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결의
올해도 새해 첫날 아침을 어김없이 산에서 맞았다. 날씨가 축축하고 간밤에 송년행사 때문에 잠도 설쳤지만 중요한 연례행사를 빼먹을 수 없었다.
‘신정 새벽등반’의 원래 코스는 노다지(Gold Bar)골의 월레스 폭포인데, 올해는 가까운 호랑이 산(Tiger Mountain)에 올랐다. 소(기축년)의 기를 누르려고 호랑이 산을 택한 것이 아니다. 노다지 골이 지난주 내린 폭설로 파묻혔기 때문이다.
필자가 시애틀에 이주한 후 10년째 매년 1월1일 새벽 혼자 산에 올라가는 이유는 전혀 거창하지 않다. ‘기도하기 위해 새벽 미명에 홀로 산에 오른’ 예수를 언감생심 흉내 내려는 게 아니다. 호연지기를 운운할 나이도 지났다. 지난 해 마음과 머릿속에 찌든 때를 산의 정기로 씻어내고 그 자리에 새로운 결심을 채워 넣기 위해서다.
새해가 되면 누구나 신년결의(New Year Resolution)를 한다. 미국인들 가운데는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겠다,’ ‘규칙적으로 운동하겠다,’ ‘체중을 줄이겠다,’ ‘크레딧카드 빚을 갚겠다’ 등이 매년 신년결의의 고정 메뉴인데, 대개 작심삼일로 끝난다.
필자의 산상 신년결의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먹는 것을 줄이겠다는 결심을 3년째 반복하지만 효과는 별로다. 지난 1일에도 산에서 내려오자마자 친지 집에 초대돼 떡국을 포식했다. 작심삼일은커녕 하루도 지탱하지 못한 꼴이다. 삼일 째인 오늘도 정기등반을 마친 후 등산회 회원들과 식당에서 신년하례를 겸해 또 떡국을 먹을 참이다.
신년결의가 작심삼일인데 반해 신년결의를 위한 산행은 10년째 계속하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매주말 산에 오르겠다는 신년결의를 필자는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금년에만 41차례 올랐다. 10년을 통산하면 400번이 넘는다. 그런 열성으로 지난 10년간 살을 뺐다면 필자는 지금쯤 청년 못지않은 ‘몸짱’이 돼 있을 것이다.
아직 신년결의를 하지 않은 분들에게 주말산행을 자신 있게 권한다. 등산이 건강에 좋은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남녀노소 누구나 할 수 있는 유일한 심신 양용 운동이다. 날씨와 계절에 구애받지 않는다. 부킹하려고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골프나 테니스보다 경비는 훨씬 적고 운동량은 훨씬 많다. 혼자서, 둘이서, 수십명이 어울려 할 수도 있다.
전국에서 등산여건이 가장 좋은 곳이 시애틀이다. 요산요수(樂山樂水)의 표본이다. 환상적인 등산코스가 1~2시간 거리 안에 100여개나 널려 있다. 대부분 숲, 암벽, 계곡, 급류, 폭포, 호수 등 멋진 경관을 뽐낸다. 레이니어, 올림픽, 베이커, 세인트 헬렌스 등 한번쯤 도전해볼만한 명산들도 많다. 세계적 등산장비 메이커인 REI 본사도 시애틀에 있다.
산에 가면 각계각층 사람들과 격의 없이 사귈 수 있는 것도 큰 매력이다. 시애틀 한인등산회(회장 이기범)의 경우 등록회원이 130여명이나 된다. 매주 정기적으로 활동하는 한인사회 단체 중 규모가 가장 크다. 대부분 자영업 종사자이지만 교수, 의사, 목사, 엔지니어, 은행가, 공무원도 있고 시인, 화가, 사진작가도 있다. 이하룡 총영사도 ‘예비회원’이다.
본보는 한인 등산인구 저변확대를 위해 나름대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거북이 마라톤대회를 주최하는 것도, 시애틀 한인등산회를 적극 후원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한인 개개인이 건강하면 한인사회 전체가 건강하다. 특히 요즘 같은 불경기엔 건강에 더 유의해야 한다. 등산의 극기훈련으로 건강은 물론 호연지기와 자신감을 길러 후일에 대비해야 한다.
신년결의 아닌 신년몽상 같지만 시애틀의 모든 등산로를 한인들이 ‘점령’했으면 좋겠다.
윤여춘(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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