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비같은 분
엊그제 오후쯤 한바탕 소나기가 쏟아졌습니다. 거의 한달동안 비한방울 안 쏟아지는 폭염행진 중에 내린 소나기여서 얼마나 반갑던지요. 올해 텍사스는 백년만에 찾아온 더위로 혼이 났습니다. 오래 산 이들은 그러려니하지만 처음 온 이들은 너무 더워서 못살 곳이라고 혀를 내두릅니다. 필자도 늘 집에 들어갈 때마다 누렇게 타들어가는 잔디를 보면서 안타깝기만 합니다. 시에서는 식수부족으로 단수지시가 내려져 함부로 잔디에 물을 줄 수도 없으니 잔디만 죽어갈 수 밖에요. 그런데 그런와중에 한바탕 소나기가 쏟아진 것이니 얼마나 시원하고 좋은지 모릅니다. 물론 해갈이 될만큼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바짝 타들어가는 풀이며 나무들이 조금 숨통이 트이는 기분입니다. 단 비라는 말이 이런게 아닌가 싶습니다. 비에는 본래 맛이 없습니다. 단 비가 있다면 쓴 비도 있어야 할텐데 그런 말은 없는 것을 보면 간절히 사모하는 비를 반기는 마음을 그렇게 맛으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비가 내린 다음날 아침 잔디는 다시 푸른 빛이 살아나고 쪼그라들었던 화단의 꽃들도 다시 고개를 쳐들고 제 빛깔을 뽐냅니다. 풀이며 나무잎에서 누런 빛깔이 사라지고 푸르름이 넘실댑니다. 비가 만물에게 이렇게 중요한가 싶습니다. 수돗물을 뿌려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며 살 때의 풀빛깔과 하늘에서 뿌려대는 비를 먹고 피어날 때의 빛깔이 확연하게 차이가 나니 하는 말입니다. 필자가 잔디를 깍으면서 늘 놀라는데 비를 먹고 자란 잔디는 그 키나 굵기가 훨씬 크고 강합니다. 하늘에서 쏟아붓는 비에는 자연의 영영소가 같은데 들어있는게 분명합니다. 그래서 빗물을 받아서 화초를 기르면 아주 잘 자란다는 말을 들은 것 같습니다.
단 비같은 인생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봅니다. 누군가에게 간절히 바라는 대상이 될 수 있다면 또 얼마나 행복할까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바라는 이에게 풍족함과 편안함을 회복시켜주는 존재가 되면 단 비가 아니라 단 인생이라고 불러야 하겠지요. 그런 이는 서로가 데려가고 싶을 것 같습니다. 그런 이는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케해줄테니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마음에 푸르름을 되살아나게 해줄게 틀림없습니다. 누렇게 속이 타들어가는 사람에게 영혼의 갈증을 풀어주고 물이 넘치는 강가처럼 풍요로운 삶을 회복시켜주는 이가 한 분 있기는 있습니다.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그 분은 단 비같은 분입니다. 오랜 가뭄 끝에 찾아오는 소낙비와 같은 존재이지요. 필자는 그 분을 늘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제 인생의 주인이시니까요. 그 분은 늘 메마른 땅과 같은 제 마음에 언제나 풍요로운 단 비처럼 찾아오십니다. 대지를 촉촉히 적시는 단 비를 보면서 필자는 주님이 오시는 방법이 어쩌면 비와 꼭 같은지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간절히 사모하고 바라는 이의 마음을 채우듯이 오시는 게 아주 많이 닮았습니다.
시편이 말합니다. “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시편107:9) 주님을 간절히 사모하심으로 영혼에 쏟아지는 단 비를 맛보시길 빕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