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목사, 동양인 최초 NCC회장. 미장로교 총회장 역임
재임기간 미국교회의 한민족 평화통일 위한 협력 분위기 조성
유학생이던 60년대초 마틴 루터 킹 목사와 함께 활동하기도
▲미국 장로교 촟회장에 선출된 이승만 목사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목사였던 아버지가 북한 공산정권에 의해 총살당했고 그 아버지의 주검을 손수 땅에 묻었던 18살 소년, 전쟁통에 가족과 이별하고 동생과 함께 월남했던 소년은 그로부터 40년후인 91년 11월17일 미국내 주류 기독교 단체인 미국교회협의회(NCC USA) 제16대 회장에 취임했다. 32개 교단, 2만 교회, 5천만 교인을 대표하는 단체의 한인 1세, 동양인 최초의 회장이라는 기록으로 미주 한인사회에 또 하나의 신기원을 이룩한 이승만 목사.
이목사는 1973년 미국장로교 국제선교부 중동지역 선교총무 직책 맡은 이래 7년간 중동지역을, 80년부터 88년까지 8년간 아시아 태평양지역 선교총무로서 미국교회협의회에 자주 참석하고 활동한 공로로 처음에는 부회장에 추천이 되었다. NCC는 회장 선출에 앞서 공천회에서 우선 부회장을 공천하여 여기서 선출되면 2년간 부회장 역할을 한 다음 하자나 문제가 없을 경우 자동적으로 회장이 되는 시스템을 택하고 있다. 2년간 회장으로 역할을 한 뒤에는 또 증경회장으로 2년을 더 사역하게 된다. 전체 6년을 사역하게 되는 셈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이목사는 회장으로 추천되어 92년부터 93년 까지 2년간 회장으로서 역할을 했다. 임기동안 그는 국내선교와 세계선교를 비롯하여 사회봉사 사역, 사회정의를 위한 사역, 인권보장 사역, 교회성장을 위한 사역 등 미국사회와 세계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현실에 대한 기독교적 관찰과 행동을 장려하는 모든 활동을 진두지휘 했다. 매해 연차총회에 각 교단 대표들이 모여 의논하고 합의하여 사역을 공동으로 진행하기도 하고 각 교단별로 사역을 하기도 했다. 그는 특히 인류가 겪고있는 불행에 대해 교회의 현실참여를 강조하는 입장을 취했다.
임기중 특히 미국교회로 하여금 한민족의 분단과 평화통일에 관한 관심을 깊이 갖도록 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처음에는 작게 시작된 것이 NCC 산하에 있는 전체 교단들이 한반도의 평화통일 문제를 위해 협력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한반도에서 남북한의 직접 교류가 전혀 없던 시절 해외, 특히 미국에서는 북한과 교류할 수 있는 길이 있었기 때문에 그가 다리를 놓는 역할을 담당했다. 이무렵 지미 카터 미국대통령과도 개인적인 친분을 쌓으며 영향력을 증대시켰다. 흔히들 이목사를 가리켜 평화의 사도, 화해를 이끌어내는 전도사로 부른다. 박용진 목사가 쓴 평전 제목도 ‘화해꾼 이승만’이다. 그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노력은 78년 이집트 선교 125년 행사에 참석한 자리에서 사다트 대통령이 "중동의 평화는 무력으로 해결할 수 없고 다만 화해만이 중동의 평화를 가져올수 있다"고 역설한 대목에서 감동을 받았다. 사석에서 사다트 대통령의 화해의 역할에 대해 찬사를 주고받았으며 이후로 그는 이웃나라들과의 평화 공존을 주장하기 시작했고 대화의 선구자 역할도 자임하게 됐다.
동양인 최초의 NCC 회장으로서 무난히 임기를 마친 그는 2000년에 접어들어 또 다른 최초의 기록을 세웠다. 그해 6월 실시된 미국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 USA) 총회에서 4명의 후보자가 나온 가운데 1차 투표에서 600명 총대들의 과반수를 얻어 회장으로 당선된 것이다. 오랫동안 총회 세계선교부 사역을 통해 교단 전체에 그 이름이 많이 알려져 있었던 점과 한국계 목사로서 미국교회에 필요한 챌린지를 내걸고 후보로 나섰던 것이 총대들에게 호응을 받은 것으로 풀이됐다. 선교를 받은 한국에서 자라나 미국에 온 사람이 모교회라고 할 수 있는 미국장로교의 총회장이 되었다는 사실은 미국장로교회 212년 역사에 처음 일어난 사건이었다. 한국역사와는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교단으로서 1885년 장로교 선교사를 맨 처음 한국에 보낸 교단, 호레이스 언더우드 선교사를 보내어 선교역할을 했고 연세대학을 창설한 공헌도 있는 교단의 책임자가 됐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그는 1년간 총회장으로서 사역하는 동안 미전역에 있는 교회들을 방문하면서 설교도 하고 교단을 대표하는 영광스러운 경험을 했다. 이때에도 그는 분단과 갈등의 고통을 사랑과 화해로 치유하자는 신념 아래 한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회장으로 기록된다.
