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무감각하게 된 것을 감각하게 만드는 것이 저의 문학입니다.”
1990년대 포스트모던 시대의 기린아였던 소설가는 여전히 한국사회의 욕망과 모순, 인간의 허위의식을 까뒤집어내는 것이 자신의 문학의 본령이라고 강조했다. ‘경마장 가는 길’의 소설가 하일지씨(56, 동덕여대 교수)는 6일 워싱턴에서 열린 문학 좌담회에서 자신의 문학세계를 팬들 앞에 펼쳐냈다. 그는 “경마장 시리즈는 개인을 질식시키는 한국사회의 분위기를 기록하려는 작업이었다”면서 “경마장이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는, 소설에 개별적 제목을 붙이는 게 당당하며 소설에 여성적 제목을 붙이는 것은 독자를 현혹하는 거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GMU 한국학센터.PNP포럼.워싱턴 문인회 공동주최
그는 이어 “작가는 한 시대를 대표할 뿐이며, 낡고 진부한 것은 쓰기 싫었을 뿐”이라고 덧붙여 90년대 소설의 표지를 장식한 여성적 취향의 상업적 제목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하일지는 또 작가가 사회와의 관계에서 취할 엄정한 중립주의에 대한 소신도 드러냈다.
그는 “작가는 조국도 종교도 신념도 가져서는 안 된다는 플로베르의 작가관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며 “문학이 특정사상을 설파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어서는 절대 안 되며, 작가 개인의 신념도 함부로 내세워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하일지는 중앙대학교 창작문학과를 거쳐 프랑스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90년 소설 ‘경마장 가는 길’로 등단하며 문단의 화제를 모았다. 그후 ‘경마장은 네거리에’ 등 경마장 시리즈의 소설을 발표했고 최근 ‘우주피스 공화국’을 내 주목받고 있다.
70년대산 작가의 대표주자인 소설가 천운영씨(39)는 386세대의 막차를 탄 느낌을 가진 일명 ‘낀 세대’로서의 세대감각을 토로하며 작품의 개성을 강조했다.
그는 “대학시절 386세대가 만들어놓은 대학 분위기로부터 도망가고 싶어 소설을 시작했으나, 벗어나기 쉽지 않은 도망자 의식이 자의식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나는 386세대가 아니라 결국 386세대의 부채의식을 강요당한 세대로서, 도망자 의식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털어놓았다.
이 소설가는 또 “신경숙, 은희경으로 대표되는 전 세대 작가를 인정은 하지만, 내 작품세계는 다르다고 생각하며 습작을 시작했다”면서 “지금도 선배 여성작가들과 다른 작품을 쓴다고 자신한다.”고 밝혔다.
천운영은 한양대 신방과,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마치고 2000년 동아일보에 단편 ‘바늘’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2003년 신동엽 창작상, 2004년 올해의 예술상을 수상했으며 소설집 ‘바늘’, ‘명랑’, ‘그녀의 눈물 사용법’과 장편소설 ‘잘 가라, 서커스’를 냈다.
두 작가에 이어 한국문학 번역의 독보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는 브루스 풀턴(캐나다 브리티쉬 콜럼비아대 아시아학과 교수)는 “살아있는 영어로 번역하고자 노력하며, 번역한 후에는 영어로 소리내어 읽어보면서, 잘 읽힐 수 있는 영어의 운율을 찾기 위해 힘쓴다”고 번역작업의 과정을 전했다.
그는 한국에서 노벨 문학상이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한 번역가가 한 작가의 작품만을 번역해야 하며, 작가 자신이 스스로를 알리려는 노력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지 메이슨 대학 한국학센터, PNP포럼, 워싱턴 문인회 공동주최로 우래옥에서 마련된 좌담회에는 50여명의 한인들이 참석해 열띤 질문공세를 벌였다. 사회는 아메리칸 대학 철학과의 박진영 교수가 맡아 진행했다.
두 작가는 이에 앞서 5일 조지메이슨대 한국학 센터에서 이중언어 낭독회를 갖고 자신들의 문학을 소개했다. 하일지는 ‘진술’을, 천운영은 ‘바늘’을 낭독했으며 이들의 작품을 브루스 풀턴 교수가 영어로 다시 발표했다. 참가 학생들은 두 작가의 작품과 한국문학에 대한 질문을 쏟아내며 큰 관심을 보였다.
이번 낭독회는 한국 국제교류진흥회가 지난 1999년부터 매년 진행해온 한국 작가들의 미 대학 낭독여행의 일환으로 열린 것이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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