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무부 고위당국자들이 조만간 개최될 것으로 알려진 북한의 노동당대표자회의와 권력승계 문제에 대해 입을 맞춘듯이 논평을 자제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지난 8일 미 외교협회(CFR) 초청 연설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 후계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북한의 조선노동당 대표자 대회를 지켜보고는 있지만,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모르겠다"고 즉답을 피했다.
클린턴 장관은 이어 "북한의 지도자가 누가 되든 비핵화가 그들의 미래에 더 좋은 일이 될 것이라는 점을 확신시키는 게 중요하며, 그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셋째 아들 김정은으로의 권력승계가 유력한 상태이지만, 이에 대한 언급뿐 아니라 `포스트 김정일’ 체제를 전망하는 것을 일절 회피하고 ‘누가 지도자가 되든’ 향후 북한 `행동의 변화’(behavior change)를 촉구하고 희망하는 발언만 한 것이다.
클린턴 장관은 지난해 2월 첫 방한때 김정일 위원장 후계문제와 관련해 권력투쟁 등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을 언급해 파장을 낳은 바 있다.
그는 당시 "권력이양이 평화적으로 이뤄지더라도 불안정이 증폭될 것이고, 내부의 권력결집을 위한 방법으로 더욱 도발적인 행동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고 "북한 후계문제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금지된 주제라고 생각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그때와 비교한다면 클린턴 장관의 이번 CFR 답변은 온도차가 완연한 것이며, 북한 권력승계문제에 대해 언급 자체를 꺼린 것이다.
북한 지도부의 심기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식적인 `무반응’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스탠스는 다른 국무무 당국자들에게서도 똑같이 보여지고 있다.
커트 캠벨 동아태차관보는 9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토론회에서 노동당대표회의 결과와 전망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아무런 정보도 없으며 "솔직히 어떤 식으로 (결과가) 나올지 전혀 모르고 있는 상태이고 지켜보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국무부 대변인인 필립 크롤리 공보담당 차관보도 같은 날 외신기자클럽 브리핑에서 역시 같은 질문에 "우리도 무엇이 공개되고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주시하고 있으며, 무엇이 일어날지는 우리도 모른다"며 대응을 피했다.
물론 다른 나라의 권력승계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 자체가 외교적인 금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같은 반응은 당연하다는 해석도 있다. 지난해 클린턴 장관의 발언이 이례적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6자회담 협상 담당자들의 움직임이 활발하고, 남북간에 일종의 화해무드가 조성되는 분위기가 부각되는 등 한반도 정세가 꿈틀거리는 시점을 고려하면 의례적인 반응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
특히 미 국방장관,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잇따라 북한 권력승계가 천안함 공격의 배경이라는 분석을 내놓는 등 북한 권력승계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터라 미 당국의 권력승계 논평 자제는 두드러져 보인다.
미국의 조율된 의도는 북한 자극을 자제하면서, 권력승계 이벤트를 계기로 북한이 `노선 변화’를 택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북한이 건설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우리는 호응할 것"(크롤리), "먼저 남북 화해조치를 보여야 한다"(캠벨)는 발언까지 함께 본다면 ‘우리가 아킬레스건을 건드리지 않을테니, 북한이 기회를 잡고 성의를 보이라’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싱크탱크 전문가는 11일 연합뉴스에 "권력승계에 대해 직접 언급을 피하고 있는 것은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의 체제 변화(regime change)를 유도하려는 것이 아니라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내겠다는 입장이 반영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워싱턴=연합뉴스) 성기홍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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