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숭숭한 한 해가 무겁게 떨어졌어도, 그런대로 만상은 아랑곳없이 새로운 해맞이로 풋풋하다.
해서, 행여 사람들은 졸아든 마음을 추슬러 다시 시절 인연을 엿보지만, 아니다. 아니다. 모든 것이 스산스러운 그대로다. 거기 누구 없소? 그러나 허공 속을 물고 오는 허허한 맞은 소리뿐이다. 어쩌란 말이냐.
‘까치 한 마리/ 미류나무 높은 가지 끝에 앉아/ 새파랗게 얼어붙은 겨울 하늘을/ 엿보고 있다/ 은산철벽/ 어떻게 깨뜨리고 오를 것인가/ 문 열어라, 하늘아!’
선승은 백 척 장대 위에 외로이 섰다. 어떻게 오른 길인가. 그러나 아차 하면 천길 벼랑이다. 그러므로 깨뜨리고 올라야 한다. 형형한 눈빛 새파랗게 타오르지만, 어쩌나 만길 빙벽을, 얼어붙은 하늘은 더더욱 막막하다.
어찌할 것인가.
침체의 골이 점점 깊어 가는 듯하다. 나라가, 세계가 온통 아우성이다. 누구는 대공황 이후 처음 맞는 경제위기라고 호들갑이다. 경제 전문가들의 암울한 예측들 역시, 살맛을 씁쓸하고 쓸쓸하게 만든다.
그러나 마냥, 비관적인 전망만 있는 것도 아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진단은 꽤나 고무적이다. ‘각국의 경제적 상황들이 과거에 비해 훨씬 밀접하게 연결돼 급속도로 상호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경제체제를 위정자들이 잘 다룰 수만 있다면, 그 위기가 빠르게 확산됐던 만큼 해결 또한 빠를 수 있다. 늦어도 1~2년 후면 세계 경제는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작금의 글로벌 경제위기의 진원지인 미국민들의 대부분이, ‘사람들이 매일 겪고 있는 고난의 맥박 위에 내 손을 계속 얹어놓고 싶다’고 말한,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의 진정성과 위기극복 능력에 깊은 신뢰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또한, 그가 제시한 ‘신 뉴딜’이란 경기부양정책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보다도,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기대가 압도적인 것 같다.
어쨌거나 피치 못할 어려움이라면 감당해야만 한다. 다만, 지금보다 조금 ‘더할 가난’을 각오하고, 조금 ‘덜 부자’가 된 것을 억울해 할 것 없이,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을 궁리해야 할 것 같다. 법정 스님께서도 많이 가졌으나 살 줄 모르면 불행한 것이고, 적게 가졌어도 살 줄 알면 행복한 것이라고 했다. 살 줄 안다는 것은 절제와 검약, 그리고 지금 자신이 지닌 것에 만족하며 사는 것이라 짐작된다.
또한, 아직 고난의 기승 속에 묻혀 있는, 내밀한 희망에 대한 기대와 믿음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 믿음은 바로, 놓고 조여서 이 곤란을 버텨낼 동력이 되어, 머지않아 그 ‘고난의 맥박 소리’를 약동하는 ‘생명의 맥박소리’로 바꿔 놓을 것이다.
선가의 선승들도 극한의 한계상황을 극복하고서야 절대 평온을 증득하게 된다고 한다. 더는 피할 수 없는 절망의 임계점에 다다른 순간, 선승들은 도리 없이 막판 승부를 건다. ‘문 열어라, 하늘아!’
우주를 가르는 벽력같은 할! 시인 오세영(1942-)님의 ‘은산철벽’을 연이어 따라가 본다.
‘바위도 벼락 맞아 깨진 틈새에서만/ 난초 꽃 대궁을 밀어 올린다./ 문 열어라, 하늘아!’
이리저리 죽을 용을 다 써보고도 기별이 없다면야, 그 옹이진 마음을 어쩌겠는가. 별 수 없이 애꿎은 하늘에다 몽니라도 부려볼 밖에. 에-라, ‘하늘아, 문 열어라!’
박재욱
(LA관음사 상임 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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