들간에 반드시 다뤄져야 할 것. 영향을 받은 국가들과 일본 사이에 그 어떠한 이해가 이뤄질 필요가 있는 역사적 문제”라고 답변해 변함이 없음을 확인했다.
한편 유엔 인권위원회는 1996년 4월19일 제네바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종군위안부 문제와 관련, 일본정부에 국가배상 등 국제법상 책임 수용과 한시적 특별재판소 설치를 촉구하는 것을 골자로 한 쿠마라스와미(스리랑카) 여성폭력문제 특별보고관의 특별보고서를 인정하는 결의를 책임 당사국인 일본을 포함한 52개 제안국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 H.Res.121통과 시키려면...
미 연방하원에 상정돼 있는 H.Res.121은 일본정부측에 ▲종군위안부의 존재 공식 인정과 사죄 및 역사적 책임 ▲일본 총리의 공개적 공식 사죄 ▲종군위안부의 성노예와 인신매매가 없었다는 그 어떠한 모든 주장에 반박 ▲국제사회의 권고에 따른 현재와 미래 세대들에게 종군위안부와 관련 범죄에 대한 교육을 시킬 것을 촉구하는 의회 결의안이다.
일본계 마이클 혼다(캘리포니아▲민주) 의원이 민주·공화당 출신 의원 7명의 공식지지를 얻어 1월31일 상정한 H.Res.121은 지난해 미 하원 외교위원회를 통과했으나 일본정부의 강력한 로비에 부딪쳐 본회의 상정이 무산돼 제109대 의회 회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된 H.Res.759가 손질돼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현 제110대 회기 의회에 재상정된 것이다.
H.Res.121이 상정된 이후 하원 외교위원회 아시아태평세계환경소위원회는 2월15일 하원 레이번 빌딩에서 한국인 이용수(79), 김군자(81), 네덜란드인 얀 러프 오헤른(84) 할머니 등 3명을 참고증인으로 출석시켜 그들이 종군위안부로 끌려가게 된 과정과 일본군들로부터 겪은 수모를 증언토록 했으며 뉴욕을 비롯한 미주한인사회에서는 몇몇 단체들이 나서 H.Res.121 통과를 위한 운동을 벌이고 있다.
H.Res.121은 4월16일 현재 혼다 의원과 77명 의원의 공식지지를 얻은 상태로 일부에서는 외교위원회를 무사히 통과, 올해 안에 본회의 채택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그러나 지난 5일 중국을 방문 중인 하원 아시아태평양세계환경소위원회 위원장인 미국 사모아 출신 민주당 에니 팔리오마베가 의원은 베이징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H.Res.121 채택은 4월말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미국 방문이 끝날 때 까지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아무리 빨라도 5월이 돼야 소위원회 통과 가능성이 있음을 분명히 했다.
팔리오마베가 의원의 이 발언은 법적 구속력이 있는 ‘양원공동 결의안’(Joint Resolution)도 아니고 법적 구속력은 없어도 상원과 양원의 공동결의를 보여주는 ‘양원일치 결의안(Concurrent Resolution)’도 아닌 상징적 결의안인 H.Res.121을 채택하는데 있어서도 일본과 미국과의 외교관계와 그 관계에 이 결의안 채택이 미치는 영향을 신중히 고려하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따라서 H.Res.121이 H.Res 759와 같은 결과를 맞이하지 않으려면 H.Res.121 채택운동을 벌이고 있는 미주 한인 단체들은 한국인들을 위한 한인들만의 운동이 아니라 한국을 비롯해 종군위안부 문제로 피해를 입은 모든 관련국가 출신 미국인들을 함께 엮어 세계 여성의 인권을 위한 국
제적 시각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H.Res.121이 채택된다 할지라도 미국 정부의 “종군위안부 문제는 일본과 영향을 받은 국가들간에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입장이 바뀌려면 미국 정부가 특정 국가들간의 역사적 사건이 아닌 세계 여성의 인권 문제 사건을 무시하고 있다는 국제적 시각 차원의 압력을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신용일 기획취재 전문기자> yishi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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