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외혼(族外婚)
청첩장이 심심찮게 날아든다. 6월은 미국 젊은이들 못지않게 한인 총각처녀들에게도 결혼 가절(佳節)로 꼽힌다. 이들의 청첩장도 미국스럽다. 신랑신부 이름이 대개 데이빗 김, 스테파니 박 등 영어로 돼 있다. 주례목사까지 영어 이름을 쓰기 일쑤다.
요즘 청첩장의 신랑신부 이름을 보면 한쪽의 성이 외자가 아닌 긴 경우가 종종 있다. 그것이 30여년전과 달리 전혀 이상하지 않다. 적어도 필자에겐 그렇게 느껴진다. 주위에 소위 ‘국제결혼’한 한인남녀들이 많고, 그들 대부분이 잘 살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결혼’은 말 그대로 국적이 다른 남녀간의 결혼을 뜻한다. 한인들이 미국 내 타 민족계와 결혼하는 경우는 ‘인종간 결혼(inter-racial marriage)’ 또는 ‘문화간 결혼(inter-cultural marriage)’으로 부르는 것이 합리적이다. ‘국제결혼’은 오히려 시민권자인 한인 2세가 모국에서 한국국적의 배우자를 데려올 경우에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명칭이야 어떻든 자녀가 한(국)인이 아닌 타민족 배우자와 결합하는 ‘족외혼’에 앨러지 반응을 일으키는 한인들이 아직도 많다. 족외혼의 소산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나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크게 출세한 미국에 살면서도 고정관념을 못 버린다.
본보가 3년 전 서북미 한인사회에서 최초로 실시한 한인 의식구조 조사에서 응답자의 78%가 자녀의 결혼 상대자로 한인을 꼽았다. 한인이 아니면 피부색깔이나마 같은 동양계를 선호한다는 응답자가 20%를 넘었다. 백인과 결혼해도 좋다는 응답자가 14.7%인 반면 흑인(0.2%)이나 히스패닉(0.4%)과의 결혼은 거의 꿈도 안 꾸는 수준이었다.
당사자인 자녀(미혼 응답자)들의 경우 ‘인종에 관계없이 결혼이 가능하다’고 답한 사람이 25%로 ‘한인 선호’보다는 적었지만 ‘동양계 선호’보다는 많았다. 기혼자들 중 이혼 및 사별한 응답자들은 의외로 동양계보다 백인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정보회사 ‘선우’는 최근 LA를 중심으로 한인 미혼남녀 103명을 표본 조사한 결과 ‘타인종과의 결혼이 가능하다’는 응답자가 무려 80.5%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특히, 남성 응답자의 94.2%, 여성 응답자의 65.4%가 ‘한국에서 배우자를 데려올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밝혀 본보 조사는 물론 일반 통념과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보여줬다.
부모가 자녀에게 한인 배우자와만 결혼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된장국만 먹으라는 말과 매한가지다. 결혼의 성패는 인종이나 국적보다 문화나 생활습관에 더 좌우된다. ‘문화가 다르고 인종이 같은 상대’보다는 ‘인종은 다르지만 문화가 같은 상대’와 결합하는 것이 훨씬 쉽고 안전하다. 그것이 바로 결혼 적령기의 우리 2세들이 처해 있는 상황이다.
결혼은 어차피 당사자의 자유결정 사항이다. 인종 용광로인 미국에서 살 자녀들이 미국적인 가족패턴을 택하는 것을 굳이 말릴 이유가 없다. 단일민족 관념은 어차피 1세들의 구두선일뿐 세대가 지나면 혼혈민족 관념으로 바뀌게 마련이다. 본국에서조차도 파란 눈, 노랑머리, 까무잡잡한 피부의 ‘수입부인’들이 농촌에서 단군자손의 족보를 잇고 있다.
지난달 린우드의 한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며 맞은편 테이블에 둘러앉은 8명의 대가족에게서 눈길을 뗄 수 없었다. 백인남편과 한인부인, 3명의 혼혈자녀와 장모, 처남, 처제가 갈비와 된장찌개를 맛있게 먹으며 얘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첫돌도 지나지 않은 듯한 막내가 칭얼대자 장모가 자기 접시의 갈비를 사위에게 집어주고는 아기를 들쳐 안고 식탁 사이를 오가며 달랬다. 모두 행복해 보였다. 한인사회의 미래 가족패턴을 보는 듯 했다.
윤여춘(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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