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우 잡’
눈은 실체를 감추는 교활성을 지녔다. 아무리 순백한 눈이라도 일단 녹으면 길거리는 질척이고, 자동차는 얼룩투성이가 되고, 감추어졌던 쓰레기 더미가 드러난다.
이런 눈의 이중성에서 유래된 표현으로 스노우 잡(Snow Job)이란 말이 있다. 그것은 그럴싸한 말로 상대방을 엉뚱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수법, 혹은 속으로는 흑심을 품었지만 겉으로는 하얀 눈처럼 순수하게 보이려는 행동을 뜻한다.
US뉴스&월드 리포트가 지난주 발표한 고교순위는 스노우 잡이다. 순위를 매기는 명목은 세가지로 요약된다. 하나, 어느 고등학교가 학생들의 기초과정을 탄탄히 다져 대학진학 준비를 충실하게 해주는지를 알아본다. 두 번째로 우수고교를 선발, 발표함으로 다른 학교들이 자극을 받아 분발하도록 인도한다. 셋째 학부모가 자녀의 장래를 위해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유익한 정보를 제공한다. 감언이설이다. 고교순위를 발표해서 학교가 얻는 것은 부질없는 경쟁심이요, 부모와 학생이 얻는 것은 욕심과 혼란이지만, US뉴스가 얻는 것은 실질명목인 판매부수 증진이다.
학교는 순위를 한치라도 올려보려고 기초영어도 안 되는 학생들에게 AP를 강권하고, 교사는 순위결정에 반영되는 주정부 시험의 평균점수를 올리려고 학습 내용보다는 시험치기 요령에 치중하고, 부모는 대학에서 순위가 높은 고등학교에 인정점수를 준다는 루머에 솔깃하여 현재 학교에서 잘 지내고 있는 자녀를 뽑아 벨뷰학군으로, 심지어 버지니아주로 옮긴다.
순위 작성방법을 자세히 살펴보면 잡지의 판매부수를 늘리려는 것이 주목적임을 알 수 있다. 통계자료를 선택ㆍ분석ㆍ분배하는 과정을 매년 조금씩 달리하여 해마다 순위가 조금씩 달라지게 만든 이유가 독자들로 하여금 매번 사보게 하려는 것 외에 또 있을까. 한 예로 캘리포니아 풀러튼 소재 트로이 고교는 3년 전에 28위, 지난해 31위에 선정되었으나 올해는 100위 안에 들지도 못했다.
지난해 뉴스위크가 고교순위를 발표했을 때 높은 순위에 책정된 전국의 38개 학군 교육감들이 “엉터리 랭킹 리스트에서 우리 학군에 속한 학교를 제외시켜달라”는 연합 항의편지를 낸 적이 있다. 이렇듯 잡지사에서 발표하는 순위는 학군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즉, 공식성도 확보하지 못한 마케팅 전략일 뿐이다.
매년 평가기준을 살짝 바꾸는 신빙성없는 랭킹을 보고, “우리 학교는 1000대 고교에도 끼지 못했다”고 학교를 옮기는 것은 블랙코미디에 가깝지 진정한 교육이 아니다.
교육에는 서열이 존재할 수 없다. 그것에 순위를 정하는 것은 교육적 동기유발이 아니라 시장경제적, 나아가 정치적ㆍ이데올로기적 착상이다. 저마다 가진 고유성과 목표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교육에 엉터리 줄 세우기에서 등수 안에 있다고 흐뭇해하고, 등수밖에 있다고 안타까워하는 것은 대학ㆍ고교, 심지어는 어느 유치원 몇 회냐의 서열을 따지고, 출신학교 이름으로 인간 됨됨이까지 판단하는 사회에서나 통용된다.
그런 사회의 부작용으로 “SAT점수는 1900, GPA는 3.7정도인데 보스턴 근처의 대학 중 한인들 귀에 익은 대학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하는 부모가 나온다. 또한 사사받는 교수ㆍ음악 교사 등 모두가 “음악실기를 전공한다면 퍼시픽 루터란 대학을 추천한다”고 했지만, 졸업후 레슨을 하려면 한인들에게 먹히는 이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워싱턴대 (UW)로 향하는 학생도 보게 된다. 귀에 익은 이름, 즉 서열에 오른 고교ㆍ대학을 고집하는 태도는 잡지사들이 매년 쏟아내는 쓰레기 랭킹이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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