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선배 한 분이 워싱턴대학(UW)에서 석사학위를 받는 늦둥이의 졸업식 참석을 위해 다음 주 시애틀을 방문한단다. 거의 40년전 그 아들 또래였던 필자를 형처럼 가르쳐준 선배와의 해후 계기가 그 아들이 6년 유학을 청산하는 졸업식이어서 이채롭다.
UW은 9일 오후 허스키 풋볼구장에서 열리는 학위수여식에 졸업생 4,500여명과 가족친지 38,000여명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 대학교에 한인학생 2천여 명이 재학 중임을 감안하면 올해 졸업식장도 예년처럼 한인들의 잔치마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졸업식을 서너번 거친다. 유치원, 대학원, 군사학교, 교회학교, 새마을운동 따위의 사회학교까지 포함하면 졸업장이 크게 늘어난다. 하지만, 16년의 형설지공을 모두 마치고 사회인이 되는 대학졸업만큼 신나고 후련한 졸업식은 없을 듯하다.
언제나 축제분위기인 UW 졸업식장과 달리 40여년전 필자의 대학졸업식은 매우 을씨년스러웠다. 입대와 취직이라는 두 난제가 가슴을 짓눌렀기 때문이다. 고교 졸업식도 4·19 후유증으로 졸업앨범에 두 분 교장선생님의 얼굴이 함께 실린 것 외에 별로 기억나는 게 없다. 전체 졸업생이 함께 찍은 중학교 졸업사진에서는 자기들 얼굴조차 분별하기 어렵다.
그런데, 반세기 전 국민학교(초등학교) 졸업식은 엊그제처럼 생생하다. 자동차도, 기차도 없고 비행기만 볼 수 있는 시골학교에 다닌 필자는 그 날 엉엉 울었다. 재학생들이 부르는 “빛나는 졸업장을 받은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라는 졸업식 노래 1절은 그럭저럭 넘어갔지만 졸업생들이 이어서 부르는 2절의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라는 대목에서 여학생들이 통곡하기 시작하는 바람에 남학생들도 훌쩍거렸고, 동기생 중 가장 막내였던 필자는 목 놓아 울었다. 요즘 초등학교 졸업생들도 그 졸업식 노래를 부르는지 모르지만, 부른다고 해도 우는 졸업생은 없을 듯하다.
미국의 각급학교 졸업식은 모두가 즐거운 축제 한마당이다. 학교마다 깜짝 놀랄만한 유명 인사를 연설자로 초빙하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따라서 졸업시즌이 되면 각계 저명인사들의 몸값이 뛴다. UW도 원래 초빙했던 명사가 뒤늦게 일방적으로 사절하는 바람에 졸업식을 일주일 여 앞두고 동문인 놈 딕스 연방하원의원으로 부랴부랴 교체했다.
이들 연설자는 대개 명언을 남겨 이름값을 한다. “무학자는 화물차에서 좀도둑질을 할 수 있지만 그가 대학교육을 받으면 철도 전체를 훔칠 수 있다”(시어도어 루즈벨트), “지식에 투자하면 언제나 가장 높은 이자를 받는다”(벤자민 프랭클린), “길을 따라가지 말고 길이 없는 곳에 발자국을 남겨라”(랠프 에머슨), “얼마나 따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뿌리느냐로 하루를 결산하라”(로버트 스티븐슨),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가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라”(앨버트 아인슈타인), “풍향을 바꿀 수는 없지만 풍향에 돛을 맞출 수는 있다”(무명)…
재치만이 아니라 마음을 숙연케 하는 경구도 있다. “학교 졸업은 개념일 뿐이다. 실생활에서는 하루하루가 졸업 날이다. 졸업이 숨질 때까지 이어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인생이 달라진다”는 에이리 펜코비치의 말과 “인생은 나의 대학, 좋은 성적으로 졸업해서 작은 영예라도 얻기를 원하노라“라는 루이자 메이 앨코트의 말이 그런 것이다.
이들의 말대로 진짜 졸업식은 인생의 마지막 날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학교 졸업성적에 일희일비 할 필요가 없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인생대학에서 낙제도, 정학도, 퇴학도 당하지 않고 졸업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인생 우등생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윤여춘(편집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