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 전에 장난삼아 100m를 달려봤다. 기록이 25초였으므로 1초에 4m를 달린 셈이지만 막판엔 걷다시피 했다. 지금 뛰라면 시간은 논외이고 완주 자체가 기록일 것 같다.
베이징 올림픽의 유력한 100m 우승후보인 우사인 볼트(자메이카) 기록은 9.72초이다. 그의 동향 라이벌인 아사파 파월은 0.02초 차이인 9.74초이다. 이들이 필자와 100m 경주를 벌인다면 필자보다 200m 뒤에서 출발해도 결승점에 거의 동시에 골인한다.
속보(걷기) 챔피언인 멕시코의 베르나르도 세구라는 20,000m를 1시간17분25.6초에 주파했다. 산행 때 ‘준족’을 자처하는 필자는 1시간에 고작 5,000m(약 3 마일) 정도 걷는다. ‘마라톤 황제’인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에티오피아)는 작년 9월30일 마라톤 풀코스(26마일 385야드)를 2시간4분26초에 끊었다. 필자에겐 이 거리가 1박2일 코스로 느껴진다.
베이징올림픽의 육상경기가 본격 시작됐다. ‘더 멀리, 더 높이, 더 빠르게’를 모토로 인간의 가장 원초적 능력을 겨루는 경기여서 박진감 넘친다. 28개 종목에 47개의 금메달이 걸린 ‘올림픽의 꽃’이다. 수영종목에서 미국의 마이클 펠프스가 금메달 6개를 모두 신기록으로 땄지만 앞으로 마라톤을 비롯한 육상에서 또 어떤 신기록이 쏟아질 지 기대된다.
솔직히 말하면 필자는 신기록보다 이색기록이 더 재미있다. 1920년 올림픽 복싱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인 에드워드 이건(미국)은 12년 뒤 동계올림픽의 4인승 봅슬레이 경주에서도 금메달을 땄다. 서울올림픽(1988년)의 여자 사이클링 은메달리스트인 크리스타 루딩(독일)은 같은 해 캘거리 동계올림픽의 빙상 1,000m 경주에서 금메달을 땄다. LA 올림픽(1932년) 여자 100m 경주에서 세계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딴 폴란드의 스텔라 윌시는 69세 때 강도에 피살됐다. 경찰이 수사를 위해 부검한 결과 그녀는 놀랍게도 남자였다.
올림픽에는 없는 종목에서 세계기록을 보유한 사람도 많다. 호주의 데이빗 헉슬리는 몸에 밧줄을 감고 보잉 747-400기(184톤)를 1분27초 동안 91m나 끌고 다녔다. 영국의 존 에반스는 352 파운드의 소형 승용차를 머리 위에 올려놓고 33초를 견뎠다. 영국의 패디 도일은 주먹 쥐고 팔굽혀펴기를 1시간에 1,940회나 해냈다. 빌리 박스터(영국)는 가와사키의 ‘닌자’ 모터사이클을 타고 눈을 가린 채 시속 164.87마일로 달려 기네스북에 올랐다.
기네스북을 보면 기록쟁취는 부나 명예 쟁취에 버금하는 인간의 본능인 듯하다. 코네티컷의 케이시 융 여인은 허리둘레가 15인치다. 그녀가 ‘개미허리’를 지키기 위해 지난 12년간 입은 코르셋만 100여개이다. 중국의 시 큐핑 여인은 머리카락을 18피트 5인치(5.627m)나 길렀다. 13세 때인 1973년부터 미장원에 간 적이 없다. 터키의 킴 굿만 여인은 ‘각고의 노력’ 끝에 눈알을 12mm(0.47 인치)나 튀어나오게 하는 별난 세계기록을 자랑한다.
필자가 가장 크게 놀란 기록은 따로 있다. 지난주 레이니어 산을 정복한 리암 오설리반(29)의 4시간46분29초 신기록이다. 전직 소방관이며 레이니어 등반 전문안내자인 오설리반은 혼자서 새벽 4시20분8초에 파라다이스를 출발, 1시간24분31초 만에 베이스캠프(10,000 피트)에 도달했다. 거기서 7분간 쉬며 운동화를 등산화로 바꿔 신은 그는 총 3시간11분22초 만에 정상(14,441피트)에 발을 디뎠다. 내려올 때는 잠시 다리에 쥐가 났는데도 1시간35분7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왕복18마일을 평지나 다름없이 뛴 셈이다. 2년 전 필자를 포함한 시애틀 한인 등산회원 11명이 베이스캠프까지만 다녀오는 데 8시간이 걸렸었다.
한인등산회가 오늘 새벽 눈산 베이스캠프에 두 번째 도전한다. 신입회원들을 중심으로 20여명이 오른다. 그러나 오설리반처럼 속도에 관심을 두지는 않는다. 위험한 빙하 길을 8시간 만에 무사히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기록이 되기 때문이다.
윤여춘(편집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