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포 수 4천개에 출입구만 18개
유람선 크리스털호에서 본 이스탄불
4월10일 아침 5시에 우리 방의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가이드가 오늘 아침은 일찍 식사하고 빨리 움직이자는 신호로 보낸 벨 소리다. 그래서 집사람과 나는 식당쪽으로 급히 가는데 “아버지!”하고 나를 부르는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 왔는데 바로 나의 셋째 딸임을 직감했다.
이번 크루즈 성지순례 여행은 한국에서 기독교인 460여명과 미국에서 약 40여명, 일본에서도 20여명이 참가하게 된 큰 성지순례 행사였다. 한국에 사는 셋째 딸 옥이는 한국에서 이스탄불로 갔고 우리는 워싱턴에서 가면서 이스탄불에서 만나기로 사전에 약속은 했지만 워낙 머나먼 타국 땅에서 만나게 되니 그 기쁨은 비길 데가 없었다.
-중국 시안시장보다 50배 큰 시장
대-한민국 짜장짜 짱짱! 대-한민국 짜장짜 짱짱. 머리를 깨끗하게 하고 바르게 넥타이를 맨 양복을 단정하게 입은 터키인 청년이 한국 축구국가 대표선수들이 월드컵 시합에 출전했을 때 붉은 악마 응원단이 했던 그대로 박수도 치면서 서너 번 반복하다가 슬그머니 저쪽으로 가버렸다. 터키에도 꽤 싱겁고 할 일 없는 녀석이 있나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랜드 바자르(Grand Bazzar) 시장을 처음 찾아오는 한국인을 환영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먼 옛날 오스만 제국시대의 정복자인 메흐메트가 만들도록 명령을 했다는 지붕이 있는 아주 거대한 시장으로 우리가 갔던 것이다. 아무 머나먼 옛날 중국의 수도 시안(西安)에서부터 지구를 반 바퀴쯤 돌 정도로 먼 거리를 낙타 상인들이 왕래했던 실크로드의 유럽쪽 종점이 바로 이스탄불의 그랜드 바자르라고 한다. 내가 중국의 시안에 가봤을 때 규모가 큰 시장이 있구나 하고 감탄했는데 그것에 비교하면 그랜드 바자르는 50배 이상은 더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춥거나 덥거나 상관없이 잘 만들어진 원형 지붕 아래에서 보석, 모피, 향수, 비단, 담요, 카펫, 장식품, 옷 등등 없는 것 없이 무엇이든지 다 있는 각종 물건 파는 점포수가 4천개도 넘으며 출입구도 18개라고 하는데 한번 들어가면 미로 속을 헤매듯 길을 잃고 출구를 못 찾을 수도 있다고 해서 우리는 유치원 어린이들처럼 서로 손을 꼭 잡고 돌아다니다가 그곳을 간신히 빠져 나오긴 했는데 “할아버지”하고 나를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서 주춤하고 섰다. 오늘 아침 호텔에서 “아버지”하고 셋째 딸이 불렀을 때 감격했는데 이번에는 손자 녀석도 이스탄불로 와서 나를 부르는 게 아닌가? 하고 어리둥절했는데 “할아버지 3개에 2딸라!”하고 유창하게 한국말을 하는 터키제 팽이를 파는 장사꾼이 앞을 가로막고 서 있기에 한국말을 하도 잘 하는 게 기특해서 두말 않고 무조건 팽이를 샀다. “아저씨, 이스탄불 관광지도 2딸라!” “모자 3딸라” “물 1딸라”등등 한국말이 여기저기서 들리니깐 서울의 남대문 시장이나 어느 지하철 역 입구에 선 느낌이 든다.
-남대문 시장에 온듯 한국말이
일본 사람들도 종종 보였지만 일본 말을 하는 터키인 장사꾼은 한명도 없었다. 한국말 잘하는 사람이 많으니깐 어깨가 좀 으쓱해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얼마나 많은 한국 사람들이 다녀갔었고 얼마나 많은 물건을 팔아줬으면 저렇게도 한국인 관광객들을 좋아할까 하는 생각도 잠깐 해봤다.
대부분의 회교권 국가에서는 어마어마하게 큰 석유산업에서부터 작은 팽이 장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장사가 잘 되도록 총력을 기울여서 밀어주고 도와주고 낭비하지 않고 아껴서 벌게 되는 그 수입에서 회교사원의 유지비는 물론이고 그들의 선교 사업에다 넉넉히 쓴다고 한다. 기독교의 교회에서처럼 헌금을 걷지 않는 게 그들의 다른 종교하고 다른 점이라고 한다.
그날 오후 우리를 태운 대형 관광버스는 여객선 부두로 가더니 마치 고층빌딩처럼 높고 항공모함처럼 큰 우리가 타게 될 2만6천톤 급의 크리스털 호 여객선 옆에 우리를 내려준다. 우리는 크리스털 호에서 식사도 하고 밤잠을 자는 동안에 배는 밤새도록 지중해를 항해하다고 날이 밝고 아침이 되면 목적했던 성지에 상륙해서 버스로 관광하게 되니 많이 걸어 다니지 않고 많이 피곤하지 않게 여행을 즐겁게 한다는 것이 크루즈 여행의 목적이라고 한다.
저녁식사 후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셋째 딸 옥이가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어요”라고 알려주기에 급히 갑판 위로 뛰어 가봤다. 하늘과 수평선과 이스탄불 시내가 저녁노을로 온통 붉게 물들여지고 점점 멀어져 가고 있는데 정말로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은 그 광경을 배경으로 하고 우리는 카메라의 셔터를 연거푸 누르기가 바빴다. 우리가 이스탄불 거리를 돌아다녔을 때는 눈에 띄지 않았던 회교 사원의 황금 색칠한 둥근 지붕과 하늘을 찌를 듯이 송곳처럼 뾰족한 미나렛(뾰족탑)이 어쩌면 그렇게 많은지.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이상야릇한 심정으로 점점 멀어져가는 이스탄불을 멍청하게 바라보았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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