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건목사(뉴저지 베데스다교회)
성탄절이 가까이 다가오면서 교회 안과 밖에서 여러 음악 행사가 열린다. 기악이든, 성악이든 진한 감동을 전해주는 교회 음악을 대하면서 여러 생각들이 마음을 스쳐 지나간다. 기독교처럼 찬양의 감동을 지닌 종교가 또 있을까? 그 찬양의 능력은 어디서 유래하는 것일까? 기독교는 어떤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왕의 왕’으로, ‘만민을 구원한 구세주’로 고백하고 있을까? 어떤 의미에서 심령을 울리는 찬양을 그에게 올리고 있을까?
포스트모더니즘 또는 종교다원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 시대에 그런 신앙고백은 세상 사람들의 눈에 자칫 독선으로 들려지기 쉽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진리나 신앙을 절대화한다는 것은 시대적 분위기를 역행하는 덜 떨어진 사람, 독선적인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이 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구세주로 고백하게 만드는가? 무엇이 그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종의 자세를 취하게 만드는가?
이 질문의 대답을 찾기 위해서 나는 조용히 그가 달리셨던 십자가를 찾아간다. 마침 교회의 전면에는 커다란 나무 십자가가 걸려 있다. 그 십자가 앞에 있으면 그 위에 달리신 분의 침묵이 느껴진다. 창조주 하나님,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대 주재, 만왕의 왕으로 불리는 그 분이 거기 조용히 달려 있다. 이 우주 속에서 가장 낮은 자리, 가장 고통스러운 자리, 모든 이들의 손가락질과 조소가 들리는 자리, 차마 머리를 돌리지 않을 수 없는 저주의 현장, 거기에 만왕의 왕이 조용히 달려 있다.
거기서 그는 연민의 정으로 우리를 내려 보고 있다. 우리를 환영하는 넓은 팔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저주 받은 죄인이라도 받아 주시는 그 자리, 우리를 위해 조용히 중보의 기도를 드리는 그 분, 거기서 배우는 첫째 교훈은 침묵의 가치이다. 무언가 말을 하고, 인
정을 받고, 무언가 거래를 위해 떠들썩한 세상과 교회 현장과 동떨어진 곳, 침묵으로 다가서며, 침묵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십자가이다. 우리의 찬양은 그분의 침묵이 우리 속에서 잉태하여 터지는 소리일 것이다.
그는 그 참혹한 십자가 위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셨다(눅23:47). 가장 저주스러운 상황이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장소가 된다는 것은 기독교적인 역설이다. 그의 행적은 환경과 조건을 탓하는 우리들을 침묵으로 인도한다. 우리들의 삶의 자리, 그것이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님을 바라고 섬기는 삶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수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정신이 번쩍 들어 구하는 것은 평생토록 그 자리를 떠나지 말게 해달라는 기도이다. 거기서 평안을 찾고 침묵을 배우고 거기서 그분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침묵의 십자가가 내게 있어 하나님을 만나는 가장 가깝고 복된 자리이다.
사실, 그의 성육신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마구간, 말구유, 어린 아이로 오신 만왕의 왕! 그분의 탄생과 삶은 우리를 향한 조용하면서도 단호한 메시지가 들어 있다. 어른 대접 좋아하고 높은 자리 욕심내는 우리들의 모습은 아무래도 그분의 모습, 그분의 삶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다.
교직 속에서 명예를 찾고(또는 명예를 회복하고) 자신의 가치를 찾는 것도 사실 그분과 관계 없는 일인 것 같다. 정말 그를 찾고 그의 사람으로 불린다는 것은 그의 낮아짐과 비움과 섬김을 배우고 따르는 것임이 아니겠는가? 그분의 탄생을 기뻐하는 찬양과 행사 속에서, 혹 우리가 엉뚱한 마음으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않는지? 조용히 성찰하는 계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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