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망증과 알츠하이머(퇴행성 뇌질환)의 차이는 이렇다. ‘방금 전에 자동차 키를 어디에 뒀더라?’하고 찾으면 건망증이고, 손에 자동차 키를 들고 ‘이게 뭐 하는 거였지?’하고 고개를 갸우뚱 하면 알츠하이머 증세다.
요즘 우리사회는 만연된 건망증과 알츠하이머 증세로 신음하고 있다. 이래서 사람들은 특별한 날을 정해놓고 무엇인가 기억하려고 한다.
올해의 기억을 되살려 내년에도 다시 한번 정신 없이 살아 보라고 신정(新正)이 있고, 오뉴월에는 부모의 은혜를 잊을까봐 어머니날, 아버지날을, 그리고 먼저간 사람들을 기억해 보라고 5월말 현충일을 정해놨다.
노예처럼 사는 인간에게 ‘나도 홀로 설 수 있다’는 기억을 되찾으라고 7월에는 독립기념일을, 열심히 일해 땀을 흘리되 가끔 닦아주는 것을 잊지 말라고 9월에 노동절을, 유명인 생일에는 이웃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놀기에 힘쓸 것을 잊지 말라고 크리스마스를 제정했다.
지난주에 지났던가? 지금은 벌써 기억 속에서 사라진 ‘땡스기빙 데이’는 두 가지 뜻을 지니고 있다. 추운 겨울날 온몸의 털이 뽑힌 칠면조가 ‘네 인생 짧다 한탄 마라. 안 풀린다 불평 마라. 어찌 남들만 쳐다보며 자신은 아니 돌아보고 제 인생 꼬였다 하느냐. 아서라, 자신 속을 들여다 보면 불만보다 고마움이 숨어있느니라’ 시조를 한 곡조 뽑고 ‘니 들이 칠면조의 고통을 알아?’를 마지막으로 외치고 단두대 앞에 서는 날이다.
또한 그날은 저녁 식탁에서 평소에 잘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모여 앉아 일년에 한번씩 주문을 외우는 날이다. 밤늦게 들어오는 부모, 학교에서 돌아오면 부모 얼굴보다는 컴퓨터나 TV화면을 보고 있는 자녀들, 전화 한번 없던 친척들, 친구들까지 갑작스레 얼굴을 들이대는 날이다.
서먹서먹하기 짝이 없다. 한 수 더 뜨며 낯뜨겁게 만드는 것은 “일년을 돌아보며 감사한 것을 한 가지씩 말하고 식사하자”로 시작하는 것이다. 사람이 커피 자판기인가? 주문만하면 ‘감사’가 튀어나오게?
평소에 ‘Thank you’ 소리를 안 하는데 일년에 한번씩 정기검사 한다고 자연스럽게 나올까? 결국, 연중행사로 겉 치레 ‘감사’ 주문을 재 빨리 외우고 칠면조의 하얀 속살을 말없이 파고든다.
평소에 ‘Thank you’ 소리가 없다고 했나? 그렇다. 특히 학생들이 심각한 Thank You 건망증에 걸려있다. 일례로, 시애틀 지역 고등학교 선생들과 카운셀러들이 대학 지원서 접수 시즌이 되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학생들이 사회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soft skill’ 이 부족하다. 추천서를 열심히 써주었는데 찾아와서 고맙다고 인사 하거나 ‘Thank You’ 카드를 보내는 학생이 없다.”
대학 인터뷰도 예외는 아니다. 브라운 대학에서 나온 인터뷰 담당자는 “학생들이 우리대학에 어떻게 하면 들어올까에 만 신경 쓰지 지켜야 할 예의에는 소홀하다. 인터뷰 시간에 늦게 나오기 일쑤고, 인터뷰 후에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한탄한다.
물론 그들이 ‘Thank you’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은 “지원자로서 갖출 상식이요 사회생활의 에티켓이다”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버릇없다’는 말에 수긍이 가게 하는 지적이요, ‘싸가지가 없다는 게 더 정확하다’라는 따끔한 질책까지도 삼켜야 할 경고다. 공부를 아무리 잘하고 시험점수가 높다 한들 사회성이 부족하면 살아남지 못하는 곳이 대학이요 인간사회다. 그곳에서는 ‘Thank you’를 깜빡 잊고 못하면 건망증, ‘Thank you’자체가 무슨 뜻 인줄 모르면 알츠하이머 환자 취급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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