유학생 신분이던 1960년초 흑인 인권운동에 적극 참여, 마틴 루터킹 목사와 함께 활동했던 경력의 그는 1998년 은퇴한 이래 모교인 버지니아주 유니온 장로교 신학교에 초청되어 현재까지 선교학 교수로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그는 여러 차례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와 한때 친북인사로 몰리기도 했으나 민족의 화해와 평화에 기여한다는 신념은 꺾지 않았다. 지난 1983년 필자가 통일문제 세미나에 참석한 후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해외동포들
의 북한 접촉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면서도 "이승만 목사의 경우는 이해할 수 있지만"이라는 단서를 달았던 일을 기억한다.
미 연합감리교회 첫 한인감독 김해종 목사
한인교회.목회자 위상 드높여
▲한인최초의 미연합감리교 감독 김해종목사(왼쪽)가 당시 뉴욕지역 감독이던 로이 니콜스 목사의 설교를 통역하고 있다.
1992년 7월15일, 펜실베니아주 레딩에 있는 올브라이트 칼리지에서 미 연합감리교회 동북부지역 총회가 열렸다. 한인으로서 그날의 의미는 좀 특별했다. 연합감리교회 감독(Bishop)이라는 직책을 선출하고 있었는데 거기에 한인후보 한사람이 도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감리교회에서 감독이라고 하면 최고의 영적 지도자요, 행정 책임자로서 500교회 내지는 1500 교회를 품고 있
는 연회를 관장하는 주요 직책이었다. 미국연합감리교회 200년 역사에 한인이 감독으로 선출된 일이 없었기 때문에 후보로 나선 김해종 목사로서는 다소 흥분된 자리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흑인이나 아시아계, 혹은 여성들은 감히 그 자리를 넘보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김목사는 뉴저지주 감리사로서 배스킨 리지의 미국교회 담임목사로서 연회의 추천을 받아 감독 후보로 선거에 임하고 있었다. 감독 선거는 4백여 총회 대표중 60%의 표를 받아야 당선된다. 당선자가 나올 때까지 계속 투표를 실시하여 그중 60%라는 숫자가 나올 때까지 투표하는 방식이었다. 15명의 후보 가운데 12번째 투표에서 나온 첫 당선자가 바로 김해종목사여서 모두들 놀랐다. 총대대표들이 모두 일어나 박수를 쳤다. 213년 연합감리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당선된 한인 감독을 아낌없이 축하해준 기립박수였다. 그를 뽑아준 총회 대표들에게도 자랑스러운 일이었고 한인사회로서도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연합감리교계에서 감독의 권한은 막강하다. 목사들을 각 교회에 파송하는 권한, 연회를 치리하는 권한 등을 행사하면서 김감독의 탄생으로 인해 교계에서 한인들의 위상도 함께 높아갔다. 전국적으로 한인교회의 문제, 이민사회 문제들이 심각하게 논의되기 시작했으며 김감독의 주도로 교계내에서 한인들의 관계와 선교에 박차가 가해졌다. 미전역에 5개의 선교구를 책정하고 한인교회의 개척과 개척교회를 돕는 선교임무가 시작됐다. 이때 김감독은 동북부 지역의 한인 선교구를 담당하는 감독으로서 지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2004년 은퇴후 2008년 뉴저지 알파인의 미국교회 담임목사로 제2의 목회인생을 시작, 금년에는 알파인 한인교회를 개척하는 역량도 보이고 있다. 지난 64년 뉴저지에서 목회를 시작한 이래 포트리 베다니 감리교회를 통해 뉴저지연합감리교회를 개척한 이후 두번째의 개척인 셈이다. 김목사는 78년 대뉴욕지구 한인교회협의회장과 2000년 미주한인감리교회 이민선교 100주년 기념대회의 대회장으로서 선교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룬 경력도 있다. 최초의 한인감독 김목사의 뒤를 이어 지난 2004년 2명의 한인감독이 또 탄생했다. 시카고 지역의 정희수 목사, 동북부지역의 곽정찬 목사가 그들이다.
조종무<언론인. 한국 국사편찬위원회 해외사료 조사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