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멕시코 국경 사막도시에서 온 기러기 아빠의 편지
그레넥 박영숙 통신원
이제 주변에서 한국과 미국을 사이에 두고 ‘기러기 가족’으로 사는 이들을 만나는 일은 별반 특별한 일이 아니다. 일 때문에, 아이들 교육 때문에, 혹은 영어 프리미엄 때문에 가족들이 함께 모여 사는 대신, 떨어져 사는 가족인 ‘기러기 가족’이 새로운 트렌드가 되었다고나 할까.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대신 캘리포니아와 뉴욕을 오가는 기러기아빠의 스태터스로 편치않은 일
상을 사는 박상호씨가 ‘2010년 한국일보 문예공모’에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단초를 제공한 갈라파고스 섬의 핀치새 (경쟁자 없이 살던 중간 크기의 핀치 종 새들이 몸집이 더 큰 경쟁자가 섬에 도착한 지 20년 만에 다른 종류의 씨앗들을 먹기 위해 부리가 작아지는 쪽으로 진화한)를 비유한 시로써 당선이 되는 영광을 안았기에, 그 궁금해지는 삶과 시를 만나보고자 한다.
여느 엄마들처럼 아이들 뒤치닥거리에 바쁜 부인 최영희씨와 아빠의 성향을 닮아선지 줄리아드 프리스쿨에서 클라리넷을 배우는 것을 아주 기꺼워하는 12학년의 아들 박순성군, 그리고 11학년의 딸 박소운양이 그레넥에서 터를 잡아 살고 있는 동안, 아빠 박상호씨 또한 누구보다 치열하게 일상을 꾸려가고 있다. 1986년 서울대 치대를 졸업한 후, 부산에서 개인병원을 11년간 했었고 2003년부터 2005년까지 NYU Perio-Implant Department에서 2년간 수련을 마치고, 캘리포니아 주 면허를 취득하여 2005년 11월부터 2009년 2월까지 영주권 스폰서를 얻기 위해 Western Dental 이라는 거대 체인 미국회사의 El Centro 라는 곳에서 근무했다. 3년 넘게 영주권을 위해 Contract기간을 마치
고, 2009년 2월에 같은 도시에 개인치과 ‘Neverland Kid Dental’ 을 열어 피터팬의 모자를 쓴 채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 열심히 아이들을 진료중이다.
이번에 당선된 시는 이미 신문지면에 발표가 되었기에, 그의 다른 시 중, 경제적으로 심적으로 가족과 떨어져 힘들게 지내던 Western Dental에 근무하던 시기의 글과 가족들에게 보내는 애틋한 편지 하나를 옮겨본다.
기러기 아빠 박상호 씨.
내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학 신입생 시절까지학시절, 우리 가족은 아버지와 거의 10년을 떨어져 살았다. 건강이 안 좋은 아버지는, 과수원이 딸린 시골에서 요양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서울출신의 아버지와 대구출신의 어머니가 찾아낸, 아버지의 요양지wl처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전라도 나주의 깊숙한 시골이었다. 그 후로 방학 때면, 우리 가족은 끊어진 아버지와의 끈을 연결하기 위해 호남선의 기차에 올라탔다. 낯설고 거칠게 다가서던 호남사투리에 섞여, 차창 밖으로 달려들던 아버지에의 설레임. 어린 시절 커다란 산처럼 느껴지던 아비의 모습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나의 어린 시절은 그래서인지, 숫기 없이 구석에 처박힌 내성적인 존재로서 자라고 있었다.
이곳 El Centro의 사막국경 도시에 살고 있는 나의 지인들은, 나의 아이들을 걱정한다. 아이들에게는 아버지로부터 받아야 하는 몫이 있고, 어머니에게로부터 받아야 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잘 여문 능금은 뜨거운 아비의 태양과, 너그러운 대지의 어미 양분을 양손에 검어 쥔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태양이 아무리 전지전능한 파라오의 위용을 자랑한다 하여도, 대지로 내
려서는 순간 그의 선민을 불사를 수 밖에 없듯이, 부모 모두는 그들이 서 있어야 하는 각자의 위치가 있다는 것이다. 사춘기를 맞이한 아이들에게 아비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아내는, 자주 아이들에게 전화를 하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전화는 반찬을 확인하고 늘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단조로움에, 아비와 아이들 모두를 지치게 만드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아이들과의 방법은 편지로 정해졌다. 너무 긴 편지는 자주 쓰기 힘들 것 같아서 카드와 엽서를 선택하였다. 그리고 나는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써 내려간다.
사랑하는 순성이 소운이 보아라. 우리 가족이 미국에 온지 햇수로 5년이 되어가는 것 같구나. 아빠는 비록 멀리 떨어져 있어도, 늘 너희들을 생각한다. 큰 문제없이 미국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 너희들에게 감사한다. 아빠가 초등학교 시절, 너희들 할아버지가 시골에서 돼지를 키우기로 하셨단다. 수백 마리를 키울 돈사를 지으신 후, 할아버지와 아빠는 새끼 돼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은 몹시도 비바람이 거세게 부는 밤이었다. 7마리의 검디 검은 바크셔 종의 새끼 돼지들은, 칠흙 같은 어둠과 비바람에 놀래 있었다. 할아버지와 나는 그날 돼지 우리에서 놀란 돼지 새끼들을 끌어 안고 달래며 잠을 청했다. 그리고 나는 간절한 소망을 빌었다. 이 돼지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수백 마리의 새끼들을 낳아 달라고. 그래서 할아버지의 건강을 되찾아주고 우리가 함께 살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꿈과 소망은 그저 가지는 것 만으로도 행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끝내 이루어지건 안 이루어지건, 단지 그 별을 향해 달려가는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것 이다. 아빠는 너희들이 미국에서 명문대학을 가고, 부와 명예를 차지하는 그런 꿈을 꾸지 않는다. 그리하지 않아도 너희들은 우리에게 늘 소중한 보석들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던 시절은 이미 끝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빠가 이곳을 좋아하는 작은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어떠한 직업에 대해서도 작은 긍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과 남을 비교하지 않으면서 그대로의 상대방과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절대로 초라해 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아빠와 엄마는 단지 너희들을 위해 한국을 떠나지 않았다. 아빠와 엄마도 우리들의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아갈 터이니, 너희들도 부디 부지런히 너희들 스스로의 꿈을 위해 노력하는 이가 되어다오.
멕시코 국경 사막도시 El Centro에서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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