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전 57주년 앞두고. “사진속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한국전쟁이 끝난지도 벌써 56년이 지났네요. 당시 젊고 정의감에 불타던 23세 청년인 나는 이제 늙고 병든 늙은이가 되었답니다. 그러나 내 청춘의 일부분을 바쳤던 한국이 눈부시게 발전해있는 모습을 매스컴 등을 통해 접할 때마다 무한한 기쁨과 자부심을 느낍니다”.
덴버 아르바다의 한 조용한 주택가에 부인과 함께 살고있는 6.25참전용사 레오나드 카라식(79)씨는 한국에 미군으로 주둔할 당시 촬영해 그간 고이 간직해오던 수백장의 사진을 앞에 두고 잠시 회상에 잠겼다. 카라식씨는 1952년 5월부터 53년 10월까지 6.25동란에 참전, 53년 7월27일 휴전이 될 때까지 한국에 머물며 당시 치열했던 한민족, 한반도의 비극을 실제로 체험한 인물이다.
그가 보여준 150여장의 사진에는 참전 기간 중 자신이 직접 찍었던 당시 비참했던 한국 사회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다. 피란 도중 다쳐 오른쪽 다리 절반이 잘려나간 어린이, 헤진 옷을 입고 철로변에 서서 달리는 철도의 미군들에게 구걸하고 있는 남녀 어린이들. 열살 남짓한 나이에도 지게를 지고 돈벌이에 나선 남자 아이.
뒷모습 뿐이어서 나이를 짐작하지 못하지만 절박한 처지가 괴력을 발휘하게 했는지 큰 장롱 두짝을 지게에 짊어지고 가는 성인, 산비탈 혹은 개울가에 기둥을 세우고 얼기설기 엮어 지은 판잣집들, 받혀놓은 지게 위에서 불안정한 자세임에도 단잠에 빠진 지겟꾼. 거제도 포로 수용소에 수용돼있던 포로 등.
당시 전쟁을 직접 겪어보지 않은 한인들에게는 과연 이것이 한국이고, 한국인이고, 사회상이런가 할 정도로 비참한 정경들이 카라삭씨의 사진에는 고스란히 녹아 있다.
지난 23일 오전 레오나드씨의 부인 제랄딘씨는 덴버 한국일보로 전화를 걸어왔다. 그러나 말의 뒷부분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아 무슨 말인지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남편이 한국 어린이 사진을 많이 갖고 있다. 이를 한국일보에 기증하고 싶다”는 정도로만 이해가 돼 주소를 물어 다음날 레오나드씨의 집을 찾았다.
24일 오전 레오나드씨의 집 벨을 눌리자 노인 부부 두 분이 반갑게 기자를 맞았다. 전화상의 목소리는 60대 정도로 들렸으나 실제 만난 제랄딘씨와 남편 레오나드씨는 이보다 훨씬 고령있었다. 제랄딘씨의 말 뒷부분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던 것은 코에 끼고 있는 포터블 산소호흡기 탓인 것같았다. 노인 부부는 떨리는 손으로 기자의 손을 움켜 잡고 “오늘은 무척 더운 날씨다. 이곳까지 오느라 수고가 많았다. 시원한 무엇을 마실 것이냐”고 다정하게 물었다.
제랄딘씨가 얼음을 띄운 냉수를 갖고 온 사이, 레오나드씨는 두꺼운 앨범 한권을 내왔다.
그 속에는 6.25당시의 한국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들어있었다.
레오나드씨는 이 앨범을 한국일보에 기중하겠다고 밝혔다. 기자가 이 같은 귀중한 자료를 기중해주어 고맙다며 이를 한국일보 지면에 소개하겠다고 하자 노 부부는 어린애처럼 낯을 붉히며 기뻐했다.
물론 6.25동란에 대한 적지 않은 자료가 있겠지만 자신이 사진으로 기록한 당시의 역사가 사라지지 않고 한국일보 지면을 통해 되새기게 되고 영구히 보존될 것이므로 큰 보람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노부부 7학년때 처음만나
노부부는 뉴욕 브롱스에서 태어나 레오나드씨와 제랄딘씨가 PS6 7, 6학년때 처음 만났다. 이후 떨어졌다가 EVANDERCHILD고등학교에 함께 진학하면서 다시 만났다.
“레오나드씨가 전쟁 중이던 한국에 파견나갔으므로 걱정이 많았겠습니다”고 묻자 제랄딘씨는 “아뇨, 전혀 걱정하지 않았어요. 그때는 서로 떨어져 있던 시기여서 레오나드가 한국전에 참전했다는 사실을 몰랐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레오나드씨는 “당시는 나에게 다른 걸프렌드가 있었다”고 대답해 우리 모두가 함께 크게 웃었다.
한국전에 참전하고 돌아온 뒤 재회한 두 사람은 이후 결혼해 2남1녀에 많은 손자 손녀를 거느린 할아버지 할머니가 됐다.
“참전 용사로서 한국 정부나 관련 기관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한국을 방문한 기회가있었느냐”는 질문에 “한번도 그런 제의를 받은 적이 없다”고 대답하면서도 서운한 기색은 내비치지 않았다.
그러면서 한국정부에서 받은 감사장이 있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에서 종이 한 장을 갖고 나왔다. 2000년 6월25일 김대중 대통령이 보낸 것으로 돼있는 감사장이었다. 약간 두꺼운 종이 두 장에 인쇄돼 지극히 초라해 보였다. 왼쪽에 한글, 오른쪽에는 영어로 된 감사장은 그러나 ‘존경하는’, ‘DEAR VETERAN’이란 머릿글이 새겨져 있을 뿐 받는이의 이름조차 쓰여있지 않은 너무나 무성의한 종이조각에 불과했다.
한국전 참전에 감사한다는 글은 쓰여있지만 받는이에게는 전혀 감사함이 전해지지 않을 것 같은 이 감사장은 그나마
‘한국전쟁 참전용사 인정법안’ (Korean War Veterans Recognition Act)이 상하 양원에서 통과된 데 이어 지난 24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통해 27일을 ‘한국전 참전용사 휴전일’로 지정함에 따라 연방정부의 모든 기관에 현충일과 마찬가지로 성조기를 조기 형태로 게양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행정명령에서 “미국인들은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이 체결된 지 56년이 지났지만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의 용기와 희생에 여전히 감사하고 있다면서 “모든 미국인이 이 날을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기리고 감사하는 적절한 기념식과 활동을 하는 날로 지켜달라고 당부한 바 있다.
또 연방부처와 기관 그리고 관심 있는 단체와 조직, 개인들도 이날 조기를 달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동안 미국에서 조기를 달아 기념하는 날은 현충일이 유일했으며 개별전쟁을 기리기 위해 조기를 다는 기념일을 지정한 적은 없다.
미국의 국기게양법에 따르면 성조기를 다는 기념일은 새해 첫날과 대통령 취임식, 독립기념일, 참전용사의 날 등 17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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