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과 이승만
오늘은 ‘발렌타인 데이,’ 모레(16일)는 ‘프레지던트 데이’이다. 발렌타인은 오래전에 한국에 수입돼 요즘엔 미국에서보다 더 요란떨떨하지만 대통령의 날도 곁들여 수입될 것 같지는 않다. 그런 위대한 대통령이 한국에 탄생할 날은 요원해 보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날은 초대 조지 워싱턴 생일(22일)과 16대 아브라함 링컨 생일(12일) 사이의 2월 셋째 월요일로 정해진 연휴이다. 원래는 워싱턴부터 버락 오바마까지 44명의 대통령을 한 날에 모두 기리자는 취지지만 실제는 워싱턴과 링컨에만 초점이 모아진다.
그래서 두 위인은 본의 아니게 라이벌이 됐다. 가장 위대한 대통령은 두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화폐가치’로는 워싱턴이 링컨보다 100배나 위대하다. 링컨은 1센트 동전에 초상이 깨알같이 찍혀있지만 워싱턴은 가장 많이 유통되는 1달러 지폐에 큼직하게 그려져 있다. 외모로도 상대가 안 된다. 기골 장대한 쾌남아였던 워싱턴이 뭇 여인의 흠모의 대상이었던데 반해 시골뜨기에 악명 높은 추남이었던 링컨은 사교계의 ‘단골 왕따’였다.
그런데도 워싱턴의 평점은 늘 링컨에 뒤진다. 1982년 여론조사에선 2위마저 프랭클린 루즈벨트에게 빼앗겼다. 특히, 올해 대통령의 날 화두는 링컨 일변도이다. 금년이 링컨 탄생 200주년인데다 오바마가 불과 3주 전 미국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취임한 ‘역사적 사건’의 흥분이 식지 않은 탓 같다. 오바마는 링컨이 해방시킨 흑인노예의 후손이 아니라 케냐의 자유민 아버지와 미국의 백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혼혈 2세’인데도 말이다.
하긴, 오바마 대통령 자신이 링컨 바람을 주도했다. ‘링컨의 땅’인 일리노이 출신 연방 상원의원이었던 그는 대통령 취임식 때 링컨이 사용한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했다. 백악관 집무실 벽에 링컨 초상화를 걸어 놨다. 백악관 맞은편의 링컨 기념관에서 12일 열린 그의 탄생 200주년 기념식에도 직접 참석해 링컨의 ‘국민단결’ 메시지를 재천명했다.
올해 대통령의 날에 모든 사람이 링컨만 떠받들어도 워싱턴주 주민은 워싱턴을 홀대할 수 없다. 전국 50개 주 중 유일한 ‘워싱턴 주’에 살며 그의 초상이 각인된 운전면허증을 갖고 다닌다. 모든 지방도로(SR)의 사인판에도 그의 이미지가 그려져 있다. 시골 그랜트 카운티엔 그의 성이 아닌 이름(‘George’)을 딴 마을까지 있다. 이 동네의 500여 주민은 주소를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이라고 쓰는 것을 매우 자랑스러워한다.
타주 주민들도 워싱턴을 존경할 근거는 충분히 있다. 그는 막강 대영제국에 맞서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장군인데다 합중국 헌법을 기초한 국부(國父, Father of the Country)로 칭송받는다. 왕이 돼달라는 일부의 제의를 일축했고, 애당초 대통령 선거에도 나서지 않았다. 3선이 따놓은 당상이었지만 두 번째 임기 후 자진 낙향해 민간인이 됐다. 뉴욕에서 열린 첫 번째 취임식에 참석하러 가기 위해 친지에게 노자를 꿀 정도로 청빈했다.
한국의 이승만도 워싱턴처럼 국부라는 말을 들었었다. 실제로 그는 워싱턴과 인연이 깊다. 조지 워싱턴대학(GW)의 유학생이었기 때문이다. 연방의회가 워싱턴을 기리려고 1821년 결의해 창설한 GW는 백악관에서 불과 4블록 떨어져 있다. 이승만은 백악관을 바라보며 청와대(옛 경무대)의 주인이 될 꿈을 꿨음직 하다. 그러나 그는 지나치게 권력에 탐닉한 나머지 경무대에서 쫓겨난 후 하와이 망명지에서 숨을 거둬 추락한 국부가 됐다.
이승만이나 박정희를 두고 ‘대통령의 날’을 제정하긴 좀 쑥스럽다. 그렇다고 남북통일을 달성하는 대통령만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온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대통령이면 ‘프레지던트 데이’의 주인공이 될 자격이 있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모양이다.
윤여춘(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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