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주 엘파소 소년원에서 효성이를 구해내려는 미주 한인들의 정성은 놀라웠다. 재정 보증이 필요해지자 많은 한인 목사들이 자원했다. 서명 운동도 계속 벌어졌다. 그런 관심과 함께 미국 내에 보호자가 있다는 사실이 효성이를 풀려나게 하는데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 그해 6월 비행기를 타고 뉴욕 라과디아 공항에 내렸을 때 어머니 마영애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두 번째 상봉이었다. 북한과는 하늘과 땅처럼 다른 자유 세계에서도 두 사람의 헤어짐과 만남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고통으로 점철된 것이었다.
아직 완전하게 체류 신분을 회복한 것은 아니지만 효성이는 다행히 지금까지 부모님들과 같이 살며 공부도 하고 식당 일도 도우며 여느 한인 청년들처럼 젊음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뒤늦게 찾아온 사춘기의 몸살은 사뭇 컸다.
“처음 미국에 올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쫓겨나면 한국에 가서 살지 뭐’ 하는 배짱도 있었죠. 고등학교를 다니며 공부도 나름대로 열심히 했어요. 그러다 2005년경인가 갑자기 정체성의 혼란이 오기 시작했어요.” 아버지, 어머니를 따라 공산당에 충성을 맹세했었다. 그런 신념은 한국과 미국을 거치며 완전히 사라져 머리와 마음이 텅 빈 상태였다. 그러다 아버지가 처형당했다는 소식을 어머니가 FBI로부터 듣고 알려줬다.
아들과 용모가 비슷했던 아버지였다. 날카로운 인상이었지만 성격은 쾌활하셨고 효성이에게는 더할 수 없는 친구였다. 공산주의 체제 속에 살면서도 뭔가 자유롭고 홀가분해 보였던 아버지였다. 효성군은 “아버지가 어머니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원망이 솔직히 생겨났다”고 말했다. 우울증에 걸릴 만큼 정신적인 위기는 심각했다. 그런 상태는 꽤 오래 갔다. 그러다 뜻밖의 은혜의 손길은 또 찾아들었다. 당시 하와이에 거주하고 있던 효성이는 열방대학의 한 교수를 통해 ‘구원의 확신’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평양예술단을 이끌던 어머니와 자주 자동차로 여행을 하는 동안 갖게 된 혼자만의 시간도 신앙에 대해 깊이 묵상하는 기회를 줬다.
그 하나님은 개인 과외를 하듯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효성이의 질문에 모두 답하셨다. “인생관이 그때 이후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전능자의 계획과 뜻에 모든 것을 맡기겠다는 분명한 믿음이 있다. 아직은 막연하지만 공부를 열심히 해 준비가 되면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위해 일하고픈 생각도 갖고 있다.
“제가 미처 몰랐던 내용들이 너무 많군요.”
효성이의 얘기를 듣고 있던 마영애씨는 끝내 감정이 폭발했다. “멕시코 국경 사막지대에 어린 아이를 어떻게 홀로 두고 가버릴 수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된다”는 것이었다. 마씨는 “D 선교회의 C 목사가 효성이의 미국 입국 시도를 제안했고 한국 정착금으로 받은 돈으로 임대한 아파트도 다 처분하며 애를 썼는데 아들이 국경에 버려져 목숨이 위험한 지경에 처했었다는 사실은 절대 용서가 안 된다”고 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미국으로 들어가기 전 국경에서 브로커가 효성이의 허리춤에 숨겨져 있던 1,000달러마저 달러를 달라고 해 반 강제적으로 가져간 것을 언급하며 치를 떨었다. 효성이를 인도 받기 전 이민국 직원이 “아이가 원래 다리를 저는가”하고 물었을 때 이해할 수 없었다. 마씨는 “그 어린 것이 7시간을 걸으며 다리를 다쳐 그랬다는 것을 알고 나니 가슴이 미어진다”며 터져나오는 통곡을 참지 못했다.
“아파트 값은 이사람 저 사람을 통해 2,600달러 정도 돌려 받았지만 돈이야 문제가 되겠느냐”는 마씨의 아들 장래에 대한 생각은 효성이와 같다. 신학교를 마친 후 서울대 법대에 가서 공부를 하고 인권변호사가 됐으면 좋겠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일군이 됐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하나님을 바로 알고 그 분의 사랑과 은혜를 먼저 체험한 좋은 신앙인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효성이와 악속했습니다. 통일이 되는 날까지 우리 가슴 속에 못다 한 말들을 묻어두고 살자고. 아직은 서로의 상처들을 다 꺼내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끝>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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