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를 떠나 부친 사업을 돕고 있는 전 직원에게서 엊그제 전화가 왔다. 불황으로 사업이 잘 안 풀린다며 신문사에 복귀하고 싶다는 얘기였다. 친분이 아니라도 그의 성실성을 감안하면 “당장 오라” 하고 싶었지만 끝내 그렇게 말하지 못했다.
필자는 6년전 30대 초반의 그를 다른 회사에서 스카우트했는데, 지금은 제갈공명이 온대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회사마다 신규채용은커녕 있는 직원도 밀어내지 못해 안달이다. 무풍지대였던 보잉과 마이크로소프트에도 감원태풍이 몰아치고 있다.
요즘 취직이 하늘의 별 따기임을 실감나게 보여준 예가 있다. 최근 타코마 시 전기수도국(TPU)이 검침원 한명을 모집한다는 온라인 광고를 냈는데 마감일까지 2주간 무려 1,400여명으로부터 지원서가 쇄도했다. 매일 100명씩 몰린 셈이다. 전직 소방관들부터 인텔 등 일류 IT회사의 중간급 매니저 출신까지 경력이 매우 다양했다.
이들중 고졸이상 유자격자 1,300여명이 추려졌다. 시정부는 평소 면접장으로 빌려 쓰는 재향군인회관(200석) 대신 타코마 돔(최대 2만3,000석)을 임대했다. 실제로 면접 날엔 807명만 나왔다. 이들은 주차장에 두 줄로 늘어서서 몇 시간을 기다리며 용모, 체력, 대인관계 등을 테스트 받았다. 우수 후보 17명이 가려졌고, 결국 지난 10개월간 임시 검침원으로 일해온 스캇 후버(39)가 뽑혔다. 시간당 17.75 달러의 임시직에서 1,400여명의 경쟁자를 따돌리고 연봉상한선이 4만9,000 달러인 정규직으로 승진한 셈이다.
한 달 후 사회에 쏟아져 나올 대졸자들의 취업문도 유례없이 좁다. 열흘 전 워싱턴대학에서 열린 취업박람회에 졸업자와 졸업예정자(한인학생, 한국유학생도 포함)를 합쳐 4,500여명이 몰렸다. 예년보다 갑절이나 많았다. 한 4학년생은 인터넷에 구인광고를 낸 업소에 모두 이력서를 보냈지만 한군데서도 답신이 없어 답답하다고 하소연했다.
이들은 그나마 부양가족도, 모기지 걱정도 없지만 중장년층 실직자들은 당장 생계와 노후대책이 막막하다. 현재 전국에서 55세 이상 180만명이 일자리를 찾고 있다. 2년새 두배나 늘어났다. 요즘은 나이가 들어도 직장에 붙어있는 것이 ‘장땡’이다. 지난 3월 현재 전국의 55세 이상 근로자는 2,800만명이었다. 역시 2년 새 150만명이 늘었다.
미국태생으로 영국에 이민 가 노벨문학상(1948년)을 받은 T.S. 엘리옷은 그의 대표적 장편시집 ‘황무지’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읊었다. 난해한 현대시인 황무지를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도 덩달아 4월을 ‘잔인한 달’로 치부한다. 아마 엘리옷이 엄동설한의 12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했더라면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했을지 모른다.
하긴, 4·19도, 4·29(LA 인종폭동)도 4월에 일어났다. 최소한 5명의 말기환자들이 4월 들어 처음으로 워싱턴주 존엄사법에 따라 극약처방을 요청했다. 아브라함 링컨이 암살당한 것도 4월(1865년)이다. 링컨을 롤모델로 삼았다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와는 전혀 반대 모습으로 봉하 마을 안방에서 옴짝 못하고 있으니, 그에게도 4월은 잔인한 달일 것이다.
엘리옷의 ‘잔인한 4월’은 형이상학적이다. 평론가들은 ‘황무지’가 현대인의 삶과 죽음을 끊임없이 대비시키며 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인들의 정서적 황폐함과 현대문명에 갇혀 생명력을 잃어가는 모습을 그린 자화상이라고 말한다. 사실은 섹스피어의 선배격인 중세 영국작가 제프리 초서도 ‘캔터베리 이야기’에서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읊었었다.
어쨌거나 오늘은 4월 마지막 주말이다. 5월은 어버이날이 있는 가정의 달, 어린이날이 있는 희망의 달이다. 남은 닷새가 희망을 잉태하는, 평강의 4월로 마감됐으면 좋겠다.
윤여춘(편집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