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일요일’
노래는 기쁠 때 부른다. 흥이 나면 누구나 콧노래를 흥얼댄다. ‘환희의 송가’(베토벤 9번 교향곡)나 ‘할렐루야’ 합창(헨델 ‘메시야’), 아니면 ‘푸른 다뉴브’(스트라우스 왈츠)나 ‘성조기여 영원하라’ (수자 행진곡) 따위를 들으며 멍청히 앉아 있으면 비정상이다. 손뼉치고 발장단을 맞추며 따라 불러야 정상이다.
그러나 노래는 꼭 기쁠 때만 부르는 건 아니다. 슬플 때 듣거나 부르도록 만들어진 노래도 많다. 모차르트·하이든·브람스·포레·슈만 등의 ‘레퀴엠’(진혼 미사곡)이나 쇼팽의 ‘장송행진곡’이 그런 음악이다. 개신 교회들도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등 장례식에서 부르는 찬송가들이 따로 있다.
고전음악만이 아니다. 자고로 팝송 중에도 ‘울적하게 만드는 50곡’이라는 게 있다. 그 중엔 거의 모든 사람이 애창하는 ‘Danny Boy’(아, 목동아), 60년대 톰 존스가 히트시킨 ‘Green, Green Grass Of Home’(고향의 푸른 잔디) 등 필자도 수십년간 들으며 멋모르고 흥겨워했던 노래들이 끼어 있어 이채롭다.
1위곡은 ‘Hurt(상처받은 마음)’이다. 티미 유로의 60년대 초 노래가 아니라 컨트리 가수 자니 캐시가 2005년 발표한 같은 곡명의 노래다. 에릭 클랩턴의 ‘천국의 눈물’(7위), 바비 젠트리의 ‘빌리 조를 위한 송가’(8위), 로이 오비슨의 ‘웁니다’(13위), 고든 라이트푸트의 ‘내 마음을 당신이 읽을 수 있나요?’(26위), 사이몬&가펑클의 ‘권투선수’(34위), 마티 로빈스의 ‘엘파소’(36위), 비틀스의 ‘엘리너 릭비’(48위) 등도 포함됐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진짜로 뒤집어놓는 노래는 따로 있다. 레즈소 세레스(헝가리)가 작사 작곡한 ‘우울한 일요일(Gloomy Sunday)’이다. 지난 1936년 한 상인이 이 노래 가사를 유서로 남기고 자살한 것을 시발로 14세 소녀부터 80세 노인까지 100여명이 잇달아 자살했다. 이 노래는 곧 유럽 각국에서 ‘자살노래’로 낙인찍혀 방송이 금지됐다.
“가을입니다. 나무 잎은 떨어지고/ 지상의 모든 사랑은 죽었습니다/ 바람은 슬픈 눈물과 함께 구슬피 울고/ 내 마음은 다시는 새 봄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초원은 사람의 피로 붉게 물들었고/ 길거리마다 시체가 널려 있습니다/ 사랑은 죽었습니다/ 세상은 끝났습니다”
이 노래가 크게 히트한 후 세레스는 변심한 애인을 찾아가 청혼했다. 그러나 그녀는 다음날 음독자살한 시체로 발견됐고 그녀 곁엔 ‘Gloomy Sunday’라고 적힌 쪽지가 놓여 있었다. 세레스 자신도 1968년 자살했다. 미국에서는 이 노래를 1941년 빌리 홀리데이가 처음 히트시킨 후 레이 찰스, 새라 브라이트만 등이 각각 다른 제목으로 리바이벌했다.
한국엔 훨씬 먼저 ‘자살노래’가 있었다. 한국최초의 소프라노였던 윤심덕이 1926년 부른 ‘사의 찬미’이다. ‘다뉴브 강의 잔물결’(이바노비치) 곡조에 “광막한 황야에 달리는 인생아…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그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설움…”이라는 가사를 붙였다. 윤심덕은 일본유학 후 귀국길에 현해탄 배 위에서 유부남 애인 김동진과 함께 투신자살했지만 ‘우울한 일요일’ 같은 모방 자살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바야흐로 겨울이다. 시애틀에 주야장창 비가 내리는 계절이다. 우울증(depression)에 걸리는 사람도 많다. 음산한 날씨 탓이라지만 상대적일 수 있다. 트루먼 대통령은 “이웃이 실직하면 불황(recession), 내가 실직하면 공황(depression)”이라고 했다. 똑같은 날씨 속에서도 어떤 사람은 멀쩡하고 어떤 사람은 심리적 공황상태인 우울증을 일으킨다.
내일은 비가와도 ‘우울한 일요일’이 되지 않도록 궁상맞은 노래 대신 즐겁고 신나는 노래를 부르자. ‘오 솔레미오’나 ‘당신은 나의 햇볕’(미치 밀러) 같은 노래가 좋을 것 같다.
윤여춘(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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