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수난시대
전국최대 저축은행이었던 워싱턴뮤추얼(WaMu)이 작년말 도산한 후 시애틀본사 직원 3,400여명이 해고당했을 때 필자는 그러려니 했다.
지난주 보잉의 연내 4,500명 감원계획 발표도 귓전으로 흘렸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5,000명을 감축하겠다고 엊그제 발표했지만 역시 심드렁했다.
그런데, 일간신문인 시애틀 포스트-인텔리전서(P-I)가 20일 전체 직원 170명에게 해고결정을 통보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는 정신이 퍼뜩 났다. 감원 규모로는 WaMu나 보잉이나 MS에 족탈불급인데도 같은 신문쟁이로서 ‘피는 못 속이는’ 모양이다.
신문재벌 허스트그룹이 적자 계열사인 P-I를 두 달 안에 매각하지 못하면 신문발행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한지 2주만에 ‘싹쓸이 해고’ 결정이 통보됐다. 146년의 긴 역사를 자랑하는 워싱턴주의 두 번째 큰 신문이 머지않아 종언을 고할 신세가 됐다.
요즘 같은 상황에 신문사를 매입할 투자자는 없다. 미국은 물론 지구촌의 모든 신문이 운영난으로 허덕인다. 허다한 신문이 이미 폐간했다. 전국지인 시카고 트리뷴은 파산지경에 이르렀고, 사이언스 모니터는 인터넷 신문으로 변신중이다. 시애틀타임스와 P-I도 광고가 없어 지면을 대폭 줄였다. 평일 신문 두께가 본보만큼 얇아졌다.
워싱턴주 최고(最古)의 일간지인 P-I가 두달 뒤 폐간하면 시애틀엔 최대 일간지인 시애틀타임스만 남는다. 다른 대도시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LA, 댈러스, 애틀랜타, 휴스턴, 피닉스 등 시애틀보다 더 큰 도시에도 일간신문이 한 개씩만 살아남아있다.
전국의 일간신문 수는 1990년 1,611개에서 2006년엔 1,437개로 줄었다. 16년간 174개 신문이 문을 닫았다는 얘기다. 경기침체가 극에 달한 지난 3년을 포함하면 1990년 이후 지금까지 폐간된 신문이 200개가량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필자는 시애틀에 온 후 10년째 P-I를 구독하고 있다. P-I가 타임스보다 기획기사는 약해도 사건기사는 강한 느낌이다. 특히 퓰리처상 2회 수상자인 데이빗 호지의 만평과 목요일자의 야외활동 안내섹션(’Getaways’)에 실리는 산행 가이드가 ‘짱’이다.
두 신문은 ‘오월동주’의 라이벌이다. 공동운영법(JOA)을 근거로 한 협약에 따라 타임스가 P-I의 인쇄·광고·배달 등 편집을 제외한 영업일체를 26년째 대행하고 있다. 타임스는 2000년 이후 계속 적자를 내자 P-I를 죽이고 시장을 독점할 속셈으로 지난 2003년 JOA 파기를 제의했다가 P-I측의 소송을 받고 4년여의 법정싸움 끝에 패소했다.
타임스가 P-I의 자진폐간 이후 ‘독야청청’할 것을 기뻐할 이유가 없다. 신문시장이 워낙 열악하기 때문이다. 4반세기를 ‘유아독존’해온 공룡신문 LA 타임스도 끝내 시카고 트리뷴의 모회사에 팔렸다. 시애틀타임스도 그동안 400여 직원을 해고했고, 소유 부동산과 타 지역의 계열신문사를 매각해 적자를 보전해왔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그건 그렇고, 필자가 한가하게 남의 신문을 걱정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본보도 형편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광고주들이 어려우면 신문사도 어렵다. 새로운 광고를 수주하기도 어렵지만 이미 게재된 광고료를 수금하기가 더 어렵다. 광고가 없으니 신문이 얇아지고, 신문이 얇아지니 읽을거리도 자연히 줄어든다. 독자들이 항의하는 게 당연하다.
지난 연초, 한 장기독자로부터 격려전화를 받고 감격했다. “지금처럼 어려운 때에 (구독료를 한 번도 올리지 않고) 계속해서 한국일보를 볼 수 있게 해줘 고맙다”고 했다. 필자의 40년 경력 가운데 요즘처럼 이런 독자 분들이 소중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윤여춘(편집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