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웨체스터 40년 터줏대감 김순자 박사, 묵묵히 지역사회 봉사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공을 세우고도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헤이스팅스(Hastings on Hudson)에 거주하고 있는 김순자 씨는 웨체스터에서 거의 40년을 살아오면서도 한인 사회와는 멀게 살아왔지만, 최근 깡통에 달린 꼭지를 모으기 시작하면서 본지와의 인터뷰에 응하게 되었다.
김순자 씨가 캔에 달린 꼭지를 따서 모으게 된 동기를 이야기하자면 1968년 하와이 대학교에 유학 와 피츠버그대학교에서 교육학 박사를 받고 교수직을 역임했고, 그 후 뉴욕에서 다시 컴퓨터싸이언스를 공부하여 20여 년 간을 메트 라이프(Met Life) 사에 근무했던 독신으로 살아온 지난 세월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한국서 수송 초등학교 교사를 지내다 유학 온 김순자 박사의 삶은 하와이 대학 때부터 친했던 인사들과의 교제 그리고 한국 코오롱 사와 관계가 있던 메트 라이프의 컴퓨터 프로그래머로서 한편 한국어에 유창한 교육학 박사인 한국인으로서 그 회사 중역들과 함께 했던 일들로 꽉 채워져 있었다.
때문에 교수직에서 물러난 무렵 3개월 정도의 공백 기간에 한인 봉사센터에서 법정 통역 일을 한 것을 빼고는 한국 사람들과 어울릴 시간이 없었으며, 플러싱에 가 본적은 두 세 번 정도라 한다.그러나 김 박사가 뜻하지 않게 메트 라이프의 한 직원으로 참석했던 80년대 초 아시아 소사이어티 한미 양측무역(Bilateral Trade)회의에서의 일은 아직은 역사의 뒷전에 잠겨있는 역사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쌍용, 선경, 창원 등 그 당시 한국의 주요기업의 대표들이 패널리스트로 참여했던 쌀과 소고기 수출에 관한 심포지엄의 방청석에 앉았던 김순자 씨가 즉흥적으로 회의에 끼어들게 되었다.
미국 통상국 아시아 담당자 싼드라씨의 ‘미국 농부도 자살을 하고 한국의 농부도 자살을 한다. 이것은 두 나라가 겪고 있는 정치적으로 매우 예민하고 심각한 문제’라고 한 발언을 듣고 손을 들었다. 싼드라씨가 질문이 있냐고 하자, 질문이아니라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왜 한국의 농촌문제가 미국 농촌 보다 더 심각 한가’를 차근차근 설명한 것이 어느 연설보다도 그날 참여했던 관계자들을 납득시키게 되었다고 한다.
한 번도 농촌에 살아본 적도 없는 김순자 씨는 “첫째, 미국 농부들은 백만 달러의 빚을 지고 자살을 하지만, 한국의 농부들은 500달러, 700달러 때문에 죽는다는 것. 둘째, 한국 농민이 갖고 있는 농지는 미국 웬만한 집 정원보다도 작다는 것. 셋째 한국 농가에 있는 소 한 마리는 그 집의 전 재산이지만, 자식의 공부를 위해 그걸 팔 수 밖에 없다는 것. 가난한 농가마다 다 전기밥솥이 하나씩이 있는데 그 이유는 새벽부터 나가 저녁에야 들어오는 나이 든 농부들에게는 꼭 필요한 살림 도구라는 것을 말했어요.” 그리고 “싼드라 씨 당신이 한국이나 아시아 어느 농촌에 한 닷새만 가서 지내보면 다 알 수 있을텐데요.” 했다고 한다. 뿐 아니라 “한국에서 나는 농산물의 종류가 많질 않습니다. 한국에서 나지 않는 과일이나 채소들을 미국에서 수출 하면 좋지 않을까요?” 라는 제안까지 했다고 한다.
세미나가 끝나자 한국 대표로 온 사람들 뿐 아니라 감동한 많은 사람들이 악수를 청하고 명함을 주었었다고 회상하는 김순자 씨. 그 일은 한국의 어느 신문에도 실리지 않았지만, 한국 정부 한 기관에서는 그 후 김 씨에게 감사의 연락을 해왔다고 했다.퇴직 후 가깝던 친구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그는 가까운 성당에 출석하고 헤이스팅스 시니어 센터에도 참여하는 생활을 시작했다. 지난 노동절 세인트 앤드류스 널싱 홈 피크닉에 갔다가 80대 후반의 장님인 엘리자베스 수녀가 캔에 달린 꼭지를 모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동이 불편하여 너싱 홈에 살면서도 자선을 위해 캔 꼭다리 하나를 따서 모우는 것을 보고 김 박사는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는 수녀원에서 내려와 곧장 이웃과 근처의 보트 클럽, 식당 등을 다니며 부탁하기 시작했고, 모여진 꼭 다리를 매주 한 번씩 엘리자베스 수녀에게 갖다 주고 있다.
“많이 모아졌을 때는 혹시 적게 모아졌을 때를 대비해서 수녀님이 실망하실까봐 적당히 남겨 놓고 가져가지요.” 또한 땡큐 카드를 사서 수녀에게 갖다 주고 다시 가져다가 캔 꼭지를 모아준 사람들에게 땡큐 카드를 전해준다고 했다. 철저하고 사려 깊은 김 박사의 성품이 작은 일에서 들어난다.
굳이 사진 찍히기를 거부하는 김순자 박사가 들려준 심플하지만 의미가 깊은 그의 삶은 비교적 한인들끼리만 똘똘 뭉치는 경향이 있는 한인사회를 새삼 돌이켜 보게 한다. 억울한 경우를 당하는 한인이 많지만 결국은 미국사회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것이라며 김순자 박사는 “같은 대우를 받으려면 그들과 같은 행동을 해야 하지요.” 차별대우에 대한 원망을 하기 이전에 우리 자신이 먼저 미국사회 일원으로서의 역할을 다 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한다. “길거리에 떨어진 나뭇가지 하나를 줍더라도, 우리는 동양 얼굴이기 때문에 남들에게 더 잘 보이지요. 크고 대단한 일이 아니라 자질구레한 일로 사회에 봉사하는 것은 쉽잖아요.”깡통 꼭지를 김순자 박사에게 전달하고 싶은 사람은 한국일보 웨체스터 지국으로 연락하면 된다. <노려 기자>
강아지 산책시키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나, 보트클럽 하우스, 피자가게 등 헤이스팅스 주민들로 전해 받은 깡통 꼭지. 김순자 씨는 물자 절략을 실천 하느라 종이 조각 하나도 아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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