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과 희수연
엊그제 오리건에 100세 장수자가 나왔다는 토막기사를 읽었다. 1세기 장수자가 아직 드문 모양이다. 한국인들도 99세까지 살면 미리 백수연(白壽宴)을 벌인다.
현재 세계 최장수 노인은 114세인 LA의 저트루드 베인스 할머니다. 그보다 한 살 더 많은 포르투갈 할머니가 지난 1월 베인스 생일 일주일전에 사망해 그녀에게 최장수 기록을 물려줬다. 역대 최장수자는 122세까지 살았던 프랑스의 잔 칼멩 노파다.
1세기 이상 장수하는 사람은 현재는 600만명중 하나 꼴이다. 하지만 평균수명이 계속 늘어나 오는 2100년엔 백수연을 넘긴 미국인이 530여만명이나 될 것으로 인구당국은 전망한다. 올해 회갑연(回甲宴, 60세)을 치른 사람은 산수연(傘壽宴, 80세)도 치를 확률이 매우 높단다. 그렇다면 필자는 감히 졸수연(卒壽宴, 90세)까지도 넘볼 수 있을 것 같다.
얼마 전 잡지에서 ‘100세까지 사는 요령’이라는 글을 읽었다. 우선, 장수자들이 많은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이스라엘 등 지중해연안국 사람들처럼 과일, 야채, 올리브기름, 생선, 통밀을 많이 먹으라고 했다. 그 외에 신문을 구독할 것, 자녀를 둘 것, 붉은 포도주를 마실 것, 뱃살을 줄일 것, 결혼할 것, 교회에 나갈 것, 텃밭을 가꿀 것 등이 꼽혔다.
오래 사는 것이 무조건 미덕은 아니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겠지만 필자는 소위 ‘인생 황혼기’에 접어든 이후 야릇한 비감을 여러 번 경험했다. 스페이스 니들에서 운전면허증을 보여주고 경로(할인)입장권을 샀을 때 그랬고, 손녀의 할아버지가 됐을 때도 그랬다. 거울 앞에선 아직 노인이 아니라고 혼자 우기지만 남들 앞에선 별 수 없이 노인이 된다.
지난달 소셜시큐리티(SS) 연금을 신청하면서 또 한번 떨떠름했다. 이젠 연방정부까지 공인하는 노인이 돼버린 것이다. 어느새 정부기준의 정년에 도달해 SS 은퇴연금을 신청하게 됐지만 본사에선 정년퇴직 하라는 말이 아직 없다. 정년이 된 것을 모를 바 아니다. 아마, 스스로 은퇴하겠다고 말해주기를 기다리는 모양이다. 이런 게 바로 정년의 비감이다.
본보 독자들 가운데 약 절반(48.2%)이 50세 이상이다. 거의 4명중 한명(22.2%)이 필자 또래의 60대이다. 정년의 비애를 이미 경험했거나 곧 경험하게 될 사람들이다. 미국인들도 마찬가지다. 내년 말이면 55세 이상이 전체 인구의 1/4를 차지한다. 소위 ‘베이비부머 세대’ (45~63세)로 불리는 8,000만명이 20년 후면 모두 SS 은퇴연금을 받는 노인이다.
정년퇴직한 ‘젊은 노인’들이 당장 겪는 고통은 두말할 것 없이 수입 감소다. 저축 등 달리 노후대책을 마련해놓지 못했고, 자녀에게도 의지할 수 없는 사람은 쥐꼬리 SS 연금에 맞춰 살림규모를 줄여야 한다. 집도, 자동차도 포기하는 상황을 맞기도 한다. 대다수 정년퇴직자들에겐 손자손녀 재롱을 즐기고 골프나 여행으로 소일하겠다는 계획이 공염불이다.
수입 감소 못지않게 소외감과 상실감도 심각하다. 출근시간인데도 안방에 앉아 있다는 게 불안하다. 그 많던 회의도 없고 휴대폰도 갑자기 잠잠하다. 직장의 지위나 신분을 하루아침에 포기해야 하고, 동료들과도 더 이상 일상적으로 어울리지 못한다. 하루 종일 집안에만 처박혀 있자니 자연히 배우자의 생활리듬도 깨지게 돼 옥신각신하는 일이 잦아진다.
정년퇴직 자체보다 그 후 여생이 예전 사람들보다 길어졌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그래서 서점과 도서관엔 노후생활의 요령이나 정보를 다룬 책들이 수없이 많다. 그런 내용을 강의하는 대학들도 있다. 정년을 적어도 70세까지 연장해야한다는 여론도 비등한다.
필자는 고희연(古稀宴, 70세)은 물론 희수연(喜壽宴, 77세)까지 일하고 싶다. 그러려면 유일한 ‘밑천’인 건강을 챙겨야 한다. 그것이 오늘도 열심히 산에 오르는 소이이다.
윤여춘(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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