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동물들은 대부분 제 아비가 누군지 모르고 살다가 아비가 된 후 제 새끼들이 누군지 모르고 죽는다. 어미는 젖이라도 먹여주지만 아비는 생판 남남이다. 특히, 곤충, 물고기, 파충류 따위는 알에서 나오자마자 부모 얼굴조차 모르는 천애고아가 된다.
그런데, 동물 중엔 인간 못지않게 부성애가 강한 놈들이 있다. 일부 개구리와 메기, 해마 등 어류는 암놈이 깐 알들을 수놈이 입안에 품고 부화할 때까지 지극정성으로 보호한다. 바퀴벌레 수놈은 새똥에서 영양분을 갈무리해 새끼들을 먹인다. 아비 늑대도 암놈이 새끼를 나면 굴 밖에서 보초를 서며 어미와 새끼들의 일용양식을 책임진다.
아프리카 사막의 뇌조 수놈은 50마일 밖 웅덩이에서 몸을 적시고 힘들게 날아와 깃털에 젖은 물로 새끼들의 목을 축여준다. 아비 펭귄의 희생은 가히 눈물겹다. 남극 빙판 위에서 두 달 이상 식음을 전폐한 채 발등 위에 알을 올려놓고 품어 부화시킨 뒤 위액을 토해내 새끼를 먹인다. 암놈과 임무교대를 할 때쯤엔 체중이 25파운드나 줄어든다.
만물의 영장 중에도 종족보존 수준의 부성애를 발휘하는 아버지들이 있다. 케냐의 아쿠쿠(84) 노인은 결혼을 100여번, 이혼을 30여번 했다. 자식을 160명째까지 세다가 포기했다. 다니던 교회가 비좁아 식구들이 함께 앉을 자리가 없자 아예 ‘아쿠쿠 가족교회’를 따로 세웠다. 7년 전 마지막으로 결혼한 여자와의 사이에도 아들을 하나 두었다.
아쿠쿠는 아무것도 아니다. 솔로몬왕은 처첩이 1,000명이었다. 백제의 마지막 의자왕도 3,000명의 후궁을 거느렸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사우드 왕은 20명의 아내에게서 80여명의 자녀를 뒀던 것으로 전해진다. 회교도들은 요즘도 아내를 4명까지 둘 수 있다. 미국에선 출교당한 5만여명의 전 모르몬교 신자들이 아직도 일부다처주의를 고집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아버지들은 평생 뼈 빠지게 일하며 아내와 자녀를 부양하지만 별로 생색이 나지 않는다. 그것도 종족보존 본능에 근거한 부성애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링컨, 맹자, 록펠러, 케네디, 이율곡, 한석봉, 웨슬레, 정경화, 이명박 등 명사들의 성공사례를 들어보면 이들을 낳아 먹여 살린 아버지의 부성애는 간 곳 없고 극성스런 모성애만 빛을 발한다,
가정에서 아버지 위상이 추락한 게 어제오늘이 아니다. 가부장의 권위를 내세우다가는 구박만 더 심해진다. 어머니(아내)를 닮아야 아버지(남편) 대우를 받는 묘한 세상이다. 미국의 미취학 어린이 중 53%가 매일 아빠와 함께 아침밥을 먹는다. 저녁밥을 함께 먹는 자녀는 71%로 더 많다. 아버지에게서 하루 세 번 이상 칭찬 받는 자녀들이 66%나 된다.
내일(6월 셋째 일요일)은 미국의 ‘아버지날(Father’s Day)’이다. 스포켄에 살았던 소노라 도드 여인이 ‘상처한 뒤 어머니 역할을 훌륭하게 해준’ 홀아버지를 기리려고 제정한지 올해 99년째지만 아버지날이 있는지 조차 모르는 자녀들이 많다. 그래도 이날 전국에서 넥타이가 1억 개(10억 달러 상당)나 팔린다니 아직은 아버지들이 효도를 받는 셈이다.
아버지는 농부와 같다는 말이 있다. 씨만 뿌린다고 다 농부가 아니듯 낳았다고 다 아버지가 아니라는 뜻이다. 부지런히 물과 거름을 주고, 수시로 김을 매주고, 철따라 병충해를 막아줘야 풍성한 수확을 얻는 농사법이 ‘자식농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했다.
짐승들은 제 새끼가 누군지 모르고 죽는다. 그래서 “현명한 아버지는 자기 자식을 안다”고 섹스피어가 말한 모양이다. 아버지들이 넥타이를 기대하기에 앞서 자식들의 형편부터 알아보는 게 좋다. 특히 젊은 아버지들은 자식농사법을 올바로 알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식당에서 마구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윤여춘(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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