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조준 목사(75)가 얼마 전 워싱턴에덴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했다. 2002년 갈보리교회를 물러나 미국에 온 이후 한 번도 모 교회를 찾지 않고 언론에도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지만 미주 집회는 자주 하고 있다. 워싱턴 방문은 그러나 거의 20여년 만이다. 박 목사는 사흘간의 집회에서 특유의 달변과 적절한 예화, 강력한 메시지로 청중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 설교에 빠져들면서 박 목사가 오래 전 은퇴한 원로라는 생각은 말끔히 사라졌다.
자신이 세우고 담임했던 교회였으면서도, 교인들이 ‘매정하고 섭섭하다’며 원망하는 소리가 들리는 데도 갈보리교회를 한 번도 찾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심지어 미국에 와서 사는 동안에는 갈보리교회에서 교인들이 거는 전화는 잘 받지 않았다. 전화번호를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당시 담임목사직을 내려놓을 때도 조기 은퇴여서 교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박 목사가 “60이 지나 이민 가는 건 정신 빠진 짓”이라며 말리는 상황에서 굳이 미국까지 온 배경은 간단했다. 원로목사가 후임 목회자에게 짐이 되거나 교회 내 갈등의 원인이 되는 것을 막는 길은 그 방법뿐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박 목사는 “나 혼자 외롭게 고생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박 목사는 “나도 성자가 아니기 때문에 갈보리교회 주변에 있었으면 똑같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지금 노후가 외롭고 힘든 것만은 아니다. 미련 없이 매우 행복하게 보내고 있다. ‘너무 대접을 잘 받는’ 한국 목회자들의 삶과 견줄 수는 없지만 말이다. 박 목사는 “미국에서 목회하는 분들이 존경스럽기 그지없다‘며 ”이민자들의 아픔을 달래주고 응석을 받아주려면 맷집이 상당히 좋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1984년 일어난 소위 외화밀반출사건에 대해 직접 묻자 박 목사는 이런 배경을 들려줬다. “윤성민 당시 합참의장과 식사를 하는 기회가 있었는데 ‘전두환이 병력을 이동하는 바람에 전방에 구멍이 뚫렸는데도 김일성이 몰랐다. 하나님이 그의 눈을 가려주신 모양이다’라는 말이 나왔어요. 이런 역적이 어디 있나 하는 생각에 가슴에서 뭔가 치고 올라오더군요. 그러고 나서 전 대통령의 미국 방문 동행, 국가조찬기도회 참석 요청을 거절했더니 ‘어디 두고 봅시다’라는 말이 들려왔습니다. 그런 일들이 발단이 됐습니다.”
설교 때마다 군사 정권을 공공연히 비판했던 건 이미 잘 알려진 일. “아주 시원하다”는 성도들의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사업을 하는 성도들은 “우리가 곤란해진다”며 난처한 입장을 호소하기도 했다. 일제 치하에서 일본식으로 삭발이 유행할 때 장발을 고집하던 할아버지의 고집을 닮았는지 모른다. 할아버지는 아무런 설명 없이 퉁소로 한 노래를 자주 들려줬는데 졸업가로만 생각했던 그 곡이 애국가인 것을 나중에 알게 됐다.
박 목사가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의 단면을 갈보리교회에 출석했던 한 성도는 이렇게 회상했다. “어느 날인가 박 목사께서 한 여학생이 보낸 편지를 읽으셨습니다. 갈보리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여성이 자기 아버지와 바람이 나 가정이 파탄이 났으니 도와달라는 호소였습니다. 편지를 읽으시던 박 목사님은 ”어떤 X이냐“며 분노를 참지 못하시고 호통치셨습니다. 거룩한 말만 하시는 게 아니라 악에 대해서는 추호도 타협이 없는 분임을 새삼 깨달았지요.”
박 목사는 “영적 권위란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할 때 생긴다”고 말했다. 세례 요한처럼 말씀 붙들고 광야에서 외치면 된다. 요즘 같이 각계에 전문가가 많은 세상에 목회자는 ‘나는 영적으로 전문가’라는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말하는 것은 목사의 책임이고 듣는 것은 성도의 몫이다. 곁들여 박 목사는 “목회자에게 지조가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지조가 없으면 권위가 설 자리가 없어진다. 이전투구가 벌어지는 정치판도 다를 거 없다. 본인은 그러나 남에게는 ‘그럴 수도 있지’하며 관용하는 마음을 늘 지니고 산다.
박 목사는 영락교회를 19년 목회하고 물러날 때 1만5,000명에서 7만5,000명으로 키웠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을 터. 50년 목회 인생에 후회는 없는지 물었다. “없습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소신 있게 했어요.” 그리고 이민 목회자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예수님처럼 맞아주세요. 스데반처럼 ‘저들을 용서하소서’ 하고 큰마음으로 목회하세요. 힘들게 하는 성도들은 오죽하면 저럴까 하고 측은히 여기며 위에서 내려다보는 넉넉한 목회가 필요합니다.”
워싱턴 집회 후 시애틀에서도 부흥회를 인도한 박 목사는 자신이 조직에 참여했던 한국 독립교회연합회 총회 참석차 한국을 방문 중이다.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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