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모와 대가족의 굴레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만끽하려는 보통 한인들과 달리 미국에서만 31년 간 시어머니를 모시고, 딸과 함께 정성껏 시어머니 병간호를 하고 있는 여성이 있어 주위 한인들의 칭송이 자자하다.
달라스 동부 라크월에 살고 있는 유현숙 씨(세실리아)는 필라델피아에 이민 온 1971년부터 시어머니 김남순 씨(마리아, 82세)를 모시고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어머니가 지난 9월 후천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한 뒤부터는 딸 줄리(24세)와 함께 정성껏 병간호에 매달리고 있다.
달라스 트리니티 강 남쪽에 있는 감리교 병원 7층, 김남순 씨의 병실은 고부간의 사랑, 손녀와 할머니와의 사랑이 넘쳐난다.
줄리와 유현숙 씨, 둘째 자부 유혜숙 씨의 보살핌을 받고 있던 김남순 씨는 “며느리가 딸 같아요. 며느리 하고 친해요.”라는 말로 간호하고 있는 며느리에게 친근감과 고마움을 표시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손녀가, 아들이 잘 해줘서 좋아요. 줄리가 옆에 있어서 좋아요. 몸도 닦아주고, 얼마나 착한지.... 알아서 다 해준다.” 라고 말했다.
병상에 거의 누워 있는 김남순 씨이지만 손자녀 얘기를 할 때는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손자녀가 아홉 명이나 있어요.”
김남순 씨의 이 말에서 손자녀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 묻어난다. 번갈아 가며 병실을 찾는, 사랑스러운 손자녀들을 둔 할머니의 든든한 마음의 표현이다.
김남순 씨의 2남2녀의 자식들인 손자녀들은 지난 추석을 앞두고 모두 모여 할머니를 보았는데 할머니가 공교롭게도 추석날인 9월 25일 갑자기 쓰러졌다. 필라델피아에서 살다가 9년 전 달라스 지역으로 이주했기 때문에 많은 손자녀들이 필라델피아에서 살고 있고, 유길종 씨(J 부동산 근무)의 딸인 줄리도 필라델피아에서 휴가를 내어 달라스에 내려왔다. 할머니가 키우다시피 한 줄리는 쓰러지신 할머니 곁을 차마 떠날 수 없었다.
줄리는 어려서는 업어주시고, 유치원 때부터 손을 잡고 학교에 데려다 주고, 또 집으로 데려 오시던 할머니, 비가 오면 비를 맞을세라 우산을 잘 받혀주시던 할머니, 성당에 데려가 놀게 하시던 할머니를 생각했다.
줄리는 볼일이 있어 어른들에게 할머니를 맡겨놓고 잠시 병실을 나설 때도 할머니 손을 꼭 잡고 다정하게 인사를 한다.
김남순 씨의 병실은 큰 며느리 유현숙 씨와 남편 유길종 씨, 손녀 줄리, 둘째 며느리 유혜숙 씨가 밤에도 번갈아가며 지키는, 24시간 사랑의 등불이 꺼지지 않는 곳이다.
강원도 원주역 부근 정지에 살던 김남순 씨는 수녀들이 운영하던 소아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집에서 시오리 길 되는 곳에 있는 성당에 나갔다. “수녀님들과 신부님들을 너무 존경했어요.”
필라델피아에 살 때 김남순 씨는 한인 천주교회에서 15년 간 안나회 회장을 맡아 궂은 일을 다 했고, 성당에 봉사하러 나갈 때마다 손녀 줄리를 데려가길 즐겨했다고 유현숙 씨는 전했다. 화초와 정원 가꾸기를 좋아하는 김남순 씨의 솜씨가 결실을 맺어 지난 5월에는 유길종 씨 가족이 사는 집이 라크월 커뮤니티 주택단지에서 수여하는 ‘이 달의 정원’ 상을 받기도 했다.
며느리 유현숙 씨의 시부모 모시기는 살림꾼으로 통하던 김남순 씨의 시부모 공경과 맥이 통하는 것이고, 줄리에게 할머니 공경으로 이어졌다.
사랑하는 가족들에 둘러싸인 김남순 씨는 급성 백혈병으로 병상에 드러누워 있지만 걱정이 없다. 아침저녁으로 두 시간씩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가족과 동네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김남순 씨.
“예수님께 다 맡겼어요. 예수님이 옆에 와 계시니까 편하고 든든해요. 죽는 것도 두렵지 않아요.”
<최용무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