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만 개의 군번 인식표로 거대한 철제 갑옷 형성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 입증한 걸작
오랜 신축공사 끝에 널찍하게 확장된 시애틀 미술박물관(SAM)에 들어서면 주위를 압도하는 웅장한 작품이 하나 있다.
번뜩이는 수십만 개의 철판 비늘이 갤러리 한복판에 원형으로 한데 모여 거대한 갑옷을 형성하며 힘을 뿜어내고 있다.
이 갑옷의 재료는 뜻밖에도 군인들이 목에 거는 인식표이다. 작품을 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서는 방문객들마다 탄성을 자아낸다.
지난 5일 SAM이 개장되자 마자 가장 인기 있는 소장품으로 부상한 이 작품은 뉴욕에서 활약하는 한인 설치예술가 서도호(45)씨의 2001년 걸작 ‘Some/One’이다. 다수의 작은 개체로 힘있는 하나를 창출해 내는 서씨 스타일의 대표작이다.
나보다는 우리, 개인보다는 단체를 중시하는 한국적 분위기가 물씬 배어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임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 동원돼 거대한 힘을 발산하는 수십만 개의 한국 산 인식표는 전장에서 산화한 장병들과 그 밖의 이름없는 수많은 희생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반전 성격이 강한 이 작품은 SAM을 찾은 방문객들의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의 작품은 여러 갈래의 뚜렷한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갤러리 측의 평처럼 서씨의 작품은 보는 사람에 따라 반전 메시지도, 합동 메시지도, 파도처럼 밀려오는 힘의 메시지도 전달한다.
한국 동양화의 원로 서세옥씨의 아들인 서도호씨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로드아일랜드 디자인학교에서 학사학위(94), 예일 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석사학위(97)를 취득한 엘리트이다. 세계 주요 비엔날레 및 유명 미술관의 전시회를 통해 오래 전부터 한국출신의 세계적 현대작가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가방에 넣을 수 있을 만큼 하늘거리는 은조사로 자신의 서울집과 뉴욕 아파트를 똑같이 복제한 ‘Seoul Home’과 ‘348 West St.…’, 유치원 옷부터 민방위 군복까지 나열해 한국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한 ‘유니폼’, 비엔날레 히트작품 ‘바닥’ 등은 특히 유명하다.
그의 작품은 또한 거대한 모습으로 새롭게 문을 연 SAM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SAM은 빌 & 멜린다 게이츠 재단 등 수많은 기증자의 도움으로 다운타운의 초라한 옛 건물 옆에 현대식 16층 건물을 새로 지었다. SAM은 그 중 8층까지만 갤러리로 사용하며(현재는 4층만 개방) 2,700여 개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이 중 서씨 작품을 포함한 약 1천 점이 이번 확장개관식을 계기로 SAM에 기증됐다. 새 건물은 1층과 2층을 누구에게나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어린이 방도 마련돼 있고 행인들이 비를 피해 쉬어갈 수 있도록 의자와 책상도 준비돼 있다. 2층 천장에는 또 하나의 화제작품인 카이 궈창의 1999년 작품 ‘Inopportune: Stage One’이 매달려 있어 방문객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이 작품은 포드 자동차의 폭파장면을 하나하나 재생해놓은 것이다.
SAM은 맨 아래에 현대 미술품을 전시하고 그 위로 지역별 미술, 고전 미술 등을 층별로 전시하고 있어 다 보는 데만 하루가 족히 걸린다. 또, 갤러리 어디서도 유리창을 통해 다운타운 거리와 변화하는 하늘의 모습을 자연광 아래서 즐길 수 있다.
SAM의 또 다른 자랑은 지난 1월 개장한 올림픽 조각 공원이다. 쓸모 없던 2,500평방피트의 공장지대를 현대감각이 물씬 풍기는 조각공원으로 탈바꿈시켰다. 시원한 바다와 올림픽 산이 한눈에 보이는 이곳은 벌써 시애틀의 대표격 시민공원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박인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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